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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인J Mar 26. 2024

선명하지 못한 순간들에 대해서

-이제니 시인의 그리하여 흘려 쓴 순간들을 목격하며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中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1)2)


접어둔 꿈을 펼친다. 너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잊었고. 텅 비어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네 자신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연약하고도 슬픈 기질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너를 문장이라는 말의 그늘로. 아니. 문장이라는 종이의 여백으로 이끌었고. 혼자만의 방에서도 오래도록 외롭지 않았던 것은. 네 오랜 꿈의 원형인 듯 책상 한구석에서 타오르던 어둡고 희미한 불꽃이. 매 순간 너와 함께 네 마음속에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접어둔 꿈을 펼친다. 거리는 거리로 이어지고 집은 집으로 이어져. 첫 번째 집은 문이 없었고. 쉽게 다음으로 건너뛰지 못하는 미련한 마음이 다음 집과 다음 집도 첫 번째 집으로 오인하도록 하였기에. 결국 네가 찾고 있는 것은 열리지 않는 문이라는 듯이 너는 너 자신을 속였으나. 이내 문이 있는 집이 나타났고. 당연하게도 너는 문을 열고 들어가지 않았고. 지금껏 줄곧 그래왔듯이 너는 첫 번째 집을 찾아 헤매듯 다음 또 다음으로 천천히 천천히 집과 집 사이를 건너뛰었고. 결국 네가 찾고 있는 것은 문이 없는 집이라는 사실을 너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니까 결국. 끝없이 끝없이 바깥으로만 바깥으로만 떠돌도록 하는 모종의 이유가 필요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너는 인정해야만 했고. 건너뛰어 가는 동안. 종이 위로 새겨지는 네 목소리 위로 또 다른 목소리가 내려앉는 것을 너는 보았고. 들었고. 그것은 오래도록 내뱉지 못한 네 입속말의 부스러기들이었고. 바깥으로 향하는 목소리를 따라. 그렇게 바깥으로 향하는 공간으로 뛰어들기를 반복하여서 다시금 어제의 밤은 몰려왔고. 그러면 이제 무언가를 붙잡아야만 한다고. 그러면 이제 어딘가에 도착해야만 한다고. 그러나.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들여다보듯이. 희미한 것들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고. 빛의 둘레로부터 어른거리며 물러나는 무언가를 너는 보았고. 들었고. 그 어렴풋한 그림자야말로 네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었고. 아니. 네가 잊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잊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시간을 떠올렸고. 손을 펼치면 저 너머로부터 말들의 그늘이 번져오고 있었고. 더 이상 많은 낱말과 낱말로 말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더는 숱한 비유와 비유로 문장을 꾸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너는 뒤늦게 알아차렸으나. 심연을 향해 나아가듯 같은 낱말이 또 다른 뜻으로 너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너는 보았고. 들었고. 느꼈고. 연필을 쥔 너의 손가락은 어느새 종이 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갔고. 글자가 아닌 그림처럼. 그림이 아닌 음악처럼. 어떤 시선을. 어떤 흔적을. 어떤 공백을. 너는 읽으면서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심해로부터 번져오듯 같은 낱말이 다시 다가오면서 물러나고 있는 것을 너는 느끼면서. 자신의 표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의 문장을 인용하는 무수한 얼굴을 생각했고. 그리하여 다시. 마주보는 이중의 거울 속에서. 끝없이 끝없이 맺히며 펼쳐지는 거울상의. 그 어떤 예비된 묵시들처럼. 그리하여 다시. 꿈은 어디로부터 흘러와서 어디로 흘러가는가. 빈칸을 건너뛰듯 희미한 보폭으로 사라져가는 저 무수한 길 위에서. 한 줄 건너뛰면 다시 한 줄 흔들리는 저 무수한 나뭇가지 사이에서.


1)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 원제는 「Through A Glass Darkly」(1961).

