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7일은 우리 정부가 제안하여 유엔이 제정한 '푸른 하늘의 날'이다.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오염저감과 청정대기를 만들자는 취지로 2020년부터 기념하게 된 날이다.
사계절 중 파란 하늘을 보는 날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매캐한 연기와 뿌연 미세먼지, 황사까지 겹치는 날은 외출 자제 경보문자가 종일 휴대폰을 울린다. 오염된 대기만큼 핸드폰도 울상인 모양이다. 대기오염이 건강에 미치는 해악은 알레르기 결막염, 만성비염, 호흡기 질환까지 다양하다.
어린 시절 대기오염 걱정 없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일은 빛바랜 사진첩 속 추억이 된 지 오래다. 봄이면 개나리, 진달래를 꺾어 꽃다발을 만들고 들판에는 초록하게 고개 내민 쑥이 지천이었다. 여린 쑥을 뜯으면 반나절은 금세 지나갔다. 해가 기울면 향긋한 쑥향을 뒤집어쓴 채 털래털래 바구니를 안고 집으로 향했다. 바구니의 반만 겨우 찬 쑥을 보며 할머니는 봄 같은 미소로 함빡 안아 주셨다.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오염저감과 청정대기를 만들자는 취지로 2020년부터 기념하게 된 '푸른 하늘의 날' ⓒ omarvellous14 on Unsplash
서늘한 대청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면 솜털같이 보드란 구름이 한량같이 거닐고 있었다. 할머니는 평생 지나온 길보다 깊은 우물 속에 바가지를 던져 물을 길어 올렸다. 한여름에도 이가 시릴 만큼 차가운 물에 목욕한 쑥은 더욱 파르라니 생기가 돌았다. 파릇한 쑥은 국이 되거나 쑥버무리가 되어 밥상에 올랐다
여름이면 햇볕이 뜨거운 줄도 모르고 과수원을 누비기도 했다. 몇 집 건너면 다 아는 이웃의 밭에서 참외, 자두서리를 하며 뜨거운 여름을 입안 가득 베어 물곤 했다.
가을이면 드높아진 하늘을 머리에 이고 까칠한 알밤을 주웠다. 매끈하게 윤기 나는 밤은 냄비나 솥에서 뜨겁게 익어가고 밤하늘은 다람쥐의 까만 눈보다 더 빛나는 별을 뿌려놓았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수도권이나 세계 다른 나라는 밤하늘 별빛조차 구경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겨울이면 눈보다 하얗게 질린 하늘에선 얼음보다 차갑고 투명한 눈이 쏟아졌다. 눈밭에서 한해의 크고 작은 슬픔, 기쁨을 눈 속에 굴리면 주먹만 하던 마음도 덩달아 둥글게 커졌다.
자연의 변화는 책의 목차처럼 당연한 수순이었다. 산업, 과학,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욕심은 그 시절 눈덩이보다 커져갔다. 하늘은 그림책에서만 파랗게 빛났고 현실 속 하늘은 회색빛 아니면 황사로 뒤덮인 우중충한 빛깔이 되었다. 자연 그대로 즐기고 만끽한다면 잃어버린 색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늘을 이고 땅을 발판 삼아 뛰어놀던 날처럼 다시 예전의 맑은 날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여름은 다음 계절에게, 자연은 다음에 올 누군가를 위해 자리를 스스럼없이 비워준다. 옥수수가 지고 장미꽃이 스러지고 도라지꽃이 고요하게 지듯이, 미련 없이 스러지고 깨끗하게 물러난다. 지구를 이런 마음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다음 세대를 위해서 깨끗하게 아껴 쓰고 잘 보존했다 물려주기로.
'푸른 하늘의 날'은 잃어버린 사진첩 속 사진이 아니라 반드시 찾아야 할 우리의 미래다. 자연과 하늘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그저 자연 속에 조용히 머물다 가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다. 자연환경을, 대기를, 하늘을 훼손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한 계절 열심히 머물렀다 지는 꽃과 나무처럼, 짧은 생 고요히 머물다 가는 게 인간 고유의 의무는 아닐까.
사랑하는 아이에게 회색빛 흐린 하늘을 물려주고 싶은가, 사계절 마음껏 밖을 뛰어다닐 수 있는 푸른 하늘을 물려주고 싶은가. 성큼 다가온 가을 하늘이 아이 눈에 청아하게 담기기를, 어느 날보다 푸르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