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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May 15. 2024

놀이터 소셜라이프?

회사랑 비슷한 이유

아파트 놀이터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놀이터를 얼핏 보면 주요 인물은 아이들처럼 보일 수 있으나 보초를 서고 있는 엄마들의 사회적 관계도 그곳에서 만들어진다.



아이들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가 트이고 보다 촘촘한 관계로 이어지는 전개.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까지 하게 되면 뭐.. 학창 시절 친구보다 마음이 열린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거리감 아니던가.


민낯 그대로 자연인 상태의 모습으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힘을 빡 주지 않아도 되는 거리.


간단히 커피 한잔하고 헤어지기 딱 좋은 사이.


오히려 학창 시절 친구에게 여러모로 ‘잘 사는 A’의 이미지를 유지하느라 하지 못했던 속 얘기가 오고 가기도 한다.


놀이터는 그들 만의 해우소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사실 ‘B의 아이가 사시라서 안경을 쓰게 된 것.’ ‘C의 딸은 6살이나 되었지만 아직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해 놀다 가도 화장실로 뛰어가야 한다는 것.’ 말 못 했던 자녀의 고민거리를 나누기도 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방구석 오은영들이 여기저기 출몰한다.

*출처:위키디피아


놀이터는 기본적으로 같은 업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인 것이다.


모인 이들은 ‘육아 중’이라는 공통점이 베이스가 되어 나름의 직함도 가진다.


회사랑 똑같다. “예슬이 엄마” “서준이 엄마”와 같이 실제 이름 대신 저마다 특별한 호칭으로 불린다.


자연스럽게 비실명제로 활동하는 것도 놀이터 커뮤니티가 가지는 특이점이다.  


놀이터의 대화는 잡담 같아 보여도 상당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서 때로 육아에 질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시적으로는 양육 팁부터 거시적으로는 가정 경제의 발전까지 이어지는아주 다양한 대화들이 이루어진다.


내 아이와 비슷한 또래 아이의 학습량과 진도. 좋은 교습시설, 아이랑 나들이에 갈 만한 근교 정보는 물론이고 주식과 정치까지 소재도 대화의 주제다.


최근에 주식 상장 IPO 대어로 떠올랐던 “현대마린솔루션”의 상장 정보를 이곳 놀이터에서 들었다면 도대체 놀이터란 어떤 곳인가에 대해 호기심이 조금 생길지도 모르겠다.


백색가전이 상용화되기 전 1960년대까지 아낙들은 모두 빨래터에서 자연스럽게 그들 만의 리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빨래터의 현대판 버전이 놀이터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무척이나 흡사한 면이 많다.

*출처:연합뉴스 [사진 속 어제와 오늘] 빨래터 ①


그 당시 빨래터와 마찬가지로 반수동적, 상당히 주기적이다.


(가끔은 카카오톡 단체 톡 방이 살아 움직이 게 된다면 딱 이 모양새가 아닐까 생각한다.)


노란색 스쿨버스가 단지 안에 들어와 멈추고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우르르 놀이터로 뛰어간다.


그래서 꼭 몇 월 몇 시에 놀이터에서 만나자라는 약속 없이도 주기적으로 만나지는 공간이다.


놀이터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삼삼오오 뜻이 맞는 소규모 모임이 형성된다.


같은 어린이집에 보내는 또래 엄마들의 대화그룹, 다둥이 엄마들의 만남, 초등학교 엄마들의 학부모 모임이 세포들의 결합처럼 뭉쳐진다.


이윽고 그날의 이슈들이 주요 화제로 떠오른다. 문화센터의 휴강, 영어학원 원장선생님의 학벌, 그리고 상가의 떡볶이집 아저씨의 불륜까지 놀이터 게시판이 시끄럽다.


실명이 배제되고 익명성을 가지는 공간이 개인적으로 묘한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때때로 내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은데 다짜고짜 언니 동생 하는 건 선을 넘는 것 같다.


 ##씨로 부르기에는 너무 형식적이고 예의를 차리는 것 같아 ##엄마가 되는 쪽이 차라리 안정감 있다.


나는 이 묘한 커뮤니티에서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다고 느낀다. 딱 적당한 사회적 거리가 있는 소셜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재밌는 공간이다. 깊이 있는 유대감을 서로 원하지 않으면서적당히 자랑도 하고 흉도 본다.


선우엄마는 선우아빠랑 싸웠다고 했다. 모욕적인 말을 들어서 너무 화가 나 펑펑 울었는데 덕분에 남편이 가방을 하나 사준다고 해서 풀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엄마들은 그런 말이라면 나는 3번도 더 듣고 가방 3개를 더 받겠다고 시답잖게 깔깔거렸다.


선우네 엄마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느껴지지 않는가. 부부 사이가 안 좋다기보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녀 남편의 재력임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다.   


더 깊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끼리는 저녁시간에 아이들을 재워 놓고 치맥 타임을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러다 관계가 그르치는 경우를 여럿 보았다.


대화를 하고 싶지 않으면 얼마든지 잠깐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수 있는 단체 톡방처럼 딱 그 정도의 거리를 둔 관계가 가능하다는 게 꽤 맘에 든다.


더 이상 놀이터는 아이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예전처럼 고무줄 놀이하는 친구 옆에서 서성거리다가 박자와 리듬에 맞춰 자연스럽게 고무줄놀이에 합류해서 친구가 되는 시대는 지났다.


성인 보호자가 상주하는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


낯선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배우고 예전보다 배타적인 성향이 강해진 세대가 새 친구를 사귀는 것 또한 매우 힘든 일이다.


놀이터는 <놀이기구가 있어 아이가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1차원적인 타이틀 말고도 “님네 가정의 아이와 우리 아이가 같이 놀아도 됩니다.”라는 테스트 무대이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선크림과 모자, 그리고 우리 가정의 경제적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모호한 착장으로 무대에 나갈 준비를 한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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