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 기와집>
방문했던 집에서 나는 손님접대는 정말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내 믿음을 확인했다.
아주 거창하지 않게. 시끌벅적 요란한 느낌이 아니라 들어서는 공간에 무심하게 놓은 화병하나만으로도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떠들썩하지 않은 고요한 환영이 될 수 있다.
나는 관습적인 숙박 시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뭔가 틀에 박혀서 상상되는 공간이 재미가 없다는 표현이 맞겠다.
아침엔 럭셔리하게 차려져 어쩌면 메뉴가 눈앞에 그려질 것 같은 조식과 소독물 냄새가 은은하게 나서 달리 말하면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동시에 주는 이질감이 그렇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로 주인의 감수성과 가치관을 엿본 후 묵을 곳을 정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에너지레벨과 취향이 닮은 공간을 찾았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번 숙소는 예기치 못한 언덕을 만나 입구부터 쉽지 않았다. 아 속은 건가.
기대감이 살짝 반감될 찰나 메시지로 온 프라이빗 비밀번호로 자물쇠를 열었을 때 숙소는 외치고 있었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
타임워프가 뭐 별 건가. 갑자기 문을 열면 다른 세상이 펼쳐져서 내가 사는 곳에는 없는 그동안은 몰랐던 공간을 발견하는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단 게 너무 감사했다.
언덕 위 기와집은 대단한 인테리어로 화려한 장식으로 유혹하지 않는다.
그저 단조롭고 평화롭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곳이다.
85년도에 만들어진 서까래랑 기왓장을 그대로 노출구조로 두고 모풍이와 시선이 닿는 곳마다 서까래 색과 비슷한 가구들을 배치해서 우리는 이 집에서 편안한 통일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남향으로 뚫린 커다란 통창으로 요란하지 않은 채광이 넉넉히 들어오고 수원 행궁이 내려다 보일 듯 말 듯 수원의 골목과 일대가 한눈에 읽힌다. 심지어 적당히 멀리 열기구가 떠 있는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목이 길어서 레버만 살짝 내려도 달칵하고 열리는 최신식 방문이 아니라
그 옛날 동그라미 모양의 한 손에 움켜쥐고 열어야 하는 나무 도어 손잡이는 까드득 돌아가면서
방 안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오프닝 브금(BGM)이 되어 주었다.
아파트에서 살고 지내는 지라 이렇게 투박하면서도 내부는 자기만의 색이 독특하게 드러나는
공간을 만나면 내가 돈을 내고 들어 왔지만 이렇게 살뜰히 오랜 집을 보살펴 주고 손님이 머물 수 있도록 고쳐서 에어비앤비에 올려준 주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깨지고 부서지기 쉬워서 손님이 머물다 깰 만한 요란한 소품도 없다.
어쩌면 식상해질 수 있는 기와집 외관에 낮고 푹신한 패브릭 소파와
짙고 어두워 나무색이 제대로 묻어 나오는 가구들, 그리고 이제 내일모레쯤이면 터질 것 같은 자주색 망울이 달린 토기의 화분이 주인의 성격을 보여준다.
내가 자리하기 전에 누가 왔다가 갔는지 흔적은 없지만 무언가 온기가 남은 집.
이 집은 모험가보다는 일상에서 편안함을 잃어 방황하는 그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