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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pr 12. 2024

6. 두 번의 배웅, 누구를 위한 걸까?

-남편은 왜 쳐내지 않았을까. 나는 왜 거절하지 못했나.

A. 수술을 위해 입원하는 날 아침, 전복죽을 꼭 먹어야 할까?


수술하는 날이 왔다. 입원은 일주일 정도였고 그중 삼일 정도는 남편이, 사일 정도는 언니가 와서 간병을 해주기로 했다. 퇴원을 하고서 요양병원에 가려고 했기 때문에, 그리고 병원이 워낙 건조했기 때문에 가습기까지 챙기느라 짐이 많았다.     


입원 날 아침, 나는 아이들의 등교를 마지막까지 챙겨주고 싶었다. 8시 40분쯤 첫째를 준비시켜 보내고, 둘째를 9시 5분에 아파트 입구에서 유치원 차를 태워 보내야 했다. 둘째는 내가 쉬는 동안 직접 유치원 차에 태워주는 걸 너무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집에서부터 유치원 버스 타는 데까지 팔랑대며 뛰어가는 아들을 바라보고, 차를 기다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차가 도착하면 타기 전에 한 번 더 안아주고, 차에 탄 다음에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그 시간이 좋았다. 미국에 다녀와서 복직하고는 내가 더 먼저 출근하느라 늘 할머니 손에 등원을 했었다. 둘째는 같은 라인에 사는, 육아휴직 중이라 늘 엄마가 데려다주는 친구를 부러워했었다.


8시 좀 넘어오신 어머님 손에는 전복죽이 들려있었다. 수술하러 가는 며느리 아침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감사하기는 한데 아침에는 내가 앉아서 죽은 찬찬히 먹을 여유가 없었다. 애들 아침을 먹이고, 옷과 가방을 챙기고 인사하고 보내고, 그걸 첫째 둘째 번갈아 하는 동안 죽을 한술 떴다 말다를 반복했다. 둘째를 데려다주고 집에 다시 오니 죽이 식어 어머님이 다시 데워주셨다. 부담스러웠다. 나는 먹겠다고 한 적이 없지만 걱정하시는 것 같아 주시는 걸 다 먹었다.     


지하주차장에서 배웅을 해주시며, 아버님도 오시겠다는 걸 네가 불편해할까 봐 만류하고 본인 혼자만 오셨다는 말씀을 했다. 나는 ‘본인은 안 불편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본인이 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기저에 깔린 느낌. 나는 괜찮지 않았다. 불편했다. 우리 가족끼리 당분간 떨어져 있을 기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침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제발 낄 데 끼고 빠질 때 빠지셨으면 속으로만 생각했다 남편은 별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러니 중간에서 안 끊고 나한테 통보하듯 말했겠지.                    




B. 동위원소 치료를 위해 입원하던 날 아침, 쓰레기봉투를 꼭 쥔 손의 의미          


동 윈원소 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날 아침이었다. 남편과 나는 아침 10시 즈음 KTX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집에서 8시 40분쯤 출발해 기차역까지는 차로 갈 작정이었다. 전날 남편이 말했다. 


“내일 아침에 엄마가 집에 오신다고 하네.” 

“왜?” 

“뭐... 이것저것 물어볼 게 있으신가 봐”      


아이들 케어에 필요한 사항이나 스케줄은 이미 카톡으로 정리하여 남편을 통해 공유한 상황이었다. 추가로 물어보실 게 있다면 전화로 하셔도 될 것 같은데 굳이 얼굴을 보셔야 할 필요가 있나 생각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당일 아침, 마지막으로 입원 짐을 점검하고 (2박 3일의 입원 후에 2주 간의 격리가 필요해 짐이 많은 상황이었다), 전날 건조기에 돌렸던 빨래를 개고, 혹시 모를 냉장고의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했다. 어머님이 들르신다 하니 거실에 어질러진 아이들 물품도 치웠다. 7시 전에 일어나 바쁘게 움직였지만 빠듯한 시간이었다. 8시에 오신다던 어머님은 8시 20분경 아버님과 함께 오셨다. 역시나 초인종이 아닌 비번을 누르고서.     


“오셨어요?”     


인사를 하고, 나는 어머님께 3월부터 바뀐 아이들의 스케줄과 귀가시간을 브리핑했다.

아이들은 그 사이 등교를 했다. 마지막 인사로 뽀뽀를 해주었다.     


사실, 스케줄 이랄것도 없었다. 둘쨰가 3월에 학교에 입학한 후로, 아이들은 아침 8시 반에 함께 나가서 역시 같이 집에 오면 6시가 넘었다. 그 사이 이전처럼 어머님이 픽업할 일도, 따로 연락이 필요할 일도 없었다. 혹시 몰라 둘째의 학교 등하교를 알려주는 아이알리미 서비스에 어머님을 추가해 드렸다. 아이들이 오면 어머님 집이든 저희 집이든 편한 곳에서 저녁을 챙겨주시면 된다고 했다. 사실 어머님 댁에서 저녁을 하시겠다 말씀하실 줄 알았다. 본인이 쓰던 부엌집기가 편할 것 같아서. 그러나 우리 집에서 하겠노라 하셨다. 나는 편하신 대로 하라고 했다.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니 어느새 8시 50분이 지나고 있었다. 신랑은 기차를 놓치겠다며 재촉했다. 지하주차장에서 배웅을 받고 출발을 했다. 잘 부탁한다고, 잘 다녀오겠노라 말씀드렸다. 우리는 결국 원래 타려던 기차를 놓칠 것 같아 주차랑 자리를 찾는 중에 그다음 기차를 예매했다. 원래 입원 시간보다 여유롭게 나왔기에 수수료가 좀 나온다는 점을 제외하면 정시 도착에 별 문제는 없었다.     


차를 타고 가는데 남편이 한소리 했다.     


“자기랑 나오면 준비가 늦어지네....”     


순간, 오늘 이게 나 때문에 늦어진 건가...? 의문이 들었다. 내 생각엔 시부모님에 예정보다 20분 늦게 오셨고, 이미 공유드린 내 브리핑을 잠자코 들으시고는 추가 질문도 없으셨다. 도대체 왜 오신 거지...? 얼굴을 보고 굳이 인사를 받고 싶으셨나 하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아, 거기에 하나 더. 남편이 재촉하며 나오는 길, 냉장고 정리를 하고 난 20리터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는데 어머님이 굳이 본인이 버리시겠다고 가져가셨다. 썩은 음식물이 섞여 무게가 좀 무거웠는데 내가 들겠다고 해도 한사코였다. 엘리베이터를 내려가는 내내 바닥에 놓지도 않고 굳이 손으로 꼭 쥐고 들고 계셨다. 난 거기서 어머님의 의중을 보았다. 아들 집에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말겠다는 의지. 이제 아이들이 혼자 너무 잘해주더라도 나는 너희에게 이런 집안일을 도와주는 쓸모 있는 인간이다. 나는 이렇게 잘하는 시어머니이다 하고 본인의 정체성을 알리는, 그 쓰레기봉투를 꼭 쥔 손에서 나는 묘한 집착을 느꼈다.

     

그리고 그 집착을 이제는 놓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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