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번아웃과 우울, 그 사이 어딘가에서.
여름 방학은 생각보다 많이 짧았다.
대신 겨울 방학이 길어질 예정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나와 아이는 또 잘 지낼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커가면서 방학이라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다고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물론 나의 자유 시간은 줄었고, 하루에 아이의 밥을 차려주는 횟수가 한 번 늘었으며
그럼에도 나는 휴가가 따로 없는 프리랜서라서 틈틈이 일을 해야 했기에
저녁 식사 직전까지도 내 일과 집안일을 오가느라 정신은 없었지만
아이와 오래 붙어있는 것 자체는 좋았다.
나의 가족들이 말하듯 나는 아직 아이에게 씌인 콩깍지가 벗겨지지 않아서
그냥 붙어서 점심을 같이 먹을 상대가 생긴 것도 좋고,
아이와 놀이시간을 좀 더 같이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아쉬운 건 늘 나의 체력뿐이랄까.
오늘도 괜찮게 보냈다, 하는 하루 끝에 저녁 식사 정리까지 끝나면
방전된 핸드폰마냥 기운이 떨어져서 그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래도 초저녁에 잠을 자는 것은 피하기 위해 뭐라도 해서 깨어있어야 했는데
아이를 부지런히 꼬셔 도서관을 들락날락거리면서 내가 읽을거리도 빌려왔기에 책이라도 읽었다.
올여름 참 오랜만에 책을 많이 읽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름방학이 끝났고, 아이는 개학을 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학교 밥이 맛있고 친구들과 보내는 것도 즐겁다고 재잘대는 아이를 보며 흐뭇한 것도 잠시,
나는 어쩐지 고갈된 체력도 기운도 나지 않았다.
올여름은 내가 기억하기에 매년 여름이 덥다 생각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싶을 정도로 정말 무더웠다.
특히 밤에도 더워서 창을 열지 못하고 에어컨을 켜고 자야 하는 것은
에어컨을 너무 많이 쐬면 어쩐지 기력이 나지 않는 나로서는 정말 괴로웠다.
그래서 최대한 에어컨을 덜 켜고자 새벽 2-3시 무렵 꺼지게 예약을 하고 자며 버텼는데,
에어컨이 꺼지고 한두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내 잠이 달아날 정도의 더위가 찾아오는 것이다.
신기한 것은 같이 자는 남편이 평소에 열도 많고 나보다 더위를 훨씬 더 많이 타는 사람인데
새벽에 잠을 설치는 것은 나뿐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지만 이른 갱년기가 찾아왔나 의심했던 것도 잠시,
입추가 지나고 해가 지면 선선한 바람이 불자 나의 밤도 평온해졌다.
친정엄마가 한 3-4년 전부터 갱년기가 찾아와서 잠에 잘 때,
계절 상관없이 선풍기를 켰다 껐다 하며 잠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사람의 생체 온도계가 그렇게 고장 날 수가 있나 싶었는데 이번 여름을 겪으니 덜컥 겁이 났다.
갱년기가 찾아와서 이런 밤이 계속된다면 참 괴롭겠구나.
나는 평소에도 잠이 드는데 2-30분 정도는 걸리는데,
한번 잠에 빠지면 남편의 거대한 코골이도 못 들을 정도로 아침까지 잘 자는 편이다.
그러나 새벽에 깨게 되었을 땐 상황이 달라지는데,
갑자기 깬 잠에 몇 시인지를 가늠하며 뒤척이고 버티다가 못내 에어컨을 다시 켜고 잠들면
다시 잠들기까진 체감 30분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면 잠을 잤는데도 영 부족한 느낌의 비몽사몽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아침을 맞으면 하루 종일 컨디션이 살아나지 않는 날이 많아 열대야가 정말 무서웠다.
그리고 나의 갱년기는 부디 이런 생체 온도계의 고장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방학 내내 놀러 가던 날을 빼고선 9시에 일어나던 게 무색할 정도로
아이는 개학하고 나서 다시 본인의 일상 시간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행히도 아이의 방학 마지막 주 무렵부터 다들 휴가기간이었는지 업무가 좀 줄어들어,
2주간은 여유롭게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면 되었다.
이런 일정만 생각했을 땐 '이제 자유 시간도 다시 찾을 수 있겠다'며 정말 기뻤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정말 아무 일도 하기 싫어질 정도로 의욕을 잃었다.
