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제목, 다른 이야기 NCT127과 에픽하이의 <우산>
비가 내릴 때면, 누구나 우산을 챙긴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우산’은 매우 일상적인 소재이지만, 문학가들은 이 흔한 소재에도 참신한 발상과 표현을 통해, 다양한 시적 의미를 담아 활용하기도 한다. 오늘은 ‘우산’이라는 같은 제목 아래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담은 두 작품을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작품인 ‘NCT 127’의 우산 속에서는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황홀함을 노래하고 있고, 반대로 ‘에픽하이’는 홀로 우산 아래서 비를 피하며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을 드러내고 있다.
NCT 127, <우산> - 비 내리는 날, 사랑스러운 역설과 반어
‘너를 향해 기운 우산이
이렇게 때마침 참 작아서 다행이야…’
’…둘이서 1인용 Umbrella 아래
내 하루는 So Bright…’
NCT 127은 가사의 도입에서부터 작품의 주제를 함축하여 들려주고 있다. 우산은 보통 클수록 좋다. 그래야 여유롭게 비를 피할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우산이 작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사람이 둘인데 굳이 1인용 우산 아래 몸을 구겨넣는 모습도 어색해보이고, 비가 오고 있는데 내 하루가 밝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처럼 표면적 모순의 상황을 묘사하는 표현법을 ‘역설법’이라고 부른다.
‘…“어디 들어갈 델 찾자” 말하면서도
내 걸음은 자꾸만 하염없이 느려져…’
‘…오늘따라 더 익숙한 거리도 헤매고 싶어 난
저번 그 예쁜 카페가 어디더라 잘 기억나지 않아…'
또한 화자는 걸음이 하염없이 느려지는 주제에 어디 들어갈 델 찾자는 둥 마음에 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괜히 오늘따라 익숙한 거리도 헤메게 된대고, 분명히 저번에 갔었던 카페가 어디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니 뻔한 거짓말이다. 이러한 ‘반어법’을 활용한 표현들 역시 문학성을 높이고,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작가는 이같은 역설과 반어의 문학적 장치를 풍부하게 활용하면서 우산 아래 두 사람의 풋풋하고 설레는 사랑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낸다.
‘…너의 숨소리도 들려 이렇게 가까우니까
이대로 투명해진 채 시간이 멈췄으면 해…’
‘…비는 질색인데 오늘 좀 좋아지려 해
아니 아직 그칠 생각은 말고
왼쪽 어깨는 흠뻑 적셔 놔도 돼…'
화자는 사랑에 푹 빠진 나머지, 비가 온다는 사실마저 잊어버린 모양이다. 평소엔 질색하는 비가 내리는 와중에 시간이 멈춰버리길 바랄 정도로. 우산이 작아서 다행이라고 느낀 것도, 걸음이 자꾸만 느려지는 것도 결국, 작은 우산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꼭 껴안고, 그 숨소리를 들으면서 보내는 행복한 순간을 천천히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에픽하이, <우산> - 비 내리는 밤, 쓸쓸한 대조
한편, 에픽하이의 우산은 같은 제목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둘이서 쓰긴 작았던 우산 …이젠 너무 크고 어색해
그대 곁에 늘 젖어있던 왼쪽 어깨…’
이 가사의 화자 역시 앞선 작품의 화자처럼 상대와 함께 좁은 우산 아래에서 함께 걷던 기억, 상대가 더 넓은 공간에서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내 왼쪽 어깨를 적시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에픽하이의 가사 속 화자는 ‘행복한 지금’을 즐거워하는 NCT127의 화자와 달리, ‘행복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을 뿐이다. 화자의 과거와 현재가 대조되면서 우리는 그가 처한 이별의 상황에 더욱 공감하게 된다.
‘…영원의 약속에 활짝 폈던 우산
이제는 찢겨진 우산 아래 두 맘…’
우산 아래 영원을 약속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화자는 이제는 찢겨진 우산 아래에서 이별로 인한 상실감을 노래한다. ‘슬픔’이나 ‘외로움’처럼 정서를 직접 표출하는 시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화자가 보내 온 대조적인 상황을 보면서, 그 슬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오랜 시간을 지내며, 쓸쓸히 성숙해버린 화자는 더욱 담담하게 절제된 감정을 조용히 끄적이고 있는 모양이다.
같은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작품은 완전히 상반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NCT127의 <우산> 속 가삿말의 상황이 영원하기를 모두가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에픽하이의 상황을 한 번은 겪게 된다. 지금 그대는 우산 아래에서, 나란히 한쪽 어깨를 적시고 있는가,
혹은 홀로 쓸쓸히 비를 피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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