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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pr 12. 2024

9. 남편은 여전히 못 알아먹었다.

-길고 긴 편지를 보내고 4일 후 받은 답장 아닌 답장

동위원소 치료는 수술 후 몸에 남아있을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된다. 나는 측경부 임파선 전이로 150 큐리의 고용량 방사선 치료를 받느라 2박 3일간의 입원이 필요했고, 퇴원 시 일차 요오드 스캔에 이어 일주일 뒤 또 한 번의 전신스캔이 예정되어 있었다.


동위원소 치료가 끝나고 요양병원에 들어갔다. 일주일 정도 몸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다. 저요오드 식이를 한동안 계속해야 했고, 한 달 동안 호르몬약을 끊었기 때문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퇴원 무렵, 컨디션이 여전히 거지 같았지만 더 있고 싶어도 1인실에 자리가 없어 더 있을 수가 없는 상황, (동위원소 치료를 한 환자는 일인실에 2주 이상 머무른 후에야 다인실로 옮길 수가 있었다. 타 환자들과의 분리가 필요하므로.) 서울에 호텔을 잡을까 하다가 굳이 서울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일주일 뒤 추가 요오드스캔 검사를 하고 나서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택시를 타고 제주공항에서 나오는 길은 벚꽃이 한창이었다.     


언니와 만나 진짜 오랜만에 흑돼지구이를 먹었다. 간 마늘 소스인 줄 알고 듬뿍 찍어먹은 건 소금장이었다. 갑자기 짠맛이 훅 들어오며 미각이 폭발했다. 그렇게 나의 집 나갔던 짠맛 미각은 돌아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게 밋밋한 맛으로 느껴졌었다. 심지어 오래간만에 먹고 싶어 사 먹었던 버거킹 와퍼가 싱거웠을 지경이었다. 내가 짠맛을 상실한 줄도 모르고 여기 알바는 소스 넣는 것을 잊었나, 착각할 정도였다. 왜 알던 맛이 안 나지 하며 평소 주니어 와퍼면 충분했을 내가 일반 사이즈를 우걱우걱 하나 다 먹었더랬다. 내가 짠맛을 못 느낀 탓이었다는 건 그 날밤 목이 타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였다. 아마 맛을 못 느꼈을 뿐이지 소금 섭취량이 많았을 것이리라.


언니와는 서로의 안녕을 위해 숙소를 따로 잡았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제주에서의 첫날밤, 잠을 청했다가 새벽녘에 잠에서 깼다. 시계는 새벽 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쩐지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 온통 마음속 이야기가 굴러다녔다. 빨리 쓰라고, 비워내라고. 안 그러면 머릿속을 헤집어 못 자게 하겠노라고.     


노트북을 열였다. 뭐부터 쓴담.     


우선 남편에게 편지를 써보기로 했다. 이메일을 쓰려다가 길어질 것 같아 한글을 켰다. 와우. 순식간에 다섯 장이 써졌다. 물론 문단 띄어쓰기 포함이지만 좀 길긴 길다. 너무 심각해지지 않기 위해 남편의 업무메일에 첨부파일로 보내며 농담처럼 덧붙였다.     


“가정업무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제발 내가 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먹기를 바라면서.          


다음날 아침 편지를 본 남편은 카톡으로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 는 답변을 했다. 답장은 여유가 될 때 보내겠다는 말과 함께. 나쁘지 않은 반응이라 생각했다. 제발 조금이라도 알아먹었기를. 내 마음이 지금 그지 같고, 나의 스트레스는 또 다른 암을 을 거야. 그러니 제발 날 좀 살려주겠니 간절히 속으로 빌면서.

          

그러나 그는 못 알아먹었다. 그런 게 틀림이 없었다.


그로부터 4일 뒤, 성산에서 중문으로 이동하기 위하여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카톡 미리 보기가 떴다.     


”가족창에 초대할게. 엄마가 알고 많이 섭섭해하시네 “


........     


전. 혀. 못 알아먹었다.     


긴 싸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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