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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가봄 Jun 25. 2024

학교 간 딸아이의 전화를 받았다.

외로움에 대하여.

다른 날과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갑자기 딸아이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평소보다 약간 오버해서 집안일을 한 듯 한 느낌이 들어 시계를 보니 시계는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모닝커피를 내려 마셔야 할 시간이다.


늘 따뜻한 커피만 마시다가 요즘엔 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얼음이 투명한 유리잔 벽을 타고 깜깜한 커피물을 헤치며 저마다 다른 속도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소리는 정말 힐링 그 자체다.


한 세 모금쯤 급히 들이키다 여유를 즐겨 야지 속으로 되뇌이며 책을 한 권 들고 거실 테이블에 앉았다.


얼음이 한번 더 자기들끼리 부딪히며 까-드득 소리를 냈다. ‘우----응’ 하는 진동소리.
스팸일지도 모른다는 조심 안내 문구가 떴다. 하지만 이미 여러 번 같은 번호로 전화가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온 전화란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늘 전화를 꺼놓아야 한다는 룰을 기가 막히게 잘 지키는 딸은 꼭 이렇게 통화하고 싶으면 콜렉트콜(수신자 부담)로 전화를 건다.


전화가 오는 일은 3학년이 되고 극히 드물었다. 사실상 학년이 바뀐 이후 로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연락에 미리 걱정이 앞섰다. 다쳤나? 아니면 오늘 돌봄 교실에 가지 않고 집으로 곧장 오려나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콜렉트콜 수신자 부담 전화입니다. 라는 안내 음성이 나오고 연이어 딸의 기운 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울고 있진 않았다. 다행이다.

“응~ 우리 딸 무슨 일이야?” 차분히 물어보았다.


내용을 듣자 하니 함께 잘 지내던 친구 두 명과 갈등이 생긴 모양이었다. 딸 포함 셋은 항상 점심이 끝나고 교실로 돌아와 자습을 하는 멤버다.


홀수이다 보니 짝꿍이 없는 친구가 꼭 한 명 발생한다. 누가 지은이라는 친구 옆에 앉을 것인가가 오늘의 논쟁거리였다.


지난번엔 지은이 옆자리에 서하가 앉았으니 오늘은 으레 자기 차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뜻 밖의 난관이었다.


서하는 지은이 옆자릴 오늘도 사수하려고 했다고 한다.


게다가 앉겠다고 하면 군말 없이 늘 옆자리를 내어주던 지은이도 오늘만큼은 왠지 달랐다고 했다. 유독 까칠하게 대하 더란다.


아이는 그 순간 사무치게 외로워졌다. 그래서 엄마가 생각이 났고 속상한 마음을 3분도 안 되는 짧은 통화에 모두 쏟아 냈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내쉴 동안 나는 머릿속에서 좋은 낱말들을 마구잡이로 배열했다. ‘아, 뭐야 별거 아니었네.’라는 내 속내를 들키기 않을 아주 어른스러운 문장을 뽑아내려고 노력했다.


“아 뭐야 별거 아니잖아. 그거 일러주려고 이 점심시간에 엄마 놀래게 전화를 다 걸었어? 얼른 들어가서 하던 거나 마저해!”라고 대답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았다.


고르고 골라 생각해 낸 내 대답은 “그렇구나. 어휴, 우리 딸 속상했겠네.”였다. 내 멋대로 입이 움직이지 않아 다행이다.


아이가 지금 느낀 감정에 너무 동요하지도 그렇다고 비난하지 않는 적절한 선에서 공감해주고 싶었다.  


사실 여자 아이들 간의 미묘한 갈등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정말 진을 다 뺄 만큼 힘들다.


차라리 치고받고 싸우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치열한 기싸움과 신경전이 여자아이들 특유의 싸움방식이다.  


아이는 내 대답에 아군을 얻은 듯했다. “응 그래서 나 너무 속상했어.”라고 말하는 딸에게

“엄마랑 통화하고 나니 기분은 좀 괜찮아? 오늘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해 보자. 학교 끝나면 얼른 와 엄마가 네가 좋아하는 간식 해놓고 기다리고 있을게.” 하고 기분 좋을 만한 소스도 살포시 얹어 통화를 마무리했다.



멈췄던 집안일을 이어 나간다. 더워진 날씨 때문에 살갗에 치즈처럼 늘러 붙는 도톰한 이불을 세탁기 속에 욱여넣었다. 그러면서 아까 못다 한 말을 밖으로 웅얼거린다.


“엄마는 있잖아.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고 생각해. 인생은 원래 외로워”

정말이다. 정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인생엔외로움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는 아직 그걸 받아들이기엔 사랑이 넘실거리는 나이 10살일 뿐이다.



그녀가 인생은 원래 외로운 것이고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이 지독한 외로움을 해결해 줄 수 없을 수 있단 걸 스스로 알게 될 때가 온다면 이 순간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고독과 외로움을 잔뜩 묻힌 채로 그대로 파묻혀 쉬어도 좋을 안식처가 있다는 걸. “원래 인생은 외로운 거야 나도 그래.”라고 가지고 온 외로움까지 끌어안아 줄 엄마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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