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씩 욕조 안에 뜨끈뜨끈한 물을 넘치도록 담은 후 찌뿌둥한 몸뚱아리를 넣고 부드러운 거품을 가득 만들어 때를 불리고 시원하게 빡빡 묵은 각질을 벗겨내는 일. 피부과 의사들은 절대 하면 안되는 무식한 행동이라고 하지만 어릴 때부터 벗겨내던 각질은 때가 되면 나 좀 벗겨내 달라고 아우성이다.
우리동네에는 외관으로 봤을 때 아주 오래된 목욕탕이 하나 있다. 얼마나 되었을까? 20년쯤 되었을까?
1층은 동네 구멍가게가 있고, 2층에 여탕이, 3층에 남탕이 있는 건물이다.
목욕탕 이용료는 6,500원이다. 슬리퍼 질질 끌고 편하게 찾아가서 빡빡 때밀고 오고 싶은 거리와 가격.
사실 동네 목욕탕은 아는 얼굴을 만나는 민망한 상황이 생길 듯 하여 용기를 내지 못하지만 이곳 미천탕은
동네할머니들만 이용할 것 같아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오래 되었지만 나름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다는 후기를 보고 딸과 함께 어느 비오는 오후 처음으로 미천탕에 발을 들여 놓았다.
역시나 목욕탕 안은 아무도 이용객이 없었고 딸과 나뿐인 목욕탕이라 마음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오래되어 색이 바랜 누른 색 샤워기, 소박한 온수탕과 두세명이 들어가면 가득 차는 작은 사우나.
중간에 할머니 한분이 들어와서 딸기 요거트를 나누어 주셨다.
이런 걸 목욕탕 안에서 먹어도 되는지 망설이고 있으니 "괜찮아. 괜찮아. 내가 오랫만에 와서 기념으로 쏘는거야." 하시고는 주인 할머니에게 가서 숟가락을 받아 오셨다. 주인 할머니가 숟가락을 건네는 걸 확인한 후 우선 목욕탕 안에서 먹었다고 혼날 일은 없을 듯 하여 딸과 온수탕에서 나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요거트를 먹었다. 그 후 가끔씩 사람들이 없겠다 싶은 시간에 찾게 되는 우리동네 목욕탕 미천탕.
보통 할머니들만 한두명 앉아 계시고 알아 들을 수 없는 제주사투리로 말을 걸어 오실 때도 있지만 못알아 듣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배시시 웃으며 때를 밀다 오면 되었다.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목욕탕을 어느 날부터 딸이 친구들과 놀이터 삼아 다니고 있었다.
"엄마 오늘은 때를 좀 밀어야 겠어. 친구랑 목욕탕 갔다올께."
"무슨 때를 밀겠냐? 냉탕, 온탕 왔다 갔다 하다가 목욕탕 안으로 밖으로 왔다갔다 깔깔거리며 놀다 오겠지."
알고보니 친구집이 주택이라 겨울철에 욕실이 너무 추워 한달치를 선불로 결제해 두고 이용해서 그곳은 친구에게 자기집 욕실마냥 너무나 익숙한 곳이였다. 운동장에서 뛰어 놀고 난 날이면 친구들과 향하는 동네목욕탕.
" 엄마 오늘은 목욕탕에 갔더니 할머니가 요구르트를 사 주셨어."
" 엄마 오늘은 할머니가 냉탕에서 수영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수영을 해보라고 했어."
" 엄마 오늘은 목욕탕에서 할머니들이 싸웠어.사우나가 좁은데 어떤 할머니가 누워 있어서 눕지 말라고 싸웠어."
초딩여자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목욕탕에서 아이들의 추억이 쌓여가고 할머니들과의 우정이 쌓여간다.
시골에 살아서 만들 수 있는 추억이 아닐까?
서귀포 조용한 시골마을. 부족한 것 많지만 도시에서 만들 수 없는 풍요로운 추억이 쌓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