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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May 11. 2024

37살. 사람이 무서워.

30대 인간관계에 대하여

근거리에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이 었다. 가는 길이 험하거나 멀지도 않았다. 핸들에 손을 올리면서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 마음 속에서 훅 치고 올라왔다.


인간관계가 불편해지기 시작한 게 정확히 언제부터 라고 집어낼 수는 없다.


그렇지만 파워 ‘E’(외향형) 인간인 줄 알았던 내가 이렇게 사람이 무서워 지리란 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임에 속해있는 게 좋았고 그게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사회구성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 어딘가 비빌 언덕이 있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나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좌절이고 매력 없는 사람임을 방증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이 바뀐 건 20대 후반. 사람 만나는 게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닐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에 혼란스러웠다.

그간 맺어온 인간관계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던 것 같다. 심지어 유명 뷔페나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로 돌잡이, 회갑연 MC를 볼 정도로 대화와 소통을 좋아했던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가장 어려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인간관계라고 대답할 것이다. 연식이 생기면 생길수록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정말 모르겠다.


대학 시절 전공은 심리학과지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에 엄청나게 공감이 된다. 어쩜 이런 말을 만들었을까. 진리다.


100년 해로할 것 같이 인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부부 중 50%는 이혼하고, 10년을 서로 의지한 친한 친구지만 정말 매우 매우 사소한 문제로 절연하기도 한다.


친구가 “봄아 우리 너무 오랫동안 못 봤네. 보고 싶다.”라고 전해 온 따뜻한 말에 나도 모르게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특정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일.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궁금해하는 마음이 귀하고 고마워 약간의 감동스러움도 없진 않지만, 아니. 분기에 1,2번이면 족하다. 이제 어떤 모임에 속해 있지 않아도 좋다.


흔히 기가 빨린다고 표현하는데 그게 뭔지 알아버린 이후로 자연스레 만남 횟수가 줄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좋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운 이 감정을 나는 안테나가 늘어간다고 표현하고 싶다. 한 살 한 살 먹어갈 때마다 상대방의 기분과 상태를 굳이 상대가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면서 안테나가 나이테 처럼 1년에 한 개씩 늘어간다.


안테나가 늘어가면서 상대방과 주파수를 맞춰가는 행동을 억지로라도 하게 되고, 하려고 했던 말을 억지로 참거나 삼키게 된다.


그래서 만남을 통해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기보다 내 안의 전파가 빠져나가는 허한 느낌에 돌아오는 길에 ‘이게 맞나.’라는 허탈감을 지울 수 없다.


나대는 걸 좋아했지만 이젠 내가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사회적인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서로의 선을 우연히 라도 건들까 봐 긴장하는 관계에서 눈치 보며 애쓰기엔 에너지가 너무 딸린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가 카톡에서 만나자는 이야기를 할까 봐 떨려하는 나를 보고 실소가 나왔다.


이런 내가 어색해서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쿨하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다. 나는 사람이 무서운 37살이 되었고 안테나도 37개나 달려버렸다.

전파 혼선으로 더 이상 내 기지국이 전파를 수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필수 전파만 빼고 안테나 수리 작업을 시작한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도록 조금 덜 예민하고 무딘 것으로 교체하고, 작은 혼선 정도는 당황하지 않도록 안테나들을 잘 매만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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