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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가봄 May 21. 2024

유머 코드에 대하여.

웃긴 거 좋아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밌는 것에 대한 특별한 애착이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재치 있는 사람들도 워낙 많은 게 한국이다. 이 좁은 땅덩이에서 재미로 무장한 수많은 사람들이 무수히, 그리고 꾸준히 튀어나와 수백만 명이 구독하는 유명 유투버가 되기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국민성 자체가 해학적인 DNA를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누구 말마따나 어릴 때부터 ‘싱크빅’을 배운 부작용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이 한국의 유머러스함이 너무나 마음에 든다.


오죽하면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라는 속담도 있는 나라다. 웃기면 잘못도 쉽게 봐준다.

(뭐, 나는 화가 많이 난다면 침뿐만 아니라 욕도 뱉는 편이지만)


<애교>라는 단어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단어라고 한다. 화났을 때 애교로 어느 정도 무마가 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유머를 즐기는 민족인 걸 느끼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유머는 ‘타이밍과 센스가 절묘하게 절여진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상황과 그 타이밍에 딱 맞게 등장해 줄 때, 비유를 찰떡같이 잘했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을 참지 못하게 된다.


무대 위에 올라가 “내가 너를 웃기겠다.” 작정한 슬랩스틱의 유머보다는 생활 속에서 잔잔한 대화 흐름 중에서 툭 하고 튀어나오는 곁가지들을 사랑한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유머코드를 가진 대표적인 연예인들은 윤종신이나 성시경 님이다.


이들 역시 재미로 무장해서 개그 폭탄을 안겨 주진 않는다. 잔잔하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만드는능력이 있다. 또 적당히 무게감 있는 표현력이 너무 좋다.


나는 매사 진지한 사람 곁에 있으면 마치 생기를 잃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진중하고 깊이 고민하는 그들에 비해나만 요행을 꿈꾸는 것 같다. 깊이 있는 생각 따위는 안 하는 가벼운 사람처럼 느껴지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보다 생각이란 걸 하면서 산다. 가끔 무거움은 일부러 감춰 둘뿐. 이미 온갖 고민거리와 장애물이 가득한 삶에 나까지 무게감을 더하고싶지 않다.  


단순히 유머가 삶에 ‘활력소’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름지기 필수불가결한 요소 아니겠는가.  


기계가 정비가 필요하듯이 유머는 사람에게 휴식의 순간이자
수분 공급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에는 유머러스하지 못한 편이었는데 공식 ‘아줌마’가 되고 난 뒤부터는 한결 편하게 나만의 유머를 건네고 다닌다.


몇 번의 테스트를 통해 나름 타율도 나쁘지 않아 졌다. 그리고 나와 웃음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깨달았다.




나와 1시간 정도 거리에 사는 친구 P는 어렸을 때부터 비슷한 유머 코드를 가졌다.

가끔 그녀와 통화하는 날에는 볼이 얼얼할 정도로 웃게 된다.


단전에서부터 올라온 것 같이 품위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경박한 웃음소리가 서로의 귓가에 울린다.


나중에 좀 더 늙어서는 이 친구와 버스 한 정거장 정도 거리에 살고 싶다. 오래도록 이 웃음기를 잃지 않고, 서로의 관절염을 소재로 놀려가며 그렇게 지낼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는 남편에게 참 감사하다. 평생 함께 살아야 하는 부부 사이에 유머코드가 맞지 않았다면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꽤나 허접한 내 유머에도 그는 늘 웃음을 참지 못해서 나의 개그 욕심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다.



나의 두 딸도 마찬가지다. 엄마랑 얘기하면 배가 찢어질 것 같아서 그만하고 싶다고 두 손을 들 정도로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주는 딸들이 너무 사랑스럽다. 자꾸만 그 좌우로 흔들리는 목젖을 한번 더 구경하려고 우리만의 ‘깔깔’ 포인트를 만들고 싶어진다.



누구에게나 재밌고 편안한 사람은 될 수 없겠지만 나와 함께 나누는 대화가 맛있게 기억되길 바란다. 답답한 공기에 시원한 바람이 되고 싶다.



나중에 꼭 사랑스럽고 귀여운 할머니로 살아 야지 다짐한다. 공식 ‘아줌마’에서 공식 ‘할머니’까지 되면 얼마나 더 멋진 유머를 구사하게 될지 스스로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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