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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고의 무덤

by 돌담

16살인 나에게 아빠가 지폐 여러 장을 던졌다. 세탁물을 집까지 배달해 준 아저씨에게 세탁비를 아빠에게 달라고 해서 피곤한데 움직이게 만들어 짜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돈은 내 몸을 맞고 바닥으로 추락했고 그 위에 내 마음에서 새어 나온 붉은 점들로 자욱이 생겼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모두가 알고 있는 진실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모습은 각자 다를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가족 안에서 사랑이란 추가 한 쪽으로 치우지는 모습이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점 나의 저울은 한 방향으로 고개를 내렸다. 가족을 미워해도 되나? 나는 질문을 던졌고, 그것은 그대로 내게 돌덩이가 되어 떨어져 상처를 입혔다. TV를 좋아하는 아빠 옆에서 온종일 붙어있기도 하고 관심도 없는 축구 경기를 보며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귀찮아하면서도 답은 다 해주었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며 나는 아빠가 내 마음에 새긴 흉터를 보지 않기 위해 애써 반창고를 붙였다. 반창고를 10개 넘게 붙이고 있을 때 쯤 퇴직을 앞둔 아빠는 그제야 가족이 눈에 밟혔는지 처음 만나는 사이보다 더 어색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려 했고 나는 그 노력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땐 나도 어렸으니 감정적인 대화만 오가서 더 우리의 거리가 좁혀질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며 얽힌 실타래를 풀고자 했다. 아빠가 한 걸음 다가온다고 느끼면 나는 두 걸음 더 걸으려 애썼다.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는 한편 보지 않으려 덮어 두었던 많은 반창고가 발에 차였다. 이걸 다 떼어내고 흐릿해진 흉터를 보면 적어도 나는 정말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나의 가장 큰 흉터에 대해 아빠에게 물었다. 내가 언제 그랬어? 기억도 못 하는 아빠를 보며 다시 흉터에 실금이 생기고 그 사이로 꾸역꾸역 피가 비집고 상처의 존재를 알렸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아빠는 조금도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과거는 과거에 묻자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혼자 내 상처 위로 반창고를 꾹꾹 붙였다. 아무도 봐주지 않을 내 반창고의 무덤 앞에서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아빠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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