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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무경 Jul 15. 2024

성(性: sex)의 가치판단: 성적 수치심과 죄의식 1

지난번 게재한 "왜 여자는 가슴 보이면 않 되나요?"에 관한 필자의 답

대 charmdae 이무경


"여성의 가슴과 성차별" 질문에 대한 더 상세한 답변 1


여성의 젖꼭지(유두) 드러냄에 나타난 성적 판단


네이버 지식인에 올라온 어느 여성분의 질문입니다. 


[질문]

왜 여자는 가슴 보이면 않 되나요? 


예전부터 이해불가 인게, 남자들은 웃통 벗으면 괜찮잖아요, TV에서도 마치 자랑인냥 나오고요. 가슴 노출까지하고 가끔 유두 쪽만 가린 남자들은 웃길려고 그러는 것이고,, 


그러나 여자들은 가슴에 예민하잖아요, 가슴골 완전 드러나서 거의 속 옷 수준의 옷을 입곤 하는대, 


여기까진 사람들 좋아하니까 괜찮지만, 가슴 다보여도 유두가 보이면 않 되더군요, 


솔직히 여자 유두가 어떼서? 남자는 괜찮고 여자는 않된다,,, 사회적으로 남녀 차별 아닌가요? 


뭐 여자 유두가 혐오물도 아니고 왜 드러내면 않 되고 불법이 되는지 이해불가에요. 


중새 시대나 조선 시대땐 여자도 유두 노출 자연스러웠다면서요.. 근데 왜 현대에 와서 유듀는 감춰야 한다는 사상이 깃들여 졌는지 모르갰군요, 


암튼, 저도 여자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할 수 없어요,, 


저는 그래서 유두 노출하고 다니거든요, 막 대놓고 노출하는 거 아니고 노브라에 얇은 블라우스 정도로 


간접적으로 노출을 하고 다녀요. 일부러 보란 듯이, 누가 뭐라고 하면 왜 남자는 돼고 여자는 않되죠? 


