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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향 Apr 16. 2024

미국에서 회계감사인이 되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한국에서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나는 맨 처음 괌에 있는 호텔에서 일하게 되었다. 시작 전엔 호텔리어에 대한 환상이 있었으나 내가 감당하게 된 현실은 상상과 전혀 달랐다. 고객들의 불만토로에 감정이 소진되는 일상은 둘째 치더라도, 호텔 내에서 하는 일이 대개 단조롭다 보니 늘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스스로를 진단해 보면 나는 성장욕구가 강하고 남의 비위를 맞추는 일을 상당히 어려워하는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어느 순간엔가 서비스직은 꼭 관둬야겠다고 다짐했다.


별다른 대안을 찾을 동력이 딱히 없어서 호텔직에 머무르던 중 코로나19가 터졌다. 동료 직원들이 상당수 해고되었고 나 또한 연봉삭감 등 불이익을 받아야 했다. 2020년 3월, 괌 전체에 락다운명령이 내려졌다. 모든 식당, 호텔 등이 강제로 문을 닫았고 개인은 생필품을 사기 위한 경우 외에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집에 갇혀 있다 보니 그제야 적극적으로 내 앞날에 대해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늘 그랬듯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일단은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들부터 검색해 봤던 것 같다. 키워드가 뭐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뜬금없는 정보를 여럿 접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미국 회계사자격증(AICPA)에 대한 것이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시험센터가 없어서 한국인들이 자격증을 따려면 비행기를 타고 괌에 가서 시험을 봐야 했다.


AICPA는 최소 수험기간 1년, 비용 1천만 원 정도가 드는 시험인데 나는 당시 괌에 살고 있었으니 여행에 드는 시간과 비용은 아끼고 들어가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평생에 회계사라는 직업에 관심 한 번 가져본 적 없는 내가 단지 괌에 살고 있어 시험의 장벽이 낮단 이유로 미국 회계사라는 직업에 메리트를 느낀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가 없지만 글쎄, 당시에는 너무 막막해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 같다.


워낙 덩치가 큰 시험이다 보니 선뜻 결심이 서지 않던 차에 두 번째 락다운이 끝나고 나는 괌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자의로 한국을 떠나와 놓고는 괜시레 그리워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괌에 사는 한국인들이랑은 거리를 두고 우연히 생기는 접점도 억지로 없애가며 애써 현지인 친구들이랑만 지내던 나인데 그땐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그 언니랑은 자석의 양극과 음극처럼 서로 끌려 금세 친해졌다. 우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운명이었을 지도. 알고 봤더니 이 언니가 회계사더라. 언니는 한국에 있을 때 대학교를 휴학하고 시험 준비를 했다고 했다. 언니에게 조언도 듣고 하는 동안 잠시 묻어두었던 내 희미한 계획은 다시 슬금슬금 마음속 자리를 키워갔고, 그렇게 나는 호텔 퇴직 후 무작정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1년간의 수험생활을 보내는 동안 언니는 알래스카로 이주해서 미국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에 입사해 감사인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시험 합격 후 나도 괌에서 플로리다로 이주했다. 내 선택지에는 일반 경리직, 세무, 감사 등이 있었는데, 내 끝없는 성장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직업이 뭘까 고민하다 보니 다양한 직종에 연계되어 있는 감사팀에 들어가면 배울 점이 많을 거라는 나름의 판단이 서서 나도 언니처럼 회계법인에 감사인으로 취직하게 됐다.


우리 엄마는 이 언니를 내 귀인이라고 한다. 딱히 내세울 것 없던 딸이 친구의 영향을 받아 미국에서 회계사가 되었으니 많이 자랑스러우신가 보다. 언니한테도 고맙고 엄마한테도 효도해 드린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이다. 다행히 업무도 적성에 잘 맞으니 더 바랄 것 없이 좋다. 내 하루를 돌아보면 지금의 나는 어린 시절 내가 막연히 그리던 환상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런데 왜 마냥 좋다기보다 쓸쓸한 감정이 앞서는 걸까.


호텔일을 하던 시절 나는 만족하지 못했고 불행했고 못난 마음을 가졌었다. 언젠가 그 지긋지긋한 환경을 벗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멋지게 살 거라는 막연한 꿈을 꿨었다. 한없이 불안하기만 하던 나는 내게 뭐가 필요한지 내가 뭘 원하는지 알지 못해서, 그래서 그냥 남들이 좋은 거라고 입 모아 말하는 뻔한 목표를 좇아야 했다.


지나고 보니 그게 그렇게 억울한가 보다. 플로리다에서 이렇게 겉보기에 번지르르한 삶을 살고 있는 와중에 내 맘 깊은 곳에서 못난 속마음이 불쑥 고개를 내밀 때마다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 치미나 보다. 내가 스스로를 증명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는 사실, 못난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다는 사실, 나조차도 못난 나와 잘난 나를 구분 지어 편애한다는 사실, 이 모든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준 적은 물론 목격한 경험도 없어서 그게 과연 실재하는 건지 알지 못함에도, 믿고 싶다. 꿈속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고보니 이제서야 알겠다. 속 좁고 불같은 성질을 타고난 내가 평생 염원했던 건 사실 바깥이 아닌 내 안에 있었다는 걸. 나는, 바다처럼 커다란 마음을 가지고 내 주변사람들을 품어주고 나 자신을 잘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언젠가는 부디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를, 다른 사람을 조건 없이 믿어주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기를. 나아가 건강하고 성숙한 마음을 나누며 살 수 있기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에 일조할 수 있기를.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직접 그린 미래이고, 회계 감사인이 된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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