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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스타샤 Aug 11. 2024

119 구급차에 실려 갔다. 제초기 때문에

넘칠 것 같은 사랑의 기저귀는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마당 흙 사이를 뚫고 작은 싹이 올라왔다. 봄의 싹은 눈과의 전쟁 후 또 다른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깃발과도 같았다. 여름을 재촉하는 봄비는 풀들에겐 군수품이나 마찬가지 역할을 했다. 비가 온 후 풀들의 전투력은 눈에 띄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골집 3대 전쟁 중에 하나인 풀과의 전쟁을 직감했다.


나는 풀과 꽃들을 좋아하는 여자였다. 국도변을 달릴 때면 제멋대로 자란 잡초와 들꽃을 보며 그것 또한 한 폭의 그림 같다며 감성에 젖곤 했다. 풀냄새가 좋아 폐부 가득 공기를 채우는 행동을 반복했다. 도시로 돌아가면 끝, 이때가 아니면 맡을 수 없는 싱그러운 공짜 공기를 마구 들이켰다.


그분과 난 시골집을 관리하며 살기에는 게으름뱅이였다. 주택이라는 것이 내부만 가꾸며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집 바깥 환경까지 일일이 관리하며 돌봐야 했다. 전원생활이 사시사철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분은 집에 있을 때면 그저 선비처럼 집안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부지런 떨며 집 외부를 돌보는 일 따위엔 관심도 재주도 없었다. 


나 역시 체력 하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저질이었다. 20대 시절부터 허리 디스크로 고생을 했다. 스트레스받거나 무리하면 증상 재발로 고생하기를 반복했다. 집안 살림정도만 겨우 흉내 내며 살고 있었다.  


풀은 거실까지 침입할 기세로 세력을 확장해 몰려들고 있었다. 풀들의 침투력에 비해 그분 전의는 높지 않았다. 몸이 녹아내릴 것 같이 강렬한 태양 빛은 보는 것만으로 전의를 상실하기 충분했다. 해가 기울어질 때를 기다렸다 제초를 시작하면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은 두세 시간 남짓. 온몸에 쏟아져 내리는 땀의 양만 봐도 제초 작업이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몇 해째 제초를 하고 있지만 그분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풀들은 땀을 흘리지도 녹아내리지도 않았다.


여름철 해외출장이 없는 그분 덕분에 난 작전 지휘관 노릇만 하면 됐다. 여름철 벌레와의 전쟁이 풀 때문이라는 생각에 자주 제초작업을 해주길 바랐다. 


어느 날 TV 홈쇼핑에서 제초기를 판매하고 있었다. 여성 혼자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가볍고 안전한 제초기. 방송을 보며 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짓을 하고 있었다. 마치 무기가 없어 참전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사람처럼 자동주문을 누르고 말았다. 


그분이 하는 제초는 풀들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미룰 대로 미루다가 정글이 되기 일쑤였다. 답답해진 난 배송받은 제초기를 간단하게 시험해보고 싶었다. 늦은 오후 제초기를 들고 마당으로 나가 휘휘 돌려 댔다. 풀이 사방으로 튀어 날아다녔다. 


방송에서 말한 대로 제초기는 가벼운 편에 속했고 사용법도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제초기가 아니라 나였다. 역시 저질체력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 30분도 채 되지 않아 만세를 불렀다. 보다 못한 그분이 제초기를 들고 나오며 투덜댔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할 텐데 기다리질 못하고 일을 만들고 있어!” 


땀범벅이 된 나는 그분에게 깊은 전우애를 느끼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중문 앞 수건에 발을 닦고 허리를 펴려는 순간. 우지끈! 내가 멈춘 건지 세상이 멈춘 건지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허리 어딘가가 이상했다. 몸은 ‘ㄱ’ 자 상태로 멈추어 입만 움직일 수 있었다. 방안에 있는 아들에게 말했다. 


“아들, 엄마 못 움직이겠어. 허리가 안 펴져.”

“응? 엄마 왜?”


초등학생인 아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음성지원만 해주고 있었다. 아무도 땡을 외쳐 줄 사람 없이 혼자 얼음땡 놀이를 하고 있는 꼴이었다. 


“엄마 진짜 안 움직여져. 너무 아파. 숨 쉴 때마다 아프고 꼼짝 못 하겠어. 어쩌지?”


‘ㄱ’ 자 상태가 되어 땅만 보며 이야기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들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분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밖에서 제초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분의 요란한 제초기 소리에 통증으로 신음하는 나의 소리는 묻히고 있었다. 


이런 자세로 계속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들에게 도와달라고 하여 누워보려 했지만 움직이려 하면 ‘악’ 소리가 먼저 나왔다. 아들은 당황하여 손도 쓰지 못하고 얼음이 되어 눈만 깜빡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어둑해지고 있었고 그분이 곧 들어오겠지 싶었다. 때마침 제초기 소리가 멈췄다. 중문을 열고 들어오와 ‘ㄱ’ 자 모양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말했다.


“뭐 해? 왜 그래?”

“나 허리 못 피겠어. 아까 들어와서 발 닦다가 지금까지 이 상태야. 너무 아파. 나 좀 눕혀 줘 봐.”


숨 쉬기도 힘든 통증이었다. 그분의 도움을 받아 여러 차례 비명과 함께 바닥에 몸이 닿았다. 내가 누워있는 모양은 ‘ㄴ’ 자나 ‘ㄱ’ 자쯤 일 테고 ‘몸으로 말해 봐요’ 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자음형태를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이 상태를 어찌한단 말인가.


그분은 119를 부르자고 했다. 나는 이런 모양새로 119 대원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나아질 수 있느니 조금 기다려 보자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입만 나불댈 수 있을 뿐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누워서 입만 살아 있는 내가 못마땅했는지 결국 그분은 119에 신고를 했다. 


들것에 실리는 과정은 출산 전 진통을 능가했다. 상상할 수 없는 통증에 눈물이 났다. 119 대원들의 도움으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진통제가 들어갔는데도 통증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응급실 당직의사는 병원에서 가장 강한 진통제를 사용했다며 좀 더 지켜보고 통증이 가라앉지 않으면 대학병원으로 이송할 것을 권유했다.


X-ray촬영으로 여러 차례 움직였고 그때마다 전해지는 통증은 공포 그 자체였다. 여리디 여린 나의 몸뚱이가 제초 흉내 낸다고 까불다 혼쭐이 나고 있었다. 대학병원 이송은 못 들은 걸로 했다. 더 이상 다른 움직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사실 그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몇 시간째 화장실을 못 간 터라 기본 욕구 해결이 먼저였다. 방광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큰 병원으로 옮기라는 소리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자칫하면 응급실 베드에 실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그분에게 말했다.


“기저귀 좀 사다 주면 안 돼? 집에서부터 참아서 많이 급해. 못 참겠어.”


문제는 통증 없이 기저귀 채우기였다. 방광이 꽉 차 있으니 허리 통증만 있을 때 보다 더 예민해졌다. 나의 이런 상황에 성질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오줌보가 터지던 허리가 끊어지던 이판사판 지경이었다. 내 생애 이 악물고 기저귀를 차게 될 줄이야. ‘악!’ 소리와 함께 기저귀 차기 성공! 


그분은 한동안 내 옆에서 프로 수발러 노릇을 했다. 




사진출처 : pexels-freestock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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