이렇게 되뭍곤 하죠. 대부분 대답을 회피하거나 그냥 무시하더라구요, 


그래서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가슴노출 왜 여자는 않 되고 남자는 되는 거죠? 시원스럽게 여자도 가슴노출 팍팍~ 하고 싶거든요


~~~~~~~~~~~~~~~~~~~~~~~~~~~~~~~~~~~


독자분들 가운데 용기 있게 답변할 수 있는 분 없으신가요? 댓글로 시원하게 답변 한번 해 주시지요.


필자가 [2024년 5월 5일]에 브런치스토리에 올린 글인데 7월 14일까지 아무도 아무 말도 한 분이 없어 오늘 내 나름대로 이 문제에 관한 필자의 의견을 올립니다. 내용이 길어 2차에 걸쳐 실어보려 합니다. 

 


[성적 수치심의 뜻]


성적인 내용[성기 노출 ∙ 성교]에 딸린 이미지나 문서 등 성적 의식을 자극함으로써 일어나는 [내]가 느끼는 수치심, [남]이 느끼는 민망함. 남성의 젖꼭지는 성적인 의미가 없지만 여성의 젖가슴[젖꼭지 부분]은 남성의 성욕을 불러 일응키키는 성적 대상으로 여겨지기 때문. 


❉성욕의 두 가지 의미―[색욕(色慾)]과 [산욕(産欲)]


인간 이외의 생물에게 성욕의 의미는 거의 번식욕에 국한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성욕이 번식욕을 포함하면서도 이를 넘어선 욕망으로서 [색욕]과 [산욕]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극명하게 갈린다. 


[ⓐ색욕(色慾)]: 성적 행위를 통한 쾌락 추구 ―가 문제가 아니라 본능의 강제적인 강력한 성 추구―에 관한 욕망.


[ⓑ산욕(産慾)]: 자녀를 출산하여 종족 번식을 기하려는 욕망. [출산욕]

 

그러나 색욕이든 산욕이든 욕망의 의지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뿐 신체적 행동의 자세로 성욕인지 산욕인지 거의 구별하기 여려울 정도로 같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다 같은 행동인데 그 의지[의도]에 따라서 하나는 찬양되고 다른 하나는 죄악시된다. 곧 출산은 긍정되지만, 쾌락은 부정된다.


●성적 수치심의 발생에 관여하는 철학적 기제인 이기(理氣: 이성과 기성)의 갈등


그러면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필자는 우주가 두 [세계]인 [예지계]와 [물리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이(理)는 예지계의 기둥이고 물리계의 기둥은 기(氣)이다.


생명체는 이(理)외 기(氣)의 융합체인데 이 이(理)와 기(氣)가 생명체에 깃들어 이루어진 성격이 [이성]과 [기성(氣性)]이다. 이성과 기성은 생명체를 같이 운영한다. 기성의 기관인 [본능]은 [삶]을 관장하고 이성의 기관인 [정신]은 [앎]을 관장하는데 매우 길항적인 바탕에서 유래되어 활동하기에 한편으로는 협력적이지만 다른 한편인 가치관이나 이념적으로는 대립적이며 때로는 적대적이다. 


이는 성욕[섹스]에 관한 두 가지 태도 ―정신에 입각한 태도와 본능에 입각한 태도―에도 관여하며 이 태도에 따라서 긍정 및 부정적 비난과 수치심의 농도가 달라진다. 


●성욕을 바라보는 이성과 기성의 특성


ⓐ성교를 [산욕]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성의 근거: 이성의 관념적 ∙ 정신적 ∙ 합리적 ∙ 도덕적 ∙ 문화적 태도: 이성의 자율성을 존엄하게 여기는 도덕적 정신주의


도덕의 근거인 이성은 행위의 동기로서의 의지의 자율성에 기초하고 있는 자기 존엄성이다. 성에 관한 태도에서 산욕을 긍정적으로 보되 본능의 발현인 색욕은 부정적으로, 그것도 성적 쾌감을 죄악으로 여기고 금욕적인 성향이 있다. 


심지어 많은 종교와 그런 종교나 관습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에서 색욕은 물론이고 색욕과 밀접한 관계인 [육체]의 혐오로까지 번진다. 


고등 종교는 대체로 관념적 이성적 태도를 지니고 있기에. 산욕을 지지하고 색욕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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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 이상 모든 생물처럼 기성(氣性)이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이에 더해 강한 이성(理性)이 있다. 이성은 기성에 견주어 발현이 많지 않지만 기성에 딸린 성욕이 아직 발현하지 않았거나 억제되어 있을 때에는 자기 존엄성의 형태로 자존심에 반영되어 기성적 본능의 힘을 깨닫지 못한다. 


ⓑ성교를 [색욕] 추구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성의 근거: 물질적 ∙ 맹목적 ∙ 자연적 태도: 주로 기성에 따라 원초적이고 타율적인 쾌락을 추종하는 자연의 본능적 욕망. 


대중들은 기성적[본능적] 경향이 강하고 많다. 산욕과 색욕 양쪽을 다 긍정하지만 본능은 성은 행위의 결과인 쾌락을 탐하는 타율성(他律性)에 딸려 있으며 쾌락을 불러오는 성욕을 더 좋아한다. 



성적 수치심의 핵심:


산욕은 성적 수치심과 거의 무관하다. 오로지 색욕에 의해 일어나는 쾌감 추구만이 수치심의 대상이다. 쾌감을 높이기 위한 수단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쓸 때, 음탕하다는 표현을 써서 비난하는데 음탕하다는 것은 색욕에 빠져 정상적인, 곧 건전한 생활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음탕한 행동을 했을 때 수치심이 더 심해진다. 


