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으로 튀어나오는 예스(yes)라는 대답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오빠는 내 짐을 방까지 들어다 주고, 캐리어를 눕혀서 펼쳐주고, 가습기를 틀어 습도를 조절해 주었다.
수술 후 첫 외래인 일주일 동안은 무지방식을 유지해야 했다. 일체의 기름, 유제품 등이 금지되었다. 오빠는 근처에 산채비빔밥집에 나를 데려갔다. 같이 밥을 먹고, 근처 마트에 가서 과일과 주스 등 내가 먹고 싶다는 걸 사주고, 나를 다시 호텔에 데려다준 뒤 집으로 돌아갔다. 앞으로 내가 괜찮으면 매일 들여다보겠다고. 여기 있는 동안 점심이든 저녁이든 밥 한 끼는 오빠가 사주겠다고. 새언니도 그러라고 했다면서.
오빠를 보내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아버님한테 전화가 왔다. 다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여기에서 잘 쉬다 갈 테니 걱정 말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내가 끼니를 홀로 챙겨 먹을 것을 걱정하셨다. 여기 뷔페식 조식도 포함되어 있고, 근처 먹을만한 식당도 많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시누한테 연락이 온건 다음날 저녁이었다. 오빠와 저녁을 먹고 산책을 하고 방으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엄마한테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간호사인 시누는 요양병원에서 놓는 면역주사는 증명이 안 된 데다 대학병원에서도 권하지 않는다며 나오기를 잘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니 쉬고 있는데 피곤하겠지만 자기가 가면 얼굴을 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여기서 내가 병신 같은 부분이 거절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속으로는 '왜..... 날......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성은 무서운 법, 나도 모르게 아유~ 저랑 밥 먹어주러 오시게요? 저야 좋죠 했다. 시누는 모레 저녁에 나 있는 쪽으로 퇴근 후 넘어오겠다고 했다.
다음날, 슬슬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직 몸 회복도 다 안 되었는데 내 얼굴은 봐서 뭐 하겠다는 걸까. 매일매일 통화하는 시어머니와 시누의 특성상 나와의 만남과 대화는 고스란히 당일에 전해지리라. 어 엄마 언니 이러저러고 있더라. 내가 가서 들여다보고 왔으니 걱정 마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오빠에게 말하니 도대체 왜 오라고 했냐며 지금이라도 연락해 몸이 안 좋으니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하라고 했다. 나는 아냐 오빠 매일 오기 힘들 텐데, 조카들도 챙겨야 하고. 내일 하루는 그냥 시누랑 저녁을 먹을게 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디서 봐야 하나..... 나는 식이를 제한해야 하고 그날따라 컨디션이 깔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멀리 나가지 말자 싶어 호텔 2층에 있는 뷔페를 예약했다. 조식을 매일 먹는 곳이기는 하나 저녁 뷔페 메뉴는 좀 달랐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무엇보다 무지방식을 해야 하니 내가 먹을 것을 골라먹을 수 있어 괜찮겠다 생각했다.
저녁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내려갔다, 시누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주로 듣는 쪽이었다. 시누는 최근 본인이 힘들어서 상담을 받은 이야기와 남편인 오빠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기타 시댁 이야기 등을 했다. 뷔페에는 맥주가 무제한이었는데 먹고 싶어 하는 눈치 길래 가져다 먹어도 된다고 했다. 시누는 그래도 되겠냐고 하면서 맥주 한잔을 했다.
내가 목이 쭈뼛 선 것은 시누가 우리가 미국에 있을 때 왔던 이야기를 했을 때였다. 시누는 20개월 남짓한 아들을 혼자 데려올 자신은 없어 어머님을 대동해 미국에 왔다. 그러니까 어머님은 우리 집에 도합 7주쯤, 거의 두 달간 계셨던 셈이다. 남편과 내가 가장 크게 싸웠던 그 시기. 시누는 미국에서 우리 집에 와서 지냈던 시간이 참 좋았다고 했다. 언니네 집 뒷마당에서 불멍 하던 그때 너무 좋았어요. 서부 여행 갔던 것보다 그냥 집에서 있었던 시간이 기억에 남아요. 언니는 힘들었을 것 같긴 하지만....... 하면서 말끝은 흐렸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뒤늦었지만 드디어 알았다. 아, 이 사람은 내가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힘들었다는 걸 알고도 자기가 좋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시누가 우리 집에서 늦잠을 잘 때 '왜 내가 시누 아들 아침밥을 챙겨주고 있지?' 의아스럽던 그 아침시간이 떠올랐다. 남편과 박 터지게 싸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나는 알았다. 내가 문제였다. 내가 한 번도 불편한 내색 없이 받아줬기 때문에 정말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고 선을 마구 넘어왔던 거다. 그러니까 지금도 수술 후 퇴원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요양하고 있는 나를 찾아와 맥주를 마시며 본인 하소연을 하고 있는 거구나.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스스로를 좀 먹고 있었구나. 병들게 하고 있었구나.
시누가 음식을 더 뜨러 간 사이, 종업원에서 빌지를 달라고 해 계산을 했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간여 지나 있었다. 이제 방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시누는 더 먹고 싶은 눈치였으나 정리를 하고 보냈다. 식당을 나가며 본인이 계산하려 하길래 이미 했다고 했다.
"언니 제가 사드리려고 했는데..."
방에 돌아오니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피곤이 몰려왔다.
아, 역시 거절을 했어야 하는구나, 나는 거절을 못하는 병에‘도’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