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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마일양 Jul 29. 2024

우리 집엔 해남이 산다.3

해녀할머니, 낚시꾼할아버지를 공략하라.



어떤 생명이든 상관없이 태워 죽일듯한 무자비한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포구에 앉아 낚싯대를 던져 놓고 손가락만 한 작은 전갱이 새끼 한 마리만 낚아도 로또당첨된 듯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저렇게 좋을까?

바닷가를 지나다니다 보면 보말 줍는 할머니 곁에 가서 무얼 잡으시나 살펴보고, 따라잡고...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깊이 바다로 다가가다 테왁에 연결된 그물망을 지고 바다에서 나오시는 해녀 할머니를 만나면 무거운 그물망을 받아 들고 바위 위에  올려 주었다. 그러면 해녀 할머니께서 고맙다며 금방 바다에서 딴  미역을 한 움큼씩 쥐어 주시고 가끔은 소라도 몇 마리 던져 주셨다. 그렇게 바다와 조금씩 조금씩 친해지며 직접 바다에서 소라를 발견하고 문어를 잡는 내공까지 얻게 되었다. 정신없이 바닷가를 헤집고 다니며 소라를 몇 마리 주워 신이 날 때쯤이면 뭐라고 소리를 지르시며 손을 아래위로 휘저으시는 할머니가 나타났다.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신 꿀벌을 지키는 말벌아저씨처럼  소라를 지키기 위한 해녀할머니가 어디선가  번개처럼 나타나신다. 때론 부릉부릉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시기도 하고 때론 귀신처럼 소리도 없이 짠하고 나타나서 제주사투리로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제주의 바다는 거의 마을 어장으로 소라채취가 금지된 곳이 많다. 잡은 걸 다시 바다로 던져 놓고 빈 손이 되면  화를 낸 할머니도 마음이 짠 하신 지 소라를 잡을 수 있는 구역과 잡을 수 없는 구역을 알려 주셨다.  


"저기서부터 저~~ 기 까지는 가서 잡아도 돼. "

물론 사투리로 하셨지만 제주 14년 차에도 제주 사투리는 어렵다.


그때부터 내내 우리의 여름 물놀이장은 그곳이 되었고 그곳에선 우리가 무엇을 잡아도 오토바이를 탄 해녀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으셨다. 우리만의 물놀이장은 올해 들어서 서귀포시가 지정한 바릇잡이체험장(해산물재취허용 공간)으로 오픈되었다.  


기억나는 제주바다에서의 에피소드는 정말  많다.

제주로 온 초기에 볼라벤이 지난 후 태풍이 쓸고 간 바다를 구경하러 새벽부터 부지런히 나갔더니 아저씨들이 물고기를 푸대로 담고 계셨다. 바닷속까지 뒤집어 놓은 태풍의 위력에 수백 마리의 물고기들이 죽어 갯바위에 나뒹굴고 도로 위까지 나와 있었다. 집채만 한 바위가 파도에 쓸려와 길을 가로막았던 태풍이었다. 따라쟁이 남편은 아저씨를 따라 물고기를 한가득 자루에 담아 동네 할머니들께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그때 태풍만 불면 그렇게  물고기가 죽어 갯바위에 누워 있는 줄 알았지만  살아보니 그 해 볼라벤 때만 그랬다. 우리는 둘 다 요리 실력이 아주 똥손이라 생선요리 같은 손질이 까다롭고 고급 기술이 필요한 재료는 아낌없이 주변에 나누었다. 4자 벵에돔 3마리를 당근마켓에 5만 원에 올렸더니 금방 구매자가 나타나 그 돈으로 아이들과 고구마피자와 치킨을 사 먹던 날도  있었지만 또 시도하려고 보니 농수산물은 개인거래 되지 않아서 한 번의 추억으로 만족해야 했다.

볼라벤에 밀려 온 이름 모를 물고기/ 태풍에 죽어 항구에서 말라가던 심해어종 곰치


사람들이 몰려 있는 바다는 우선 가 보아야 한다.

어느 날은 남편이 참돔을 자루 가득 담아서 어깨에 지고 왔다. 저건  또 뭔가?? 저 아저씨 뭐하는 아저씬가?

사연을 들어 보니 태풍영향으로 참돔 양식 가두리가 터져서 탈출한 참돔들을 너도나도 낚시로 잡았다고 했다. 그럼 양식장 사장님은 어쩌냐고 바다로 탈출했지만 양식장 사장님께 잡아서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보험으로 다 보상받아서 괜찮다고 했다. 괜찮은 거 맞겠죠? 한 십 년쯤 전 일인데 ...

여하튼 그때도 온 동네 할머니께 참돔을 나눠 드렸다.



탈출 참돔...참돔 맞겠지? / 멸치 /  무늬오징어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바다소풍을 즐기시는 우리 집 해남.

바다낚시꾼 할아버지들  무얼 잡으시나  꼭 차에서 내려 슬쩍 눈에 담고, 넉살 좋게 물어보고.

요즘은 민물과 바다가 만나는 어딘가에서 민물장어를 잡아 냉장고를 채우신다.

처녀물귀신 나올거 같은 깜깜한 밤에... 위험하다 가지 말라 잔소리를 해도 위험한 곳은 가지 않는다며 괜찮다고 한다.

제주이주 바람이 시들해진 요즘 시기에 가끔은 다시 육지로의 삶을 꿈꾸지만 우리 집  해남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바다 채집생활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아아들과 잡았던 새끼 광어. 귀엽고 신기해.. 살려줬어요. / 바다를 몇시간씩 헤엄치며 잡은 전복, 소라, 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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