종교에서는 이성을 영적인 개념으로 여겨서 선하다고 보고 육(肉)적인 개념애 딸린 기성을 악의 원천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특성은 당연히 생명체의 가장 핵심적인 활동인 성(性: sex)의 활동에도 나타난다. 그 현상이 긍정성인 찬양과 부정적인 죄악시이다. 


.♣사춘기가 끝나기 이전의 소년기에는 본능에 의해 살아가지만, 아직 성적 본능이 활동하기 전 성욕이 없을 때이다. 이때의 어린이들은 자신의 의지를 집요하게 엄습하여 강요하고 구속하는 성(性)이라는 이 [타자]의 가공할 힘을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다. 그들은 천성적인 정신적 자존심에 따라 몰각 중에서도 자신은 매우 존귀한 존재로서 [짐승]과는 다르다고 여긴다. 그래서 짐승들과 같은 성적 행위나 짐승 짓을 혐오하고 자기 부모가 야동을 보면 더럽다고 느끼고 경멸한다. 성욕의 작용이 아직 작동하지 않을 때의 어린이는


♣성교 행위를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따라서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짓으로 여긴다. 

♣당연히 성욕을 풀기 위한 용두질(피스톤 운동)이 자기의 존엄성과 자유의지를 침훼하는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짓으로 느낀다. 


이러한 상태는 ⓐ성욕을 풀어버린 직후나 ⓑ늙어서 성욕이 시들면 똑같은 뉘우침의 모습으로 나타나 성이 혐오된다. ⓐ는 특히 뚜렷한데 속말로 [현자타임]이라 하는 것이 이 현상이며 이는 뒤에 설명하려 한다. 


어떤 사람이 연로한 소포클레스에게 물었다.

“어떤가? 소포클레스………. 아직도 여자와 관계할 수 있는가?” 라고.


노년기에 들어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젊었던 시절의 정력과 쾌락이 쇠잔해 감을 못내 아쉬워하며 사뭇 크나큰 것을 빼앗긴 것으로 여겨 한숨을 짓고 있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해 소포클레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사람. 그런 소리 말게. 마치 거칠고 사나운 주인에게서 도망친 것처럼 거기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플라톤: 《國家論》 1권. 3. 趙宇鉉 譯. 三省出版社; 세계사상전집 22. 1977. 21p.


물론 도덕적인 의지자가 극히 드문 것처럼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 역시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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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과는 거의 언제나 대립적 본성인 기성에 속한 성의 추구는 이성의 도덕적 입장에서는 타율적인 결과로서의 쾌락이라는 의미에서 늘 저열하게 의식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점에서 비도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버선[양말]을 싣는 것이 예의가 된다


심지어 이성적 의지에서 일어나는 기성에 관한 혐오나 부끄러움은 육체의 노출에 관해서도 작용한다. 그래서 몸을 드러내는 것조차 부정적으로 보고 수치심을 느껴 나체를 금기시하여 꺼리며 심지어는 양말을 신지 않는 맨발, 짧은 바지를 꺼리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조선 시대 여인들은 이슬람의 히잡과 부르카처럼 장옷을 입고 나들이를 해야 했다. 


왜 사람들은 산욕은 긍정하면서도 똑같은 대상의 관점만 나른 성욕을 더럽거나 부끄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강력한 금기를 요구하나?


●성을 보는 2가지 관점


❶산욕은 축복의 관점


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 

➀생명체의 가장 큰 의지로서의 번식욕―진화심리학의 핵심 개념인 유전자 전파―의 유일한 방법으로서의 성. 


번식욕의 강력한 추동을 도저히 거역할 수 없어서 자기 의지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➁가장 강력한 쾌감의 원천으로서의 성; 공리주의의 표어인 [최대 다수인의 행복]과 그 원천인 쾌락을 얻는 행위.


➂창조적 행위: 바꿔 얻을 수 없는, 인류라는 종이 오랫동안 진화하면서 발전시킨 위대하고 존귀한 생명체의 생산이라는 창조적 행위.


심지어는 딸의 초경을 축하해 주는 사회


❷섹욕은 죄악의 관점: 성적 수치심과 죄의식의 가치판단 근거


이성적 계열에 딸린 대부분의 종교와 현자들은 물론이고 사회 가치관에 동조하는 일반인들 까지도 [산욕]에 관해서는 축복하지만 [색욕]은 죄악시 한다. 


거의 모든 종교가 성을 금기시하고 많은 사람들이 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종교들은 그들의 교조가 부모의 성교 결과로 태어났다는 점까지 부정하려 한다. 


기독교에서는 교조인 예수가 마리아가 성령으로 인한 동정의 몸으로 잉태하였을 뿐 아니라 예수를 낳은 후에도 평생 처녀의 몸으로 살았다고 주장한다. 곧 성욕적인 측면을 극도로 부정한다. 


불교에서는 교조인 석가가 어머니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임신하고 뒤에 역시 옆구리를 통해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성욕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질(膣)을 통한 출생 자체를 기피한다. 


