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그들을 원한 적 없다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나서기를 두려워하나 주목받기를 원하고
나누면 좋을 마음 앞에는 늘 까다롭고 인색하게 구나
이유 없이 받는 애정에는 또 즐거워한다.
같이 겪은 일을 서로가 다르게 기억하고
노력하지 않음에도 가질 수 있을 것마냥 기대하는,
인생은 짧다 한탄하면서도
행복이든 고통이든 마치 영원할 것처럼 믿고 마는,
그런 어리석고도
모순 가득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그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고
따듯한 말을 건네며 웃음 지을 수 있다면.
보답할 정성이 없대도 다만
잊지 않으려 애쓸 수 있다면.
숱한 만남과 헤어짐 속
옅게나마 피어나는 미소로 남을 수 있다면.
눈이 아파서 긴 글을 쓰기가 힘들 것 같길래 떠오르는 시 한 편 끄적여봤다. 두 밤만 자고 나면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난다. 앨라배마를 거쳐 웨스트버지니아로 가서 시댁에 2주간 머물면서 워싱턴 DC 여행을 할 계획이다. 시댁에서 DC까지 기차로 1시간 거리라 3일 정도 왕복 당일치기 여행을 할 건데, 하루는 멍뭉이까지 데리고 가서 바깥에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2차 세계대전 등 추모공원 구경을 하고 나머지 이틀은 남편만 데리고 미술관, 박물관, 의회 도서관 등 실내공간을 둘러볼까 한다. 플로리다로 돌아오는 길에는 테네시에 들러서 스모키마운틴 국립공원에서 하이킹으로 하루를 꽉 채울 예정이다.
옛날에는 여행 계획 세우는 게 그렇게 재밌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사는 데 바빠서 꼼꼼히 일정을 짤 여유가 없다. 급한 대로 우선 앨라배마에서 1박, 테네시에서 2박 숙소를 예약한 게 전부이다. 호텔을 예약할까 하다가 에어비앤비에서 테네시 숙소를 알아보는데 웬 오두막집이 자꾸 보이길래 친구들한테 물어봤더니 테네시에서는 약간 다들 산속 별장에서 캠핑하는 기분으로 통나무집에서 숙박하는 게 여행의 별미란다. 우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야외 자쿠지와 모닥불, 그릴 등이 딸린 값비싼 통나무집을 테네시 숙소로 정했다. 다행히 애완견도 환영이란다.
난방이 잘 안 돼서 추우면 어떡하지, 사나운 날짐승이랑 마주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 약간을 제외하면 간만에 정말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클래식음악과 잘 어울릴듯한 고즈넉한 느낌의 산속 오두막이 사진으로만 봤는데도 어쩜 그리 운치 있는지. 숙소 예약을 하고 나니 가슴이 한껏 부풀고 기분이 방방 뜬다. 생각해 보니 기대 하나 없이 다녔던 근 1년 새의 올랜도 여행, 뉴올리언즈 여행, 알래스카 여행, 캘리포니아 여행 중에도 재밌는 에피소드가 제법 있었다.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기록해둬야 할 것 같으니 이번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오면 차례대로 되짚어 적어 내려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