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러브의 열한 번째 레터
연이들은 예술을 좋아해? 평일 오후 이런 말랑말랑한 레터를 읽는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예술을 좋아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언젠가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어? 우리는 왜 예술을 체험하고, 예술을 하는 것일까? 인간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오늘은 어떤 음악가의 인생을 빌려 이 질문에 하나의 답을 보여주는 책을 소개하려고 해. 바로 소련의 작곡가였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그린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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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1906년 소련에서 태어나 20세기 음악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음악가야. 젊은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볼셰비키의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며 소련 음악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 잡았어.
쇼스타코비치가 20세기 음악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했지?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는 시대 배경과의 복잡한 관계가 있어. 그는 소련의 공식적 음악정책과 본인의 예술적 표현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야 했어. 초기에는 혁명과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아 작곡하여 주목을 받았지만, 1930년대에는 소련 당국의 비판을 받으면서 압박에 시달렸지. 당시는 스탈린의 대숙청이 벌어지던 시기였기에, 쇼스타코비치는 생존을 위해 교향곡을 작곡하는 등 정치적인 압박을 이겨내려 많은 노력을 했어.
개인적인 어려움을 넘어서, 소련 전체가 핏빛으로 물들던 시기에도 그는 음악의 끊을 놓지 않았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를 작곡하여 굶주림에 허덕이던 레닌그라드 사람들과 전쟁 중이던 전 세계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었지.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은 바로 이 ⟨레닌그라드⟩를 이르는 말이야.
소련의 레닌그라드는 2차 대전 중 독일군에 의해 약 872일간 포위되었어. 보급이 끊기자 사람들은 배고픔에 허덕이며 톱밥, 가죽 등을 먹기 시작했고 심지어 식인 행위까지 했다고 해. 시체들이 쌓여간 도시에서는 죽음의 기운만이 감돌았어. 연이가 이렇게 극한의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상상이 가? 난 삶의 모든 의지를 잃어버리고 망연자실한 채로 죽음을 기다릴 거 같아.
그런데 이곳에서, 굶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영양이 심각할 정도로 부족해 연주가가 관악기를 제대로 불 수 없었고, 심지어는 무대 도중 누군가 아사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멈추지 않았어. 예술을 향한 갈망은 비단 예술가만의 소유가 아니었어. 1942년 레닌그라드에서 쇼스타코비치의 ⟨레닌그라드⟩가 초연되었을 때, 사람들은 도시가 1년째 봉쇄된 상황에 ‘음악을 듣기 위해’ 모여. 그때 그들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였을까?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는 표현은 진부할 수 있어도 정확한 말이 될 거야. 1942년에 죽은 자들의 도시에서 울려 퍼졌던 ⟨레닌그라드⟩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야. 죽음을 향한 두려움과 삶을 향한 염원, 그리고 절망과 희망의 울부짖음까지 모든 요소가 짜 맞추어진 예술이지. 내 삶이 그토록 위험천만한 가장자리에 놓일 일이 없는 한, 나는 평생 그런 음악을 들어볼 수 없을 거야.
이 책을 읽고 지난달 독서모임을 한 적이 있었어. 쇼스타코비치 개인의 삶 이외에도, 이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가장 이야기 나누고 싶었던 주제는 ‘왜 예술인가?’였어. 왜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걸까? 1942년 레닌그라드에서, 사람들은 인간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추락했음에도 왜 음악을 듣고자 했을까? 음악이 곯은 배에 빵 조각 하나 넣어줄 리가 없었을 텐데 말이야.
