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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아 Nov 26. 2024

제철행복

행복은 우리  곁에 숨 쉬고 있었다

글을 시 쓰듯 쓰는 사람이라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매번 새로운 선물은 받것처럼 탄사가  쏟아졌다. 사물하나 자연, 생명체 하나 허투루 보지 않고 가슴에 담는 사람. 자연을 만지고 계절을 품으며 냄새하나까지 활자로 풀어낸다. 똑같은 오감을 지녔는데 그녀의 오감은 백만 개의 감각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섬세하고 치밀하다.

온몸으로 자연과 계절을 느끼고 감성을 언어로 승화시킨다. 맑은 감수성과 아름답고 참신한 표현력이 마치 숲 을 거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페이지마다 꽃이 피고 지고 단풍이 물들며 눈이 흩날린다. 차마 느끼지 못하고 놓쳤던 계절의 아름다움을 손으로 하나하나 짚어준다. 그녀의 친절한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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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려 하는 사람만이 보게 되는 자그만 봄의 단서들. 겹겹이 오므린 꽃송이나 새싹은 실제로 여러 번 적힌 쪽지를 닮아있어 더 반갑다. --63p


꽃은 내년에도 필 테지만 올해는 올해뿐이니까, 올해의 나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만개한 꽃 아래 우리의 즐거움도 만개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85p


사흘을 묵고 돌아오는 길에 바로 봄의 며칠을 예약했다. 이듬해 봄에 예정된 기쁨이 있어서, 만나러 갈 풍경이 있어서 긴 겨울을 지나는 동안 문득문득 설렜다. 제철 행복을 미리 심어두는 건, 시간이 나면 행복해지려 했던 과거의 나와 작별하고 생긴 습관이다. --95p


그건 그해, 그 봄, 그 밤, 모닥불과 보름달과 밤바람과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우리, 그 모든 게  어우러졌을 때만 가능했던 맛이니까. 한 시절 최고의 미나리 전. 나는 그 밤에 액자를 두르고 그렇게 적어 마음의 벽에 걸어둔다.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어서. --101p


어쩌면 좋은 계절의 좋은 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을 줄여서 우정이라 부르는 건지도. 우리는 그렇게 잊지 못할 시절을 함께 보낸다. 서로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된다. --102p


계절마다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사는 일이 좋다. 기쁘게 몰두하는 일을 어쩌면 '마음을 쏟다'라고 표현하게 된 것일까. 여기까지 무사히 잘 담아 온 마음을 한 군데다 와르르 쏟아붓는 시간 같다. 그렇다면 내게 초여름은 '바깥'에 마음을 쏟고 지내는 계절. --141p


배 속의 책을 말려야 했던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축축했을까. 젖은 문장이 다 마를 때까지, 번진 자국이 옅어질 때까지 바깥에 오래 누워 있자고 말하고픈 계절이다. 초가을이라 부르기엔 아직 이른 8월, 여름과 천천히 작별하고 있다.  --208p


1년 중 가장 사랑하는 온도를 찾아내어 초여름엔 싱그러운 숲으로, 더위가 한풀 꺾인 초가을엔 노을 지는 바다로 떠나는 건 내 기분을 위한 작은 노력인 셈이다.  --227p


올려다보는 단풍의 계절에서 내려다보는 낙엽의 계절까지, 내가 생각하는 숙제는 하나다. 이 가을을 끝까지 써야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치약이나 핸드크림의 가운데를 가위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쓰는 사람답게, 이 계절을 끝까지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까워라, 하는 마음으로. --251p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자리를 교체하는 시기이니 지난해와 이듬해를 이어주는 '사이'의 시간에 제대로 매듭을 지으라는 말로도 읽힌다. 마음도 쓰는 만큼 닳는다 했다. 한 해 동안 쓰느라 귀퉁이가 부서지거나 틈이 벌어진 마음의 이곳저곳을 울타리처럼 수리하면서 남은 겨울을 보내고 싶어 진다. --330p


살아온 시간이 쌓인 만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선명해지면 좋을 텐데, 자주 잊고 새로 배우길 반복할 뿐이다. --333p






행복은 어렵게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연 속에, 돌아오는 사계절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매년 자연이 건넨 24번의 선물을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돌려보내기만 했다. 이젠 계절이 내미는 선물을 꼬박꼬박 챙겨 비었던 행복주머니를 볼록하게 채워야겠다.

낭만, 계절, 문학의 3중주가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며 책 한 권이 삶의 충만함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행복을 찾고 싶다면 행복해질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한 권의 책이면 충분하다. 334페이지의 소담스러운 문장을 매일 한 줄씩 꺼내 먹는다면 우울과 슬픔의 빛깔이 조금은 옅어질 거라 믿는다.  




#책 리뷰#책소개#제철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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