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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인J Mar 31. 2024

기적이라 부를 수 있는 삶 속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작품을 보다 보면 왠지 모르게 여름이라는 키워드가 생각난다. 적어도 내가 감상했던 <어느 여름>이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같은 작품들이 그랬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름은 굉장히 생명력을 가진 계절이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위와 같은 계절성을 감독이 의도적으로 살린 게 아닐까 싶다. 이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특히 이 영화의 경우, 어린아이들의 힘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기에 그러한 특징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타이틀까지의 장면들은 흥미롭게 느껴진다. 어느 여름날, 고이치라는 소년의 모습을 비춰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매일같이 화산재를 확인하고, 닦아내야 하는 고이치에게는 하나의 의문이 있다. 왜 아무도 저 화산을 신경 쓰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으로 타이틀이 올라오며 영화는 시작된다. 

 부모님이 이혼한 후, 고이치의 내면에는 하나의 소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가족과 함께 다 같이 살아가는 것. 고이치는 그러한 소원을 품으며 하나의 기적을 바란다. 화산이 폭발하기를. 그래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기적 말이다. 이러한 기적을 바란다는 점에서 고이치는 관계를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와 다르게 동생 류노스케 바라는 기적은 동심이 가득한 기적들 뿐이다. 가령, 어른이 되면 가면라이더가 되고 싶다는 기적이 그렇다. 작중 류노스케가 바라는 기적은 일정하지 않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생명력이 있다. 그렇기에 류노스케라는 인물이 가진 힘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다른 두 기적을 가진 형제를 교차편집을 사용하여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는 특히 구마모토를 위한 여행의 여비를 마련하는 장면에서 더 잘 드러나는데, 스스로 돈을 마련하려 판매기 밑에서 동전을 줍고, 물건을 팔는 고이치와 당당하게 아빠에게 양육비로 돈을 요구하는 류노스케 모두 방식은 다르지만 굉장히 사랑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또한 그 과정에서 감독은 고이치 형제의 가족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의 기적까지 훑으며 끝까지 시선을 놓치지 않는데, 그렇기에 두 인물이 살아가는 공간성이 더욱 대비가 잘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를 평면적으로 해석해본다면 그들이 바라는 기적이 이분법적으로 나눠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연코 그렇지는 않다. 아이들이 각각 자신들의 기적을 위해 열차가 교차 되는 구마모토를 향하는 여행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아이들의 기적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여행의 시작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기적이 진짜로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그럼에도 아이들은 여행을 떠난다. 비록 실제로 기적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기적으로 향하는 그 길만큼은 진실하기에. 결국 소원을 외치지 못하고, 개인의 기적 대신 세계를 선택한 고이치의 모습은 보는 이들조차 성장하게 만드는 것 같다. 

 더 이상 자신의 삶을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하나의 길로서 바라보기 시작한 고이치는 마지막에서야 비로소 화산재를 확인하지 않고 살아가게 된다. 이는 마치 초반부 외할아버지의 대사와도 맞물리는 부분이다. 어쩌다 보니 관람차를 외할아버지와 함께 타게 된 고이치는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왜 하필 화산 근처에서 사는 거야라고. 이에 외할아버지는 분화란 아직 산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대답한다. 살아있으니까 때론 에너지를 발산해야 한다고. 이는 곧 살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화산과도 같이 끝나지 않고, 지속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기에 고이치가 이사를 가지 않고 원래의 동네에 머무르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고이치가 결국 살아가는 그 일상 자체를 받아들였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외에도 구마모토로 향하는 여행길의 후반부, 밍밍하다고 생각했던 외할아버지의 가루칸떡의 맛을 알게 되는 장면이라든가 고이치 형제가 수영이라는 공통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설정 등 영화 내에 상징적이면서도 인물들의 삶 자체가 녹여져 있는 요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왠지 모르게 그들의 동선을 따라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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