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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도 괜찮지 않아

by 돌담

"다 괜찮다고 하면 선생님은 힘들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다 괜찮다고 한 말에 직장 동료가 걱정스레 물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은 좋겠다는 부러움의 말만 듣다가 처음으로 주어진 '나'에 대한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순간들을 좋아했다. 딱히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떤 감정이 없어도 부탁을 들어주었을 때 돌아오는 호의의 시선과 호선을 그리는 입매가 특히 나를 행복하게 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얻는 행복이 풍선을 불듯 손쉬워 "괜찮아."라는 도구를 항상 예쁘게 준비해 두었다.

"이런 건 혜민이가 잘해요. 혜민이가 할 거예요."
괜찮다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 중 가장 가벼워졌을 때였다. 시험공부, 학생회일, 과제까지 내 일과만으로 가득 차 버거운 일정표에 동기의 한마디로 더 큰 돌덩어리가 굴러들어 왔다.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지? 라고, 묻는 친구에게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애써 반듯하게 만들었다.
"괜찮아."
처음으로 그 말이 볼품없이 구겨졌다.

나이가 들면서 나의 가장 좋은 것이자 쉬운 말이었던 "괜찮아."는 형편없이 마음 구석에 나뒹구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괜찮다며 넘겨왔던 순간들은 점점 당연함으로 내 마음을 검게 덧칠했고, '왜 굳이 나한테.'라는 생각의 가시가 습관처럼 괜찮다고 말하는 목구멍을 아프게 찔렀다.

사실 힘들어요. 저는 "괜찮아."라고 말할 때 하나도 괜찮지 않아요. 나에게 부탁의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흑색의 마음을 어떻게든 예쁘게 보이려 서툰 솜씨로 포장했으나 그게 너무 초라해 보였다. 그러고 나서야 뒤늦게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어느새 나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터져 나오는 싫은 마음을 괜찮다는 말로 억지로 감추고 있었다. 계속 숨기고 덮어왔던 마음에 더 이상 행복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마음이 다 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그렇게나 노력했는데, 정작 내게는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뒤늦은 깨달음이 지나가고 다른 사람에게 오롯이 향했던 노력을 내게로 돌려보려 서툴게 움직였다. 괜찮냐고 들으면 나에게 5초라도 시간을 주기.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면 그렇게 전달하기. 그동안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괜찮지 않았던 나에게 이제는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입버릇처럼 "괜찮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에게도 "정말 괜찮아?"라고 질문을 던지며, 마음이 정말 거부하는 일에 열 번 중 한 번은 거절의 말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에 앞서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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