[일반인들의 탄생에 관한 부정적 태도의 사례] 


자신이 부모의 성교로 인해 태어났다는 점을 혐오(불쾌해) 한다.

➁성기의 노출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➂자위: 용두질에 대한 수치심. 이런 행위들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그 행위들이 행위자의 자유의지에 의해서가 아닌, 본능의 강요라는 주체성 상실에 따르는 자존심의 상처 때문이다. 이에 따른 감정인 현타(현자타임)란 이 때문에 생기는 부끄러움이다. 


도덕이 성(性)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 관념의 원천은 단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 기인한다. 곧 도덕의 근거인 우리의 이성(理性)은 행위의 동기(動機)로서의 의지(意志)의 자율성(自律性)에 기초하고 있는 자기 존엄성이다. 그런데 성은 본능이라는 타율성에 속해 쾌락을 탐하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인 의지자가 극히 드문 것처럼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 역시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도덕과는 항상 대립적 본성인 기성에 속한 성의 추구는 도덕의 입장에서는 타율적인 결과로서의 쾌락이라는 의미에서 항상 저열하게 의식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점에서 비도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성적 수치심은―다른 많은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자기 제시“ 심리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생리기적 의식에 따라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인간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려는 용재는 성적인 것이다. 그런데 성적 상징이나 성욕 등의 표현은 사회의 강력한 제재를 받는다. 사회는 질서유지나 도덕 등의 이유를 들어 그것의 표현을 억압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크게 쓰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강렬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성적 부끄러움은 사람마다 다를 뿐 아니라 사회에 따라서 느끼는 정도가 각각 다르다. 성적 수치심도 대중들이 그것을 부끄러운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도 그것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믿고 개방하려 하겠지만 사회가 그것에 폐쇄적이면 노출하기 어렵다. 비난의 폭탄을 무섭게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핵심에 가까웠던 것?은 쇼펜하우어의 주장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성적 수치심을 인간의 삶의 의지의 관점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의 견해를 요약하면 “[살려는 의지]는 악의 의지이고 그 핵심적인 부분이 성기이기 때문에 남몰래 이 악한 의지를 연장하려는 결혼에 대해 인간들은 죄의식을 가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쇼펜하우어는 그 이유를 비이성적인 사물인 육체의 핵[쇼펜하우어 – 악의 의지의 근본]이어서라고 지적하면서 그의 저서 [파레르가 팔라리포메나]에서 이를 지적해 이렇게 말했다. 


“성욕 충족이란 생에 대한 의지를, 개체의 생을 넘어서 긍정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비로소 개체를 소모하여 생에로 귀속시킨다는 것이며, 혹은 말하자면 생에 새로운 증서를 준다는 것………*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곽복록 역. 을유문화사 간 1983. 402p.


두 사람의 남녀가……… 서로 애욕의 눈초리를 교환” 함에 있어서 자기들의 “일거일동에 대하여 왜 그렇게 남의 눈을 두려워하는가? 왜 그렇게 겁을 내며 몰래 교제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이” 그렇게 밀계하면서 성교라는 행위를 하지 않았더라면 고해(苦海)와 같은 인류의 모든 비극을 단절시킬 수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류를 배반하는 반역자”로서 생식을 통해 비극적 종족 유지를 영속시키려 하는 데 대한 가책이라고.**


**쇼펜하우어 《Parerga unt Paralipomena(한국어 역 《人生論》). 崔旻洪 역. 집문당 간. 1971. 105p.


이 견해는 일단의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이나 현실, 특히 성이 개방되어 있는 현시대와는 동떨어진 주장이다. 


성(性: sex)의 가치판단: 성적 수치심과 죄의식 2 현자 타임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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