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이 이야기는 2022년부터 시작된다. 동생이 요가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는 시점에 맞춰, 발리에서 만났다. 우리는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요가 수업도 들으며, 무엇보다 우붓 골목을 이곳저곳 다녔다. 가장 좋아했던 가게는 카카오 라떼 카페였다. 쌉싸름한 초꼬렛을 좋아하는 나에겐 지상 최고의 음료였다. 결국 파우더를 사 왔다.
집에서 카카오 라떼를 즐기던 어느 날, 갑자기 이 음료를 한국에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무역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끌리는 아이템은 처음이었다. 그날로 그 업체에 연락을 했고, 그들 역시 한국 시장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다. 우리는 한국 진출을 위한 짝꿍이 되기로 했다. 사업자도 내고, 수입 판매업 신고를 완료했다. 판매 플랫폼은 와디즈. 사전 구매자가 충분히 있는 경우에 수입하는, 손해를 최소화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2023년 5월
“언니, 비즈니스 하려면 직접 가봐야 될 것 같아.”
동생이 말했다. 현지 업체에 얼굴 도장을 찍고 신뢰를 쌓아야, 일이 술술술 풀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어떤 물건을 얼마에 받느냐에 따라서 이익이 달라질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그래, 너 오랜만에 맞는 말 하는구나. 그 길로 표를 예매했다. 비즈니스를 위한 여행이라니, 어쩐지 설렜다. 내가 만든 나만의 출장이었다.
우리가 점찍은 카카오 브랜드 AAA(가칭) 대표가 직접 제조 공장 곳곳을 소개해주었다. 작지만 아기자기한 규모였다. 그들이 직접 만든 카카오 라떼 버전을 시음해 보았다. 수프처럼 묵직한 질감이 특징이었다. 낯설었지만 마실수록 매력적이었다.
조금 더 시장조사를 하기 위해, 비슷한 업종의 다른 업체도 둘러봤다. 한 업체는 맛은 있지만 가격이 비쌌고, 다른 업체는 맛이 평범했다. 굳이 인도네시아 브랜드를 선택할 이유가 부족했다. AAA 고르길 잘했다.
하지만 수입을 진행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터져 나왔다. 와디즈에 해외 제품을 소개하려면 반드시 “단독 판매” 조건이 있어야만 했다.
“프로젝트 기간에 저희한테만 팔아주실 수 있을까요? 한국 단독판매 조건이 있어야 와디즈를 진행할 수 있어요. 도와주세요.“
내 말을 듣자마자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고민이 필요하다며, 조금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 아무래도 선뜻 내주기 어려운 권리였나 보다. 더 큰 문제는 배송 시간이었다.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최소 100kg 정도를 한 번에 받아야 하는데, 이 정도 제조하는 데만 3주가 걸린단다. 여기에 배송 기간까지 더하면 5주가 걸리는 셈이었다. 당일 배송에 익숙한 소비자에게는 백 년이나 다름없는 시간이었다.
탄탄해 보였던 파트너 관계에 서서히 틈이 벌어졌다. AAA 대표도 단독 판매 권한을 주기 부담스러웠고, 나도 제작 배송 기간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협의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아름다운 이별을 택했다. 아쉬웠지만 속상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고, 무역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식품을 경험해 봤으니까. 좋은 업체를 식별하는 안목이 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경험을 통해서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겠지.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2024년 3월
진짜 ‘사서 파는’ 경험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생겼다. 발리 여행 중 한국에서 보지 못한 예쁜 소품을 조금씩 구매해 두었다. 스마트스토어에서 팔 생각이었는데, 막상 알아보니 대부분 중국산이었고, 이미 한국에 저렴하게 파는 셀러들이 있었다. 난 멍청이였다. 조금만 더 찾아봤다면, 이런 물건은 사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 이름 모를 장인이 만든 나무 조각 작품이었다. 그가 디자인한 문양을 직접 깎고 사포질하는 모습을 보자마자 반해 버렸다. 첫 번째 방문했을 때는 한 점을 샀고, 두 번째 방문하기 전에는 십여 개를 미리 주문해 두었다.
이건 스마트스토어에서 팔리겠지? 이 아이템으로 커머스를 경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게으름이 도져 버렸다. 택배 시스템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남들은 다 어떻게 하고 있을까. 시작하기 전에 포기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산 것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때 또 동생이 말했다 — ‘당근에 올릴까?’ 스마트스토어보다는 훨씬 쉬운 방법이었다. 사진과 글을 등록했다. 회사 근처, 집 근처, 동생 집 근처 할 것 없이.
다양한 사람이 관심을 표했다. 신기했다. 채팅 메시지로 이 아이템을 구매하고 싶은 이유를 물었다. “보기에 예뻐서”, “요가원 소품으로 두고 싶어서”, “집들이 선물하기 좋아 보여서” 등등,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리고 며칠 만에 완판되었다. 나의 첫 무역이었다. 수익은 얼마 안 되지만, 통장에 찍힌 입금 내역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동생과 케익을 먹으며, 우리의 작지만 소중한 성취를 축하했다.
그간의 여정을 차분하게 돌아보았다. 카카오와 나무 조각까지. 대단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이렇게라도 도전한 나를 칭찬해 주고 싶었다. 드디어 발걸음을 떼었다는 생각에 잔잔한 안도감이 들었다. 사실 허무감도 들었다. 와디즈 준비할 때는 사진 촬영, 디자인, 문구 수정까지, 비용과 시간을 많이 들였는데, 당근에서 단 하루 만에 성과를 만들었으니까. 그간 내가 너무 어렵고 좁게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카카오 라떼는 매혹적이었지만 취향의 영역이었고, 시장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나무 조각은 특별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제품이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특별한 선물을 찾는 사람도, 원목 아이템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판매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 단순한 차이를 배운 것이다. 팔 수 있는 길도 하나가 아니었다. 와디즈, 당근,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채널은 다양했다.
대규모 무역을 시도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발견한 특별하지만 보편적인 제품이 있다면 언제든 소개하리라. 그때는 과거의 나보다 더 좋은 전략을 세울 수 있겠지. 그간의 시도를 통해서 힌트를 충분히 얻었다는 것, 이것이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