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그게 의미 없을지라도
회사 워크숍에서 MBTI(성격유형검사)에 대한 강의를 듣고 각자의 MBTI 유형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강사는 검사 전 주의할 점을 안내했다. 첫째, 좋고 나쁜 유형은 없다고 했다. "너 T야? 어쩐지.""너 P였어?" 이런 식의 말을 하지 말라는 거였다. 둘째, 본인이 추구하는 내용에 체크하지 말라고 했다. 누가 봐도 내향성인 사람이 무의식 중에 외향성을 선망하여 체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나는 몇 년 전에도 MBTI 검사를 한 적이 있다. 검사로 본 나의 유형은 ISFJ. 인터넷에 종종 '용감한 수호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나는 내향성과 외향성이 중립에 가까웠지만 몇 점 차이로 내향성인 'I'로 분류 됐다. 밝은 성격 탓에 사람들에게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때 충전 된다. 감성형인 'F'와 사고형인 'T'에서 난 F가 당연했다. 감성에 휘둘려 멘털이 잠식될 때도 많았다. 감성이라는 말은 내 심장을 뛰게 만드는 단어가 확실했다. 흔히들 얘기하는 J(계획형)와 P(즉흥형)에서 '나는 절대 즉흥적인 사람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ISFJ에 완벽하게 끼워 맞춰지는 느낌에 흡족했다.
두둥! 이번 검사에서는 ESTJ유형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도 한 끗 차이로 49(E):51(I)였던 터 라 내향, 외향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반반은 실속형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의외는 바로 F에서 T가 된 것. 강사가 말했듯 좋고 나쁨은 없지만 '난 왜 T인 게 당황스럽지?' 조금의 위안이라면 극명한 T는 아니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처럼 T(13), F(12)였다. T의 비중이 늘었다는 건 감성과 사고가 적절하게 버무려져 좀 더 현실적인 어른이 된 건가 싶었다.
10대 시절의 나를 지나 20대의 나, 30대와 40대를 거쳐 이제 50대. 시절마다 '나'는 달랐다. 탈피를 하듯 각 시절의 껍질을 한 겹씩 벗어던지며 바뀌고 성장했다. 상황에 따라 달리 살아지기도 했으며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는 삶을 살기도 했다. 시절을 거듭하며 상황에 나를 맞추기보다 나 자신에 집중하고 환경을 바꾸려 노력하며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원래의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 몰랐다.
그날은 그분 없이 아이들과 한가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는 말끔히 치워진 빈 식탁 위에 MBTI유형 검사 얘기로 판을 깔았다. 핸드폰에 눈이 고정되어있던 아이들 귀가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딸이 먼저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엄마, 예전에 ISFJ였는데 바뀌었네? 엄마랑 아빠랑 E, I만 다르고 뒤는 똑같네? 아빠가 ISTJ잖아."
엥? 내가 T로 바뀌는 바람에 그분과 성격유형이 완벽하게 일치해 버린 사실을 알게 됐다. 내 기억으론 결혼 후 그분과 내가 성격이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 적이 없었다. 그분과 내가 다른 이유를 MBTI로 증명하고 싶었던 나의 강한 욕구를 비웃는 결과였다. 뭐라도 꼬투리 잡고 싶은 심리작용으로 딸에게 물었다.
"딸, 아빠가 J야? 계획형은 아닌 거 같은데 왜 J일까?"
아빠에 대한 질문에 딸은 은근히 동생을 겨냥하는 맨트를 날렸다.
"아니야. 엄마, 아빠 완전 J야. 그래서 아빠는 계획한 대로 안 되면 무지 스트레스받고 짜증 나 하잖아. 쟤가 아빠랑 같을 걸? 내가 ENFP라 ISTJ랑 상극이야. 그래서 쟤랑 내가 완전 안 맞잖아."
딸은 MBTI에 완벽하게 이입되어 말하고 있었고 뒤이어 딸의 말에 타격감 1도 없이 아들이 말했다.
"맞아. 엄마, 아빠 완전 J야. 나도 아빠랑 똑같이 ISTJ 야. 그래서 난 아빠가 말하는 게 전부 이해가 돼. 아빠가 얘기할 때 어떤 의도로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기분 나쁘지가 않아."
아들의 말은 내 마음 깊이 울려 퍼졌다. 늘 아빠를 좋아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전부 이해된다는 말은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 그분과 나는 언어가 달랐으며 시간과 공간이 다르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나는 왜 오랜 세월 함께한 그분을 전부 이해하는 지경까지 이르지 못한 걸까.
"그래? 너라도 아빠를 전부 이해한다니 다행이다. 아빠는 행복한 사람이네. 엄마가 아들한테 감사해야겠다."
"저거 봐 저 봐. 쟤 완전 아빠랑 쌍둥이라니까. 호호호호. 쟤는 내가 뭘 얘기해도 들으려 하지 않고 절대 바꾸지 않아.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야. 내가 이래서 쟤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
딸은 MBTI를 빌미로 동생 저격에 신이 나서 열을 올렸고 엄마와 아빠가 STJ임을 잊고 있는 듯했다. '귀여운 딸아, 엄마랑 아빠도 STJ 야..... 흠.'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용의 대화들이 밤늦도록 이어졌다.
그날 딸과 나는 MBTI를 앞세워 우리 집 남자들을 잡도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딸과 나는 하수였다. 그분과 성향이 비슷한 아들은 딸의 공격에도 흥분하지 않으며 여유로웠다.
나는 그분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분과 나의 성향은 달랐고 이해의 폭은 좁았다. 두 아이는 달랐다. 나보다 그분에 대해 더 잘 알고 이해하고 있었다.
어느새 고등학생인 아들은 아빠를 대변하며 나를 이해시키려 애썼다. 20대와 10대를 살아가고 있는 딸과 아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얘기하며 이해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우리 셋은 현재의 내가 변하지 않을 것처럼 서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분과 같은 유형임에도 서로가 맞지 않았으며, 아들은 그분과 같은 유형이라 잘 맞는다고 이야기했고, 딸은 다른 유형이라 완전 안 맞는다고 얘기했다. 이야기 속에 우린 잘 맞고 안 맞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껏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와도 아름다운 생각과 말을 해주며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다.
사진출처 : Image by John Hain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