2) 이제니,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문학과 지성사, p61~63



이제니 시인의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을 읽으면서 말하는 방식이 얼마나 시 속에서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집에 등장하는 전반적으로 어떠한 순간을 포착해낸 듯 보입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확실하게 그려지는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이라는 제목처럼 우리는 시인이 포착한, 흘려 쓴 순간들을 읽어낼 뿐입니다. 생각보다 앞서나간 그 발화의 순간들을 말입니다.


그렇기에 각각 한 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령, p13에 등장하는 「나무 식별하기」에서는 ‘그 나무의 이름을 들었을 때 잘 보이지 않았다’ 라는 첫 구절을 통해 연약해 보이는 목소리를 담고 있는 반면 또 p18에서 등장하는 「소년은 자라 소년이 된다」에서는 ‘소년이라고 부르면 소년이 보인다’라는 구절로 시작하는데, 이를 통해 말 을 내뱉는 것으로써 그것이 하나의 믿음의 형식을 지니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시집은 다양한 발화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공통적으로 내포하는 요소들은 존재합니다. 이 중에는 앞에서 언급했던 목소리의  존재  혹은  부재도  있고, ‘너’혹은  ‘당신’으로  지칭되는  누군가의  존재도  있습니다.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이 ‘너 혹은 ’당신‘의 존재였습니다. 유난히 ‘너’라는 인칭을 사용한 시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몇 번이나  시집을  읽어보면서  과연  너라는  존재가  무엇일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라는 존재가 화자인 ‘나’처럼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렇 기에  저는  아마도  시인이  ‘너’라는  2인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거리를 가지기 위해서 이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울을 통해 어렴풋이」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역시 이 시에서도 ‘너’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너’라는 존재는 뚜렷하게 ‘나’라는 존재로 인식됩니다. 거울 속 건너편의 자신에게 말 을 거는 것처럼 시가 전개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가 물 흐르듯 읽히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시 속 낱말들의 배열에 있습니다. 시는 절대 문장을 완성 시키지 않습니다. 단지 구절에서 구절로 끊을 뿐이죠. 저는 시인의 이러한 끊는 방식에서 많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 확실히는 말할 수는 없지만, 말해지고 싶은 그런 순간들을 말입니다. 그렇기 에 문장들이 모호하게 보이면서도 흐릿하게 연결 되어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 습니다.


이 시의 모티브가 된 영화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Through A Glass Darkly)」는 심한 정신 분열증을 앓고 있는 카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정신 병원에서 퇴원한 카린은 가족들과 함께 병세를 이겨보려 하지만, 상황은 좋게 돌아가지 못합니다. 자신의 예술을 위해 가족을 등 한시하는  작가 아버지  데이빗과  의사이자 남편인  마틴  그리고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남동생 미누스까지. 그 누구도 카린을 돌볼 수 있는 상황(아버지가 자신의 정신 분열증을 자신의 작품을  위해  일기로  기록한  사실)에서  그녀는  결국  남동생을  유혹하고,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 발작을 일으켜 다시 정신병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실제로 이 영화를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열증이란 모티브가 존재했다는 점과 시 속에서 끊어서 전개하는 서술방식이 계속해서 분열될 수밖에 없는 화자의 정신을 잘 나타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마주 보는 이중의 거울 속에서. 끝없이 끝없이 맺히며 펼쳐지는  거울상의.’  세상  속  생각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시의  끝을  보면  완결성이 없는 듯 보입니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생각처럼 말이죠.


그 외에도 이 시집에는 눈여겨 들여다볼 요소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후반부의 ‘발화 연습 문장’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시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이 시들의 경우 다 른 시들보다 발화의 힘이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시들이 타인의 목소리를 빌려 화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령,‘ 발화 연습 문장’ 중에서는 다른 시들과 비교했을 때 반복되는 문장들이 많이 등장합니 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방식은 단순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아주 조금씩이 지만 문장들이 변주되어가며 계속해서 시를 전개 시켜나갑니다.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세

계. 어쩌면 이 시집을 통해 이제니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세계의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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