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 만난 무늬오징어는 외계생물 같았다. 어른 팔뚝만한 크기로 까만 먹물을 쏘며 존재감을 자랑했다. 그 시기 화순항은 무늬오징어가 나오는 시즌이라며 여기저기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고 손맛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신기한 광경 속으로 들어가 한밤 폭죽처럼 터지는 환호 소리에 덩달아 소리 지르며 무늬 오징어를 구경하고 텐트로 돌아왔다. 그때는 우리에게 너무 낯선 광경이여서 구경으로 끝냈지만 제주 이주 후 남편은 한동안 무늬오징어 낚시에 빠져 냉동실을 무늬오징어로 가득 채우고, 때론 이웃들에게 무늬오징어로 인심도 쓰며 지내던 풍요로운 시절이 있었다.
중동엔 석유부자 만수르가 있으면 위미엔 무늬(오징어)부자 정수르가 있다는 허풍을 치면서 세상행복을 다 가진 듯 지내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열정이 식어서 돈주고 사먹어야 하지만 무늬의 만만치 않은 몸값으로 .... 우리 식탁에서 본지는 몇만년 전인 듯 하다.
다음날 화순 해수욕장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던 중 바다 속 모래 위에서 헤엄치고 다니는 문어를 아이들이 발견했다.
"아빠, 문어가 있어."
남편이 뛰어가 잡고 돌아서니 또 문어가 있고 돌아서니 또 문어가 있고 돌아서니 또 문어가 있었다. 완전 사기꾼 같겠지만 진짜 그렇게 잠깐의 시간동안 문어 8마리를 잡았다. 무슨 일이였을까?
제주살이 14년차지만, 밤낮으로 바다에 나가지만 그런 경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
그때 사진은 사라지고 몇년 후 막내딸의 물놀이. 아빠가 잡아 준 문어 들고 기념촬영.
떠돌이 여행객에게 갑자기 생겨난 8마리 문어를 해결하기 위해 문어숙회, 문어라면, 문어튀김까지 해먹고도 그 문어를 다 먹지 못해서 상할까봐 걱정하던 때가 있었다. 그 문어 진짜 다 어떻게 했나? 끝까지 다 먹긴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지금 생각하면 병든 문어였을까?
똑똑한 문어가 어리버리 어설픈 여행객에게 8마리나 손쉽게 잡혔다는게 지금에 와서 의문이지만 먹고 탈이 안났으니 그걸로 충분히 고마운 제주의 바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