예술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내가 내린 나름의 답은 이런 거야. 예술을 체험하는 이들 입장에서, 예술은 ‘나와 같은 한계를 지닌 생명이 겪었던 감정’을 공유하는 행위야. 지난 레터에서 내가 ⟨폭설⟩을 소개했던 거 기억나? 난 그 글을 읽고서야 비로소 엄마와의 관계를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게 됐어. 생뚱맞게 끝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마지막 문장에서, 어떠한 설명을 더 얹지 않아도 눈물을 펑펑 흘릴 수 있었던 건 그 문장이 내가 가진 수많은 감정 속 하나를 정확하게 건드렸고, 그 순간 모든 의미적 공백이 내 개인적 경험으로 채워져 고유한 맥락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야. 내가 인간이라서 겪는 한계들을 백 년 전, 오백 년 전 사람들도 겪었고, 그 감정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치명적인 고통과 고민을 누군가는 이미 했고, 그 문제들이 이미 다루어졌다는 사실은 여전히 같은 한계를 지닌 생명체인 우리에게 더 없는 위안과 위로가 돼.
예술을 하는 이들 입장에선 어떤 의미일까. 난 이 답은 매우 간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하지 않을 수 없어서’야. 난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거든. 같은 고통을 겪어도 느끼는 게 다르듯이, 내 안에 있는 걸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들. 예술을 하는 목적은, 사실 본능과도 같은 거라고 믿어.
“내 교향곡은 대부분 묘비다. 너무도 많은 우리 인민들이 죽었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혔다. 내 친구들도 그런 일을 당했다. 그들의 묘비를 어디에 세우겠는가? 오직 음악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가 심장질환으로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겼다는 말이야. 아마 이것도, 인간에게 예술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내 교향곡이 묘비'라는 말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그가 겪고 목격한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의 상징임을 시사해. 그는 삶 전체를 바쳐 음악을 만들었고, 그의 음악을 그가 겪고 목격한 시대와 사람들에게 묘비로 바쳤어. 그렇게 쇼스타코비치의 삶은 단순히 한 인간의 일생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이자 궤적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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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과 사뭇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해. 음식도 예술도 너무 넘쳐서 굶긴커녕 아무거나 먹다 체하거나 토하기 일쑤니까.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연이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어. 여전히 연이에게는 예술이 유효해? 만약 그렇다면, 기술에도 과학에도 수학에도 아름다움을 붙일 수 있는 시대에 왜 반드시 ‘예술’이어야만 해? 연이의 생각이 궁금해. 긴 레터 읽어줘서 고마워. 답장 기다리고 있을게!
답장함
김러브
Kim love
짐승 한 마리도 치지 않고
안녕! 편지 잘 받았어 ㅎㅎ 눈이라는 소재가 담겨 있는 글과 그림을 보니 겨울이 그립네. 난 겨울 좋아하거든!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뜻해질 수 있기 때문이야. 밖은 춥지만 이불 속이나 따뜻한 물로 샤워할 때의 그 안도감. 추위에 떨며 몸이 긴장했을 때 따뜻한 물이나 공기를 만나면 긴장이 풀어지는 것 말야. 돌아가신 신영복 교수님께서 옥중에서 쓰신 글에도 이런 말이 있었어. ‘감옥에서의 겨울은 혹독하리만치 춥지만 재소자들끼리 더욱 가까이 붙어서 체온을 나누려하기 때문에 그리 혹독하지만은 않다. 여름은 그렇지 않다.’ 폭설이 내리는 겨울 속, 출산이라는 큰 고통 속, 우리 삶의 고통와 어려움들 속, 서로를 껴안아 그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그렇다면 때론 겨울도 참 아름다운 계절이 아닐까?
레터보다 더 따뜻한 답장 정말 고마워. 그러게, 연이 말이 맞는 것 같아. 어쩌면 내가 어렸을 때부터 가족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에, 훨씬 더 다양한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건지도몰라. 아마 평이하게 자랐다면 사람들이 겪은 상처를 다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고통스러운 일을 겪게 되면,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될 수 있게 되더라고. 고통이 곧 성장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 자체가 온전히 비극적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 추운 날씨여야 서로를 껴안을 수 있게 되듯이 말이야.
P.S. 레터어리 답장 형식이 바뀌었어! 앞으로는 아래 링크를 통해 답장을 남겨주면 필진으로부터 빠르게 답장을 받을 수 있어. 그동안 답장 남겨줬던 연이들 모두 고마웠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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