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일로 하루를 채우기
오랜만에 내 이력서를 다시 점검했다. 공공기관, 글로벌 스타트업, 지금의 직장까지 — 한 우물을 깊이 파지는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해서 걸어왔다. 바로 사랑하는 일로 하루를 채우는 삶.
여행을 통해서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전남 구례 카페 사장님은 옻과 목공을 사랑했다. 옻물로 내린 커피를 판매하며, 자신의 목공 작품으로 공간을 채웠다. 본업은 따로 있었지만, 매일 두 시간씩 그곳에서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 갔다. 손님이 있든 없든, 가장 편안한 곳에서.
치앙마이 에어비앤비 호스트 데이브는 20년에 걸쳐서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었다. 건축 지식도 없이 시작했지만, 매일 조금씩 나아갔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신을 모아 두었다. 지금 그는 매일 신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명상 중이다.
요가 선생님 폴리나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스스로 정하고 싶다는 이유로 퇴사했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태리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만, 절대 무리하지 않는다. 무조건 많이 버는 방향보다는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 중이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말을 했다. 자유는 절대 공짜가 아니라고. 두려움을 딛고,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반복해야만 겨우 얻을 수 있다고.
나 역시 이것저것 시도를 했다. 카카오 라떼 수입이 무산되긴 했지만, 무역의 감각을 배웠다. 공연 기획 경험 덕분에 내가 원했던 건 무대가 아니라 문화의 연결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리랑카에서는 여행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지 실험해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 만약 내 공간이 생긴다면, 어떻게 꾸밀 것인가?
* 400억이 생긴다면,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
*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구례에서, 치앙마이에서, 롬복에서 만났던 질문의 답이 서서히 보인다. 400억이 생긴다면, 나는 홍법사의 하도명화처럼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내일 죽는다면, 오늘의 소감을 글로 남기겠다. 하지만 여전히 어떤 공간을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고민하고 있다.
난 아직 인생의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중이다. 평생 찾다가 끝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여행을 사랑한다. 그리고 그 기록을 글로 다듬어 세상과 공유하는 시간이 좋다. 출퇴근 자투리 시간에 열심히 글을 썼다. 그 결과, 올해만 해도 브런치에 쓴 글이 쉰 편이 넘는다. 가장 개인적인 여행 이야기로 누군가의 공감을 얻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데이브가 욕조 하나에서 시작해 자신의 사원을 완성했듯이, 이 브런치 북이 첫번째 벽돌이 되어주길 바란다. 첫술부터 배부르길 기대하진 않는다. 보광사에서 세번째 시도 끝에 관음바위를 찾아냈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이다. 언젠가 작가로 불리는 그날을 위해서, 오늘도 묵묵히 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