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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향 Dec 10. 2024

미국에서 집 구하기

자가 아니고 월세


맨 처음 독립은 괌 호텔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 호텔 기숙사에서 시작했다. 원래 호텔방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반지하 층이 습하고 곰팡이가 심하다 보니 호텔 측에서 인턴/직원들 기숙사로 사용하면 좋겠다 싶었나 보다. 트윈베드 2개, 서랍장 2개, 책상 2개, 미니냉장고, 텔레비전으로 꽉 찬 방에 화장실이 하나 딸려 있었다. 2017년 당시 룸메이트와 방을 나눠 썼고 2주마다 나오던 봉급에서 각각 $300씩을 냈다. 부엌도 없고 햇빛도 전혀 들어오지 않던 그 작은 방을 2명이 나눠 쓰면서 월세가 $1,200 (한화 약 165만 원)이 넘었던 셈이다. 시세를 알게 된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지만 당시에는 대학생 신분으로 경험 삼아 인턴쉽을 하던 시절이니 그러려니 할 따름이다.


졸업하고 괌에서 다시 첫 직장을 다닐 동안에는 회사 사택에 살았다. 2019년경 투몬 시내에 위치한 침실 2개, 화장실 1개 딸린 집이 월세 $1,000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근방에서 유난히 저렴하고 안전한 곳을 운 좋게 잘 계약했었다. 직장 동료와 집을 나눠 쓰긴 했지만 널찍한 거실과 부엌을 공용공간으로 두고 별도의 침실을 각각 쓰던 터라 불편함은 훨씬 덜했다. 가구가 따로 딸려오지 않아서 룸메와 푼돈을 모아 이것저것 싸구려 가구를 장만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중에 지금 남편을 만났고 1년 여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정했다. 신혼집을 알아보는 동시에 퇴사를 결심했고 이사를 마치자마자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때가 아무래도 내 첫 독립기가 아닌가 싶다.


미공군에 속한 남편은 하필 당시 한국으로 파견을 나가게 되어 괌에서 혼자 집을 알아봐야 했다. 정보가 없다 보니 그냥 사택 바로 근처에 있는 고층 아파트 한 동에서 여러 유닛을 둘러보고 그중 한 곳으로 정했다. 미군들이 집세를 지원받는 방식이나 금액은 발령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괌에서는 2021-22년 당시 군부대 바깥 집 기준 월세 약 $2,400이 지원됐고, 그보다 저렴한 집을 구했을 경우에 그 차액을 따로 보상해주지 않았다. 따라서 최대 지원금액인 $2,400에 맞춰 고급 오션뷰 유닛을 골랐다.


사실 미국 내에서 군부대가 위치해 있는 지역은 정해져 있어서 그 근방 집들의 월세는 다 군 최대 지원 금액에 맞춰 동결되기 마련이다. 우리 신혼집이 나름 좋긴 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월 330만 원 값어치를 하는 집은 아니었다. 어쨌든 당시에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투몬 시내에 위치해서 쇼핑몰, 바다 등 놀거리에 접근성이 좋은가, 경비직원이 24시간 상비해서 안전이 보장되는가, 헬스장이나 수영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가, 땅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어 바퀴벌레 침투 위험이 적은가 하는 점이었다. 내가 고른 집은 여기에 더해 호텔룸 뺨치는 멋들어진 오션뷰를 자랑하는 깔끔한 아파트였으니 신혼집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건 사실이다.


이후 플로리다로 이주한 작년, 새 집을 계약하기까지 우리에게는 딱 열흘의 시간이 주어졌다. 군대에서 제공하는 호텔이 플로리다에 도착한 날부터 열흘 간만 무료고 이후 숙박비는 우리가 별도로 부담해야 했기 때문이다. 새로 정착하게 된 동네에 대해 아는 바가 단 하나도 없이 우리 부부는 근처 아파트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주택에 살아본 경험이 없다 보니 그보다는 관리직원이 있는 아파트가 살기에 훨씬 편할 것 같았다. 미국 본토에서는 괌에서와 달리 군대에서 보장하는 월세 지원금 중 남는 몫을 킵할 수 있다. 저렴한 월세의 집을 구하면 차액만큼을 기본 봉급에 더해 받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깔끔하고 널찍한 집들 중 월세가 가장 낮은 아파트를 골라서 덜컥 계약했다. 저렴하다고 해봤자 군인 할인을 받아 월 $1,800이었지만 확실히 다른 비슷한 수준의 집들에 비하면 저렴한 편에 속했다.


