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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 Apr 11. 2024

아니,순수한 사람 별로 안 좋아해.


글쎄.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아니, 난 순수한 사람 별로 안 좋아해."

악의 없이 순수한 사람이 건네는 말에 너무 상처받지 말고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는 조언을 들었을 때 나는 저렇게 대답하곤 한다. 그렇다. 나는 머리가 나쁘고 착한 사람보다 머리가 좋고 똑 부러지는 사람이 같이 있으면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주변인들 중 늘 말을 쉽게 내뱉는 A라는 인물이 화두가 될 때가 있다. 모두가 그 점에 대해 불편감을 느끼는 것이다.


간혹 "그래도 그 A 씨 실제로는 착하잖아." "나쁜 의도는 없어. 너를 깎아내리려고 한건 아니야"라는 묘한 대사가 들려올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저 말로 받아친다.


그리고 덧 붙인다. 순수한 게 아냐. 못 배운 거야. 아니면 머리가 좀 나쁘던가.

너무 뼈아픈 말일 수 있으나 실제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무위키에 <사회성>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이러한 결과가 나온다.


사회성()의 학술적인 정의는 "사회적 성숙, 타인과 원만하게 상호작용하는 능력, 다양한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말하며, 사회적 능력(social competence)과 사회적 기술(social skill)로 나뉜다. 다른 의미로는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으로서 'Sociability'를 의미한다.
출처: 나무위키_"사회성"


능력이라는 단어와 'ability'라는 단어가 사회성안에 들어 가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또한 능력치이다. 사회성의 부족은 성장환경에서의 경험부족과 후천적 배움의 영역도 분명히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


딸의 친구는 3학년. 사근사근 인사 잘하고 어른인 나와도 편안하게 대화를 잘한다. 그리고 딸과 친해지고 나서부터는 부쩍 자주 집에 놀러 온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몇 가지 거슬리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안방에 딸과 함께 누워 있거나, 냉장고를 열어 간식을 찾는다. "이모! 간식 없어요? 아.. 저는 딸기는 안 먹는데^^" 아주 시원시원하게 물어보고 시원하게 대답도 잘한다.


처음 몇 번은 나도 편했다.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하고 원하는 게 뭔지 잘 들여다 보이니까 맞춰주기도 쉬운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 7:00 모두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시간 누군가 요란하게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

그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가 함께 서있었다. "아직도 자요? 호호호호!" 둘 다 함박웃음을 짓고 있어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데 살짝 어려움을 겪었다.



이른 아침 찾아와 벨을 누른 이유는 다른 게아니라 자신의 집에 선물로 들어온 '빵'을 나눠주려던 것이었다.


그리고 덤으로 약간의 핀잔도 곁들여 받았다. 그 아이의 엄마는 자다 나온 날 약간 이상하게 보며 물었다.

 

"아니~ 왜 머리는 왜 묶었대?"  

"아.. 원래 묶고 자요(당황). 빵 고마워요"  

 

그녀의 어투로 미루어 볼 때 왜 문 열기 전에 급하게 머리를 묶고 혹시 외모를 점검했냐는 뜻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 모녀는 그 빵 모녀와 최대한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자연스레 나에게 보내던 시그널이 불편해졌고, 사회성 좋고 순수하다고 여겼던 아이가 나에게 역으로 물었던 질문도 한몫했다.


그 아이가 우리 아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던 날에 나는 우리 아이에게 단속하며 말했다.


"별님아, 남의 집 가서는 냉장고 문을 열거나 침실에 들어가거나 먹고 싶은 간식이 있어도 함부로 손대면 안 돼."  


그러자, 그 아이는 나에게 "왜 안 돼요???????"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돼 물었다. 진짜 몰라서 묻는다는 동그란 눈과 순수한 표정.


나는 그때 알았다. 나는 저런 순수함을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 작다.

적어도 무엇이 매너이고 예절인지 가르치는 집에서 자란 사람이 좋다.


현대 사람들은 매정하다. 이미 한가득 쩔어있는 삶에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정신까지 피곤하게 하는 걸 혐오한다.

그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굳이 같이 어울리고 싶지 않은 부류로 본다.


나도 그저 그런 현대 사람이다. 그리고 시간도 많고 마음이 넓고 바다와 같았다면 내가 한마디 더 가르치고 어쩌면 참고 지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알아버렸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고, 나는 그 사람의 부모가 아니다. 가르칠 수 없고 바꿀 수 없다.


나는 할 말 안 할 말을 속 없이 편하게 내뱉으며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사람도 이해하기 힘들다.


어찌 됐든 할 말은 해야 하고, 워낙에 솔직한 사람이라 그렇다고 포장한다. 하지만 악의는 없다는 그의 말에는 어쩌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진한 이기심이 깔려 있다고 본다.



길을 걷다 보면 꽃비가 내리는 풍경을 마주하는 다정한 날씨가 찾아왔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달큼한 꽃비같이 다정한 사람을 만나며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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