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야의 열한 번째 레터
연아 오랜만이야! 다들 추석 때 맛있는 것 배불리 먹었고? 이번 연휴는 길었으니까 쉴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찌나 순식간에 일상으로 돌아왔는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어영부영하다 보니 어느새 9월 막바지에 접어들었네. 3월에 연이들에게 첫인사를 한지 벌써 6개월이란 시간이 흘렀고...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그런 생각에 골몰하다 보니 요즘은 재지팩트의 '아까워'란 노래를 자주 들어.
시간은 공짜야 It's the free coupon
쉴틈 없이 써도 남아있는걸 내가 왜 아끼겠어 뭐하러
지혜로운 너가 날 좀 도와줘
호화로울 것 같던 시간도 얼마 못가서
우리 둘이 쓰기도 턱없이 모잘러
...
시침도 다시 보니까 무슨 폭포같어
넌 내일이 있으니 괜찮대
허나 내일도 역시 언젠간 어제가 되니까
Let's not waste time anymore
정해봐 뭐할지 이 노래 끝내면
언제부턴가 우리는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어. 활기 넘치다 못해 매사에 '빨리'를 외치는 한국에서는 더욱! 모든 게 바쁘고 정신없이 흘러가서 혼자만의 방학을 좀 맞이하고 싶은데, 통장 잔고는 그럴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 인스타그램에서는 해외여행 간 친구들이 근사한 사진을 찍어 실시간으로 스토리를 올리고, 거기에 부응하듯 나 또한 여행 사진 올리는 데 여념이 없지. 와중에 커리어와 취미도 놓치지 않으려면 재빠르게 움직여야 해.
그럴 때 이 노래의 화자는 '시간은 공짜야 It's the free coupon'이라며 나를 흐르고 스쳐 가는 끊임없는 순간들에 수도꼭지를 틀어둔 물처럼 그저 마음 가는대로 흘려보내. 내일도 모레도, 젊음이 영원하리란 듯. 그러나 호화로웠던 시간은 금세 말라서 이젠 '아까운' 지경이 되어버려.
예전엔 세련된 재즈 힙합 멜로디가 좋아서 들었던 노래였는데, 이십대 막바지를 겨우 붙잡은 지금은 가사에 집중하며 듣게 되더라. ㅋㅋㅋ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이 있잖아. '지금'에만 유효한 특별함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것은 역시 '축제'가 아닐까? 올해의 축제는 올해가 아니면 다시 즐길 수 없듯이! 최근에 열렸던 프리즈 서울 기간 중 즐거웠던 하룻밤을 소개할게.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세계 최대 아트페어 주관사인 프리즈가 2022년 9월 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 서울에서 개최한 이후 이어지고 있는 아트페어이다. 이로써 서울은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에 이어 프리즈가 열린 세계 네 번째 도시가 된 바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9월은 미술의 달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다양한 미술 축제가 진행돼. 부산/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프리즈까지, 이 모든 미술 행사들을 한 데 아울러 '대한민국미술축제'라는 브랜드로 만들 정도니까. 9월은 물론, 10월과 12월까지도 이어지는 행사들이 있으니 궁금한 연이들은 링크를 참고해 봐!
프리즈 기간에는 아주 특별한 밤을 보낼 수 있어. 지역+나이트(Night)로 이름을 붙여, 해당 지역의 갤러리들을 야간 개관으로 볼 수 있고, 네트워킹 파티 또한 즐길 수 있는 행사야. 레터어리즈는 이번 프리즈 기간에 '삼청나잇'을 다녀왔는데, 국립현대미술관과 내로라하는 갤러리가 한데 모인 삼청동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고 들뜬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어. 특히, 국제갤러리는 무료 리셉션을 제공해서, 안 들를 수가 없는 방앗간 같은 곳이었지.
밤에 열리는 갤러리, 와인에 맛있는 음식에... 들뜬 분위기가 느껴져? 디제이 부스까지 더해진 국제 갤러리는 일 년에 딱 이 날 하루만 이런 모습이야. 밤에 문을 열지도 않을뿐더러 평소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그림 감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거든. 조금은 조심스럽고 묵직한 갤러리가 이런 파티 현장으로 변할 수 있다니! (게다가 음식도 공짜라니!) 어떻게 삼청나잇을 기다리지 않을 수가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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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에서 나와 우측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바로 위치한 학고재 갤러리. 자아정체성에 대한 도전과 실천, 예술과 사회의 관계론적 함의를 탐구하는 한국, 중국, 일본의 다국적 3인의 단체전 《잃어버린 줄 알았어!》를 진행하고 있었어.
《잃어버린 줄 알았어!》는 “우리가 꿈꾸는 탄력적인 사회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예술과 건축은 어떤 사회적 합의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조명해 보는 포럼이자 전시야.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타고 나는 정체성과 소속감, 사회로부터 물든 이데올로기를 벗어 던지고 초국적인 연대와 '함께 살아감'을 위한 탐구라고 할 수 있어. 사회 뉴스에서만 보던 '한·중·일'을 전시에서 단체전으로 만나니 감회가 새롭더라. 보통 국가 간 알력 다툼이나 갈등상황이 보도될 때 주로 쓰이잖아. 국제 정세는 그렇다 할지라도 한데 모여 예술로 교감하는 한·중·일을 만나 신기하기도 했고, 작가별로 모두 독특한 특색과 개성을 지녀서 보는 재미가 있었어.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좁다란 골목을 여럿 지나 노포 막걸리 주점에 도착했어. 가을답지 않게 훅훅한 더위였지만 그래도, 밤에 전시를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하며 술 마실 친구들이 있다는 건 참 좋은 거야. 그치?
노래 '아까워' 의 화자는 지금 어떻게 살고있을까? 충실하게 살아가면서도 가끔은 이런 추억과 여유를 자신에게 선물 해보는 거 어때. 걱정만 하며 살기에 인생은 끝없는 현실의 꿰어짐이고 귀중한 거잖아. 그러니 남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 너무 오래 고민하지 말고 대충 나가자! 10월에는 부산에서 아시아 최대의 영화축제가 열릴 예정이야. 바로 부산국제영화제! 연이들, 거기서 만나자. 이 날씨, 이 축제를 흘려보내기 너무 아까우니까, 대충 입고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