그렇다고 정말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은 건 아니다.
집에 있으면서 그럴 처지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해야 하는 업무는 우선적으로 해 놓았고 집이 더러운 건 싫어서 하던 대로 청소도 했다.
아침과 점심은 원래 아이와 같이 먹지 않을 때처럼 적당히 허기만 채웠지만,
저녁은 아이랑 같이 먹으니까 열심히 또 식사를 차렸다.
평소 더우니까 입맛이 없어-라고 생각해도 막상 맛있는 음식이 차려져서 한 숟가락 먹으면
맛있어서 먹게 되고 먹으니 기운이 나는 나였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어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정말 먹는 것도 귀찮다. 더우니까 물만 먹고 배 채워서 자고 싶네.'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기운이 나고, 음식을 먹다 보면 또 입맛이 돌아서 생활하던 나였는데
왜 이렇게까지 기력이 떨어졌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떠난 것 같던 열대야가 다시 찾아와서 그게 날 무력하게 만드는 걸까?
괜찮다곤 생각했지만 그래도 여름방학이라서 이런저런 일에 치이고 신경 썼던 게 많아
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 걸까?
다른 건 몰라도 배탈이 났을 때를 제외하곤 음식에 대한 욕구가 뚝 떨어진 것이 제일 충격이라
어쩌다 우울증이 찾아와 버린 걸까?,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그리고 이건 현재 진행형으로 나는 아직 원인 모를 무기력에 빠져있다.
엄마는 쉴 수가 없다.
엄마가 아프기라도 하면 온 집이 마비되고 고장 난 자동차처럼 굴러가지 않게 되어 버린다.
아이를 키우며 몇 번 내가 아팠던 순간, 깨달았던 것들로 이후 나는 내 건강을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다던데.
다행히 아이는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크게 아프다던가, 지병이 있는 건 아니어서
대신 아파주고 싶을 정도로 마음 아픈 일은 없는 편이었는데
그래도 지독한 감기로 밥을 잘 못 먹는다거나 그러면 마음이 쓰이고 속이 상하긴 했다.
하지만 내가 아플 땐 상황이 다르다.
아이의 일상도 챙겨주지 못하고, 내가 애써 유지해오고 있는 집안일도 모두 쌓여만 버린다.
남편이 거들어주긴 하지만 평소에 시키는 것과 정해진 일부의 집안일 외엔 내게 맡기는 남편이라
그냥 최소한만 도와줄 뿐이지 구멍이 숭숭 뚫린다.
게다가 아이가 커가면서 나의 건강을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도 커져,
아프다고 앓아누워있으면 수시로 들락날락하며 내 상태를 살피는 게 마음이 아프다.
엄마, 소리에 눈을 뜨면 혼자서 무얼 했는지 평소엔 입을 꾹 닫고 말도 안 해주던 녀석이
묻지 않아도 재잘재잘하는 게 꼭 '엄마가 없어서 정말 외로웠어. 어서 나와서 내 옆에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몸도 아픈데 마음까지 울적해진다.
그래서 나는 젊었을 땐 아프면 회사 쉬어야지~하던 가벼운 마음은 완전히 정리하고,
대충이라도 끼니는 제 때 챙겨 먹고 강아지 산책을 포함해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어딘가 아픈 조짐만 보이면 바로바로 병원을 찾아가고 있다.
내가 건강해야 나의 아이도 건강하게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의 무기력은 계속된 무더위, 떠난 줄 알았는데 다시 찾아온 무더위 탓에
몸의 컨디션도 좀 안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정신적인 이유가 더 큰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이런 나의 무기력을 아이에게 전가해서도 안되고, 내 일상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열심히 구석구석 청소할 곳은 없나 살피고,
냉장고에 안 먹는데 쌓아둔 음식은 없나 정리하고, 그러다 또 아무것도 하기 싫어 멍 때리기도 했지만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면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지나가겠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것도 틈틈이 쓰고 싶어서 이런저런 주제를 잔뜩 기록해 둔 것이 있지만
그 주제를 진득하게 쓸 만큼 신이 나지 않아 그냥 현재 나의 상태라도 털어두면 조금 나아질까,
싶어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여름은 지독하게 버티고 있지만 결국 가을이 올 것이다.
나의 상태도 묵묵하게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그냥 언제 그랬는지 평소의 상태로 돌아갈 거라 믿고 있다.
그저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일상을 지내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 나는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