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읽는 최기자 Apr 18. 2024

[서평] <돌봄, 동기화, 자유> (무라세 다카오)

세상에서 가장 웃긴 요양원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웃기고 슬픈 공간



격리와 통제 대신 ‘나다움’의 품격을 찾으며 나이들어감을 배우는 곳


인지저하증에 관한 우리의 ‘인식’을 되돌아보는 곳



차가운 호흡기 대신 웃고 떠들며 싸우는 소리가 들리는 요양원. 이 책의 저자가 일본 후쿠오카에서 운영하는 노인요양 시설 ‘요리아이의 숲’이다. 저자는 이곳에서 수십 년간 인지저하증을 가진 노인들을 돌보며 ‘돌봄’의 진짜 의미를 고민해 왔다.


누구나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로 돌아간다. '늙어감’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서움도 그런 것 같다. 세포의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나’라는 존재가 세상과 관련없이 동떨어져 간다는 생각.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가’를 물을 수 있는 인간이 가진 특권이자 저주가 가져오는 두려움.





참된 '돌봄'은 환자 스스로가 ‘나다움’을 찾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아닐까. 입소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늙어감’이라는 과정을 공유하는 철학적 동반자로 보는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변해가는 내 몸을 증오와 원망이 아닌 담담함과 따뜻함으로 바라보게 하는 곳. 요양사와 환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 울고 웃으며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곳. 삶과 죽음을 열린 마음으로 따뜻하게 바라보는 또다른 '성장'의 과정. 


흔히 시간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나뉜다고 한다.



전자는 객관적•정량적으로 흐르는 물리적 시간 개념이고 후자는 인간이 목적과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 시간 개념이다. 이곳 '요리아이의 숲'에서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의 시간은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 서로 다른 환자들이 자기 삶을 바라보며 느끼는 시간의 무게와 농도도 다르지 않을까.


우리 모두의 의식 속에서 시간과 우주는 서로 다르게 움직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거꾸로 흘러
세월이 지날수록 원숙함과 아름다움이 얼굴에 피어날 수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색함과 촉박함,
경쟁심에 사로잡혀 기억이 사라진 시간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모자장수가 앨리스에게 말한 것처럼.


만약 네가 나만큼 ‘시간’을 잘 알았다면 우리에게 '웃기다’고 말하지 못할 거야.

만약 네가 시간과 잘 지낸다면 시간은
네가 원하는 대로 시계를 맞춰 주겠지.

예를 들어 아침 아홉시에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네가 시계에게 ‘점심시간을 좋아해’라고 귀띔을 해준다면,

시계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시곗바늘을 눈깜짝할 사이에 점심시간으로 돌려놓을 거야!

그렇게  금세 열두 시, 점심 먹을 시간이 되는 거지.



▶ 책 속 문장들


자유롭지 않게 된 몸은 나에게 새로운 자유를 가져다준다. 시간을 가늠할 수 없게 됨으로써 나는 시간에서 자유로워진다.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신선하다.

그렇게 되면 나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변화하여 새로운 ‘나’로 바뀔 뿐이다.

- 본문 65면 중



물론 좋은 돌봄을 실현하기 위해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태도는 필요하다. 하지만 돌보는 사람의 의식이 너무 앞서 나가면 노쇠한 몸에서 나오는 신호를 잡아내는 감수성을 기를 수 없다. 자동차의 핸들에 놀이 요소가 있듯이, 돌보는 사람에게도 놀이가 필요하다.

- 본문 115면 중



실제 연령과 동떨어진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현상을 타임 슬립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지만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의 ‘나’가 계속 함께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57세인 내 몸에는 0세도, 13세도, 22세도, 45세도 존재하고 있다.

나는 ‘다연령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 본문 140면 중



혼란까지도 그 사람답다. 혼란의 한복판에 있는 당사자는 그것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생각하기도 싫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에게는 혼란의 한복판에 있어도 ‘그 사람다움’이 보인다.

극심한 혼란 속에 있는 사람을 도울 때, 돌보는 사람이 발붙일 곳은 바로 그 사람의 혼란이다.

- 본문 148면 중



나는 ‘상냥함’이라는 말에 경계심이 있다. ‘사랑’ ‘배려’ ‘선의’ 등 비판하기 어려운 말에 기초해 돌봄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신입이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상냥함’으로 돌보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속에 상냥하지 않은 ‘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속에 그때껏 만난 적 없는 ‘나’가 존재했던 것이다.

- 본문 236면 중


작가의 이전글 [서평] <AI 쇼크, 다가올 미래> (모 가댓)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