계약기간은 보통 1년이라 우리도 1년을 계약하고 들어갔다. 남편 직장인 군부대에서 고작 5분, 한 달여쯤 후에 구하게 된 내 직장에서는 15분 거리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였다. 그런데 웬걸, 이 동네 교통체증이 말도 못 하게 심할 줄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는가. 5분 통근이 1시간으로 늘어나는 마법이란… 꽉 막힌 도로에 꼼짝없이 갇혀 있는 시간이 참말로 괴로웠다. 이쪽 지역이 투명하게 예쁜 바다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날씨 좋은 여름철에는 워낙 붐볐다. 들뜬 관광객들이 많아서인지 유일한 통근길인 2차선 고속도로에는 사고도 엄청 자주 났다. 어느 하루 아침엔 30분 거리를 운전하는 중에 총 4건의 추돌사고를 목격하기도 했다. 다른 보통의 여름날들엔 하루 최소 1-2건의 사고가 그 짧은 통근길 사이에 늘 있었다. 앰뷸런스 차량과 사고차량, 그리고 경찰차 때문에 꽉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고 도로에 갇히게 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말이다. 거짓말 안 보태고 바다에서 10초 거리에 위치해 있던 플로리다 첫 번째 집은 지옥 같던 통근길을 제외하면 정말이지 다 좋았다. 매년 11월 초에서 3월 초까지는 썸머타임(Daylight saving time: 낮이 길어지는 여름동안 한 시간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제도)이 적용되지 않으니 내가 쓸 수 있는 아침이 한 시간 늘어나는 셈이라서, 겨울 내내 나는 출근 전에 우리 집 멍뭉이랑 집 앞 바닷가를 걸었다. 비지시즌동안 회사 동료들과 다 같이 만보 걷기 캠페인도 참여하던 터라 하루 목표는 최소 10,000보였다. 좀 빠른 걸음으로 모래사장 위를 왔다 갔다 걸으면 한 시간에 3마일, 걸음수로는 약 6천보를 미리 찍을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새벽 바닷가에서 오리도 보고, 두루미(?)도 보고, 우리 멍뭉이가 남긴 모래 위 귀여운 발자국도 보고. 해가 뜨기 전 주황빛 파란 하늘이 비친 바다, 그리고 아침 새들 지저귀는 소리를 오롯이 만끽할 수 있어 참 행복했다. 이런 말로 다 못할 행복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근 학교 등하교시간(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제한속도가 반으로 떨어지고 아이들 픽업차량이 메인 도로까지 이어진다), 군인 훈련시간 등등에 겹친 내 출퇴근길이 너무 힘들었다. 고민 끝에 우리 부부는 사고 다발 지역인 2차선 고속도로를 피해 도시 한복판의 주거 밀집 지역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zillow라는 어플로 아파트, 타운하우스, 주택 가리지 않고 수개월에 걸쳐 20여 군데를 직접 방문해 본 후에 현재 거주 중인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가장 어려운 점은 이주 날짜를 맞추는 일이었다. 이전 아파트의 퇴거 날짜는 정해져 있는데 대부분의 집주인/공인중개사들은 가능한 한 빠른 입실날짜를 원했고, 신중한 성격의 나는 이주날짜에 훨씬 앞서서 집을 알아보기 시작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점점 눈은 높아져 가는데 애써 맘에 드는 집을 찾으면 뭐 하나, 우리보다 급하게 입실할 수 있는 세입자들에게 모조리 뺏기고 말았다. 결국 원래 퇴거일까지 다른 맘에 드는 집을 구하지 못한 우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전 아파트에서 제시한 최소 추가기간인 4개월을 연장해야 했다.


이사할 집을 고르는 데에 명확한 기준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우선 나는 집안에서 계단 오르내리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2층집보다는 단층집을 선호했다. 또 각각 1대씩의 차를 보유한 남편과 내가 번갈아 차를 빼주는 일이 없도록 주차공간이 좌우로 널찍한 집으로 추렸다. 우리 집 멍뭉이를 위해서 앞마당, 뒷마당이 넓었으면 했고, 통근시간이 10분 이내로 단축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또한 노숙자 문제가 없는 동네여야 했다. 옷이 워낙 많은 내가 여름 드레스부터 겨울 코트까지 전부 보관할 수 있는 워크인 클로짓(walk-in closet: 걸어 들어갈 수 있는 큰 옷장)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새로 계약할 집의 월세는 기존의 월세에서 5-10% 인상폭 내에 있어야만 만족스럽게 선택할 수 있을 거였다. 그리고 결국엔 맘에 쏙 드는 지금의 집을 발견했다.


이사 온 지 3개월째, 나는 불평 하나 없이 행복하다. 집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생활수준도 더 나아지고 스스로 성장한다고도 느낀다. 어른의 삶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단단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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