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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건 Nov 20. 2024

드림월드문고 | 알짜배기 아지트

제 3의 장소 : 유성구 작은 도서관 기행 (1)

아파트 내에 위치한 작은 도서관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도서관 위치에 대한 주소가 ‘아파트 단지’까지만 표기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단지 내 도서관을 가기 위해서는 우선 단지 내로 들어간다. 그리고 낙엽을 쓰는 환경미화원 분이나 아침 운동을 나선 주민분에게 길을 물어 물어 찾아야 한다. 점차 요령도 생겼다. 처음엔 세 명의 사람에게 물어 최종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그 다음번엔 한 번에 찾을 수 있었고, 아파트 내 관리사무소의 위치를 먼저 파악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아파트 작은 도서관은 관리사무소의 2층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림월드 문고도 그런 도서관 중 하나였다.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이라는 이름보다는 ‘문고’라는 명칭이 확실히 걸맞은 곳이었다. 나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면 벽면을 삥 둘러선 오래된 서가와 빼곡한 책들, 가운데에는 관리실 회의에 사용되는 듯한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문고의 기능보다는 회의실의 기능이 활발해 보였다. 방금 전 열 띈 회의를 한 듯이 자리 곳곳에는 볼펜과 비타 오백이 놓여 있었다.  


장소에 상주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편에 붙은 설명문을 읽어보니 문고 이용 시 관리 사무실을 방문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그래서 관리실을 찾아 들어갔다. 짧은 단발에 높은 눈썹 산, 옆으로 긴 안경을 쓰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마치 맡은 프로젝트에 허점이 없을 거 같은 이미지의 담당자였다. 방문 사유를 이야기하고 질문 몇 가지 여쭐 것을 요청했다. 관리자님은 쥐고 있던 문서를  훑어 넘기며 “할 일이 많아서 될지는 모르겠는데. 네. 그러세요.”라고 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직감하고 문고를 마저 관찰했다. 도서의 정렬은 연도별로 열을 나누고, 나름 도서분류표대로 행을 이룬다. ‘600’, ‘800’ 등의 숫자를 스티커에 프린트해 붙이기도 하고, 네임 펜으로 서가 사이에 숫자를 표기해놓기도 했다. 도서에는 별다른 청구기호가 부여되지 않았고 ‘문고에 몇 번째로 들어온 책’이라는 뜻의 번호만 매겨져 있었다. 분류도 구분도 제멋대로였는데, 재밌는 점이 있었다. 책이 좋았다. 연도별로 들어온 도서가 서가 두 칸을 넘기지 못하지만, 꽂혀 있는 책은 족족 흥미로워 보였다. 그렇다고 마냥 스테디셀러만은 아닌 것이 알짜배기 모음집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한창 구경하고 있는데, 아까 그 관리자님이 들어오셨다. 나는 기회를 놓칠 세라 냉큼 질문을 던졌다. 첫 질문은 ‘하루 이용자가 얼마나 되는가’였다. 이에 관리자님은 살짝 웃으며 ‘별로 없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 오시는 두세 분만 오시는데 서로 아는 사이인 거 같다고 했다. 이 문고는 처음부터 별다른 자원봉사자 없이 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해 왔다고 한다. 작년까지는 구청 측에서 도서 구입 목적의 예산을 줬는데, 올해부터는 그 보조가 끊겼다고 한다. 관리자분은 그 사안에 대해 큰 관심은 없어 보였다. 도서를 빌리려면 관리사무소에서 명단을 작성하면 되고, 원칙 상 일주일 대여이지만 편히 읽고 편히 반납할 수 있도록 한다. 


나의 질문 사이를 비집고 나에게 “무슨 학과예요?”라고 물으셨다. 나는 제차 ‘문헌정보학과’라고 말씀드렸는데, 여전히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으신 듯해 ‘도서관학과’라고 정정했다. 관리자께서는 ‘그런 학과도 있느냐’, ‘보통 무슨 진로를 갖느냐’, ‘사서는 무슨 일을 하느냐’, ‘공무직 사서가 되는 시험도 따로 있느냐’라고 물으셨다. 한참 주석 달듯 답변을 하다 보니, 도서관에 대해 알기 위해 도서관을 관리하시는 분을 찾아뵈었는데 ‘사서가 무슨 일을 하는지’부터 설명을 드린다는 점에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그래도 아무렴 괜찮았다. ‘요즘 쉽게 되는 게 없네요. 쉽지 않겠어요.’라는 담백한 위로부터 더 질문할 것은 없냐, 천천히 쉬다 가도 된다는 식의 따뜻한 말도 줄곧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도서관에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문고를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 실정이라면 관리자가 문고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거 같다. 하지만, 이런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위안이 될 거 같은데, 이용자가 없다는 건 아쉽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있지 않아도, 조용하고 안락할 수 있는 공용의 공간이지 않은가. 드림월드 문고는 무심한 듯 다정한 공간이었다. 더불어 이런 보물창고 같은 공간을 아무도 노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을 머물든 나만의 공간이 될 거 같았다. 투박한 애정이 깃든, 덤으로 노다지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보다 많은 주민분들이 이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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