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수치의 기록)
아이와 반갑게 눈을 맞추고
눈치껏 교실 맨 뒤에 줄을 맞춰 섰다.
초등학교 3학년된
큰 딸의 수업참관을 위해
공개 수업시간에 맞춰 입장한 교실.
딱 40분 진행되는 짧은
공개 수업시간인데
그 짧은 찰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직 현재 진행형이지만
두 아이를 키우면서
깨지고 깨닫게 된
나름의 양육관은 크게 두 가지.
키워드는 '독립'과 '다름'이다.
<독립>
양육을 통해 자녀가 성인이 되었을 때
'혼자 먹고살게 하는 기능을 갖추게 하는 것'과
<다름>
'쟤는 나랑 태어날 때부터 다른 인격체'라는 걸 존중해 주는 것을 항상 마음에
새겨두고 키우려고 노력한다.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이 세상 어떤 부모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양육 과정에서
정말 자립할 수 있도록
키우는 건 상당한 디테일과 노력을
요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극한의 표정관리와
아이가 맡은 바 역할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24시간 365일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어제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 아이가 사회생활(?) 하는
모습을 부모로서
편안하게 직관하는 건
너무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왜 저렇게 느리지?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아직도 저걸 저러고 있네. 어어? 과제 수행시간 끝나가는데..?
아휴 목소리 좀 크게 하지 왜 저래?
끊임없이 속으로 질타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나는 진짜 말만 독립적인
자녀로 키우겠다고 이야기하는
맘무새 (맘+앵무새) 였던 것이다.
정말 다행히도
저 말들은 모두 속으로 되뇌고
입 밖으로 뱉어내진 않았다는 것으로
깊이 안도했다.
실제로 선생님이 지도하시는 건
내가 아니라 내가 낳은 자녀였다.
수행을 하고 실제로 평가를 받고
부딪혀 보는 것 또한
내가 아니라 저 녀석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느꼈던
대리수치감은
아마도 내 자녀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편감이었을 것이다.
수업시간 내내
나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어떤 마음으로 저 의자에 앉아 있었는지
그리고 엄마가 나를 어떻게 바라봐 주길
원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수업 끝난 아이가 뒤를 돌아 나에게
눈길을 주자마자 나는 최대한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인사했다.
"엄마 갈게! 너~무 기특해 우리 딸!"
이왕이면 어릴 때 많이 혼도 나보고 스스로 겪어낸 어려움이 어른이 돼서 좋은 경험의 싹이 되기를.
똥인지 된장인지 다 커서 찍어먹는 인간으로 크지 않기를 엄마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