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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Aug 25. 2024

“엄마, 우리가 아빠 편들어서 속상했어?”

아이들은 오은영 박사, 난 금쪽이였다.

대전에서 기숙사 생활하는 대학생 딸이 주말마다 집에 온다. 평일에 못 잔 잠을 몰아서 자느라 얼굴 마주 보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집에서라도 맘껏 자다 가라고 언제까지 자나 두고 볼 작정으로 깨우지 않으면 초저녁까지 자기도 했다. 얘기라도 하고 싶은 때는 밥 먹으라는 핑계로 깨우기도 했다.


그분과 난 ‘흔한 남매’처럼 의견 충돌이 일어나곤 한다. 서로 뜻이 맞지 않아 툭탁거리는 일상은 웃다가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별것 아닌 일에도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불꽃을 일으키는 일이 가끔 있다. 딸이 대전에서 온 그날도 그랬다.


거실 베란다에 사용하지 않는 러닝머신(내가 사용하던 것)이 몇 달째 빨래건조대처럼 서 있었다. 그걸 시작으로 베란다에는 여행용 캐리어, 전기장판 등 몇 가지 물건이 하나씩 줄짓기 시작했다. 집 밖에 컨테이너 창고가 자리하고 있어 그곳으로 옮겨 놓으면 베란다를 넓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날은 그분에게 베란다에 있는 러닝머신부터 캐리어까지 모두 창고로 옮기자고 제안했다. 그분이 요즘 어깨가 안 좋아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지 못해 고등학생인 아들도 소환했다. 출장 다녀와 계속 베란다에 놓아두었던 캐리어부터 창고로 옮겨 달라고 하니 그분은 곧 사용할 거라고 했다. 쓰더라도 다녀온 뒤 바로 치우길 바랐다.


어깨가 아팠던 그분은 무언가를 들어 올리지 못했고 그러니 그냥 두라는 말도 덧붙였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했다. 난 포기하지 않았다. 어깨 때문이면 아들이 옮기면 될 일이었다. 무슨 일인지 그분은 아들이 옮기는 것까지 막아 세웠고 그냥 두라고 고집을 부렸다. 아이들은 아빠 의중을 알고 내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출장 나갈 때 사용할 거라잖아. 그냥 둬. 나중에 얘기해.”


아빠가 가방 옮기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아들과 딸은 아빠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받아들이고 존중했다. 나는 사건에 초점이 맞춰졌고 해결해야 했다. 또 출장을 나가더라도 치워 놓고 다시 가져다 쓰면 될 일이었다. 출장을 핑계로 치우지 않는다면 캐리어는 앞으로도 쭉 베란다에 있을 게 뻔했다. 그깟 가방이 뭐라고 옮기는 게 귀찮고 힘들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매사 속도가 나와 달랐던 그분에 대한 나의 조급함은 오래된 병이었다. 또 언제 움직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밀어붙여야 한다는 다급함에서 오는 충돌.


베란다에 널려 있는 물건을 전부 말끔히 치우고 싶은 나의 욕구에 아무도 동참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만류로 일단 난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감정이 누그러지길 바랐지만 반대였다.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끝없이 치밀어 올랐다. 일상에서 그분과의 작은 차이가 늘 나를 힘들게 했다. 잠시 뒤 저녁 먹으러 나가자고 아이들과 그분이 방문을 열었다.


“안 먹어!”


‘작게 말해 못 알아듣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결국 난 언성을 높여 말했다.


“도대체 맨날 뭐가 그렇게 귀찮다고 미루는 거야! 그럼 난 놀아? 출장 안 나가고 집에 있을 때는 좀 해도 되잖아!”


내가 안 좋은 소릴 쏟아내도 어지간하면 대꾸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날은 그분도 반격하듯이 말했다.


“당신이 치우라면 다 치워야 해?”


딸과 아들은 방문너머 황당한 부모의 감정싸움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딸은 방문 앞에 잠시 서서 “엄마, 우리가 아빠 편만 든 것 같아서 서운했어?”라고 물었다. 나는 그런 건 아니라고 말했다. 아들이 혼자 조용히 방에 들어왔다.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날 진정시켰다.


“엄마는 왜 아빠가 안 한다고 생각하고 얘기해. 아빠는 엄마한테 그런 소리 하지 않잖아. 그리고 엄마의 말투에서 아빠가 순간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난 아빠가 꼭 뭘 해줘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우리에게 큰 존재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다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엄마, 이제 속상해하지 말고 뭐든 시킬 거 있으면 아빠한테 말하지 말고 나한테 얘기해. 이제부터 내가 다할게.”


그날 아들은 오은영 박사였고 난 금쪽이였다.


우린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다. 그분은 어느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굳이 나에게만 말을 걸었다. 난 그런 식의 태도와 상황에 매우 화가 났다. 아무렇지 않으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이것 또한 속도의 차이를 느껴 짜증이 밀려왔다. 가족이 함께 하는 저녁식사에서 태연하지 못한 속 좁은 나 자신이 싫었다.


그날따라 이 모든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그분 때문이라는 생각에 지배당했다. 매사 다른 속도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나의 병이 되어버린 그 무언가에 대해 딸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딸은 상담사처럼 그저 말없이 들어주고 있었다.


‘징징이’ 딸은 언제 이렇게 커버렸나 싶게 자라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난 엄마가 되어있나 싶은 생각이 드는 저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저녁식사였다.


고등학생 아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과 아무 말 없이 들어준 딸의 귀는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딸은 대전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다. 대전에 잘 도착했다는 카톡을 받고 안심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카톡을 보니 새벽녘 딸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권유였지만 마음이 뭉클했다.


“엄마, 내 책장에 있는 『당신과 나 사이』라는 책 읽어 봐.”


딸이 걱정하도록 한 못난 엄마라는 생각에 주말의 일을 후회하며 답장을 했다.


“엄마가 어른스럽지 못하고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하고 엄마가 더 노력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책 추천 고마워. 잘 읽어볼게.”


“엄마는 내 엄마이기도 하지만 엄마도 한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일단 난 다 이해하고, 책은 엄마가 좀 더 편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추천해 준 거야. 정리 잘하고 올라갈게.”


밤새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생각했을 딸아이가 보이는 듯했다. 자신이 해결책을 찾아줄 수 없음에 책을 통해 엄마가 방법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 전달되어 너무 미안하고 감사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뭘 비춰 준 거니?


너무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아이들 덕분에 그날의 못된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었다. 그분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서로 다른 속도로 일상을 공유했다. 딸의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들고 출근했다.


『당신과 나 사이』 김혜남(정신분석 전문의)의 인간관계 심리학으로 30여 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집이고 병원이고 자신이 없으면 잘 지내지 못할 것이라고 자만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생활했다. 그런 그녀가 파킨슨병 진단이후 병세 악화로 병원 문을 닫고 깨닫게 된 것들을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과거 자신처럼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며 쓴 책이.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을 휘두르려고 한다. 그를 사랑한다면서 정작 그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화를 내고, 싫어하는 걸 하려고 들면 못하게 막기도 한다.’


그날의 나도 그분이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고 뿔이 났다.


『당신과 나 사이』에서 톨스토이는 말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은 상대와 얼마나 잘 지낼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불일치를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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