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마일양 Aug 04. 2024

산이와 밥톨이

새 식구가 왔어요.

8살 산이.

친구네가 흰 말티즈 한 마리를 데리고 제주여행을 왔다. 원래도 동물을 너무 사랑하던 아이였지만 말티즈 옆에서 하루종일 떠나지를 못하는 거다. 강아지가 예뻐서 꽁무니만 졸졸졸 따라다니다가 강아지가 떠나자 너무 헛헛해하는 모습을 보니 애완동물은 절대 안 된다던 내 마음이 순간의 방심으로 스르륵 풀려 버렸다. 그렇게 무엇에 홀린 듯 강아지 데리고 오자 약속하고 유기견 센터에 가서 만난 산이.

225번 유기장소 성산읍.

매서운 바람이 부는 2월 산읍 어딘가에 어린 남매강아지 2마리가 버려졌다.

암컷은 남겨 두고  컷만 입양해 와서 남은 강아지가 맘에 남아 누가 입양해 가나 계속 공고를 확인했지만 끝내 무지개다리를 건너 버렸다. 유기견 센터에서 파보장염에 감염된 상태였던 듯.

산이도 집으로 온 후 토하고 며칠 아팠지만 약 먹고 황탯국도 먹고 금방 회복되었다. 요크랑 몰티즈랑 푸들이 조금씩 믹스된 잘 생긴 산이.

성산에서 온 강아지라 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진드기 많은 제주에 살아 바베시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또 한 번 넘겼지만 똥꼬 발랄  잘 지내는 중이다.  

산이 줄 잡고 린이집 등교하던 길 산이가 당긴 줄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져 버린 딸. 울고 있는 딸 챙기는 동안 매일 가던 어린이집으로 혼자 뛰어 들어가 어린이집 선생님께 잡혀 있던 말썽꾸러기.


그렇게 산이와 바다로, 산으로 함께한 8년.

어느 날부막내가 햄스터가 갖고 싶다고 하기 시작했다. 그냥 애써 무시했다. "집도 좁고, 난 너네들 키우기도 힘들고, 쥐새끼까지 키우고 싶지 않아~~~." 나의 거절에는 아랑곳없이 반년동안 꾸준히 햄스터 동영상과 햄스터 사진들을  옆에서 쫑알거렸다. 그러든지 말든지 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다.  역시 내가 듣든지 말든지 자기 하고픈 말을 쫑알거렸다.



그러다 부산에 갈 일이 생겼고 제주를 탈출한 김에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걸 이야기하면 시간을 내어 원하는 것을 해 주겠다고 했다.

딸은 홈플러스에 가면 애완동물 코너에 햄스터를 볼 수 있다고 홈플러스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제주에는 서귀포에 홈플러스가 1개 있고, 서귀포 홈플에는 강아지용품과 고양이용품 밖에 없다. 그리고 딸이 키우고 싶은 골든햄스터 역시

 제주에서는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부산까지 여행 와서 해운대도, 남포동도 아닌 홈플러스에서 햄스터를 보며 반나절을 보냈다. 알고 보니 홈플러스에서 햄스터를 살 꺼라고 모아둔 용돈도 몰래 챙겨 왔지만 햄스터를 비행기에 태울 수 없다는 엄마말에 무겁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여기서 또 내 마음이 고장 나 스르륵 풀려 버렸다.

"이번 휴가 때 이모가 배 타고 제주 놀러 온다는데 그때 사 오라고 부탁해 보자." 



내가 왜 그랬을까?

늦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기회를 붙잡은 딸이 그냥 놓칠 리가 없었다. 햄스터가 오기까지 한 달의 시간이 남았다. 한 5만 원이면 될 줄 알았던 햄스터 키우기 예산은 나만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딸은 아무리 아껴도 햄스터를 맞이하기 위해선 40만 원은 필요하다고 했다. 케이지가 15만 원 이상, 쳇바퀴가 5만 원 이상, 은신처, 간식, 사료, 베딩.... 어쩌고 저쩌고 꼭 필요한 것만 사도 그 정도는 필요하다고... 그날부터 당근 키워드에 햄스터를 등록해 놓고 알람이 울리면 눈에 불을 켜고 보기 시작했다.

서귀포에서 제주시까지 원목으로 된 케이스를 사러 가고 서귀포에서 좌까지 원목 쳇바퀴와 은신처를 사러 가고 그렇게 예산을 반으로 줄 집을 준비하고 햄스터가 오기를 기다렸다.

"엄마는 산이용품들도 정신이 없는데, 너 장난감에, 책에, 옷에, 이젠 햄스터용품들까지 생각만 해도 짐에 눌려 사는 기분이야." 투덜거렸더니 책상서랍 4칸의 자질구레한 장난감들과 소품들을 모두 비우고 햄스터용품들로 채웠다. 그리고 혹시나 이모가 갑자기 못 오는 일이 생길까 봐 애가 타더니....

드디어 디어 햄스터를 만났다.

"엄마, 엄마 나 어디 가서 소리라도 질러야 할거 같아. 어딜 가야  소리를 지를 수 있을까?"

너무 행복해서 꺄악  소리를 질러야겠다고...


우리 집 밥톨이 골든햄스터는 그렇게  딸의  노력으로 우리 집 입성에 성공하였다. 대략 8개월의 설득 과정을 거친 후 우리 가족이 되었다. 나 좀 쉬운 사람인 듯하다.

쥐 같아서 살짝 징그러운 듯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눈빛과 통통한 볼을 보니 나름의  매력을 지닌듯한 녀석이다.



엄마 엄마 저 하찮은 발 좀 봐.

최대한 하찮은 이름으로 지어주고 싶어.

어떻게 저렇게 하찮은데 저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계속 보다 보니

하찮음의 매력에 나도 빠져 가는 듯하다.

가만히 지켜보는 산이도 밥톨이의 하찮은 매력을 알려나? 이로써 우리 집엔 사람 5, 강아지 1, 햄스터 1, 달팽이 2가 살게 되었다.

오 마이 갓이다 정말!





작가의 이전글 팥빙수 중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