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나스타샤 Jul 21. 2024

'못 찾겠다. 꾀꼬리.'였지만 찾았다!

순수한 어미고양이 엄지.

엄지는 그날 이후 우리 집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나에 대한 서운함에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길을 나섰을까...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엄지를 부르러 마당으로 나갔다. 지난밤에 놓아두었던 사료가 줄어든 흔적. 다른 짐승이 먹고 간 걸까. 엄지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날밤 장대비가 쏟아졌다. 모든 게 쓸려내려갈 것 같은 폭우였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을 어미고양이 엄지가 빗속에서 새끼들과 어찌하고 있을지 걱정되어 잠도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비는 그쳤지만 곳곳에 물웅덩이가 보였다. 엄지를 부르는 나의 소리는 간절함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엄지가 온통 비에 젖은 몸을 하고는 뛰어오고 있었다. 아.... 악! 얼마나 기다리던 순간인지, 이 녀석 이렇게 애를 태우다니. 세상에! 비 맞은 생쥐꼴을 하고 와서는 사료를 허겁지겁 먹어댔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엄지는 사료 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급하게 배를 채운 어미고양이 엄지. 그제야 나를 바라보고 말을 걸었다. 젖을 물리느라 축 늘어진 배를 보니 새끼 낳은 모습이 분명했다. 혼자 고생했을 엄지를 연신 쓰다듬으며 나에 대한 원망 따윈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오지 않던 엄지가 지난밤 비를 피하지 못했던 이유가 궁금했다. 새끼들이 어디 있는지 엄지에게 물었다. 엄지는 대답 대신 딴청을 했다. 갖은 애교를 부리며 위로받길 원하는 듯 보였다.


잠시 뒤 엄지가 어딘가로 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나는 따라나설 참이었다. 엄지는 몇 걸음 앞으로 가다가 내가 따라나서는 기미가 보이면 다시 뒤돌아 나에게로 왔다. 그렇게 나를 조금 안심시키는가 싶다가 다시 엄지가 움직이려 했다. 나도 함께 움직일 준비를 했다. 엄지는 다시 가던 길을 뒤로하고 나에게로 오기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엄지가 자신이 가는 곳을 알리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난 엄지에게 인사를 한 후 현관문을 닫는 척 집으로 들어가 빼꼼 쳐다보면 엄지는 귀신같이 알고 자리에 앉아 버렸다. 할 수 없이 현관문을 잠시 닫았다가 열고 나가보면 엄지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날 이후 엄지는 매일아침 먼저 와 현관 앞에 앉아있었다. 사료를 먹고 잠시 후 "이제 갈게."라는 듯 발걸음을 재촉했다. 따라나설 것처럼 하면 뒤돌아 쳐다보며 따라오지 말라는 듯 울었다. 그 모습에 약해져 현관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숨바꼭질을 반복했다. '못 찾겠다. 꾀꼬리!' 엄지의 정확한 행방을 파악할 수 없었다. 


며칠 후 동생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엄지 얘기를 했고 나 혼자는 겁이 나서 풀 숲을 뒤져보지 못했다고 얘기했다. 동생이 같이 근처를 뒤져보자고 했다. 동생의 말에 힘입어 장우산 하나씩 챙겨 들고 풀숲을 젖혀가며 수색에 나섰다. 엄지가 늘 사라지던 방향인 마당 아래 오른쪽 어딘가 풀 숲.


여기저기 수색 중 우산으로 풀 숲을 젖히는 순간 엄지와 눈이 마주쳤다. 엄지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지?'라는 듯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풀 숲 한가운데 덩그러니 자리하고 젖을 물리고 있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새끼들 보호를 위해 움직이지 못했을 엄지. 안전을 보장해 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오직 자신의 몸을 보호막 삼아 새끼들을 품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홀로 새끼를 낳고 먹지도 않으며 며칠 밤낮을 젖을 먹였을 엄지를 생각하니 먹먹해졌다. 새끼 3마리는 눈도 뜨지 못한 채 빽빽 거리고 엄지 품을 파고들고 있었다.


동생은 새끼들을 보고 환호했고 한 마리씩 수건으로 잘 감싸서 집 현관으로 이동시켰다. 엄지는 새끼들을 따라 이동했다. 집 안까지 들여놓진 못해도 현관에 엄지와 새끼들이 안전하게 있을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날의 엄지 표정은 내 머릿속 영상으로 남아있다. 순수한 어미고양이 엄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