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 우리들의 영웅
여러분은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으로 어떤 것이 있나요? 저는 특별한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약간 찌질이 과라서 성적에 쩔쩔매며 고교 3년을 지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런 기억이 학교장 역할을 하는데 어떤 방향을 제시하더군요. 사람이 현재와 미래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와 의지는 과거에 기반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보며, 이 학생들이 본교를 졸업한 후 모교에 대하여 어떤 기억을 가질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개인적인 기억을 넘어, 졸업생들끼리 공유하는 모교에 대한 특별한 가치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는 기억이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소속집단에 대한 자부심이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태생이나 선발에 대한 자부심이 아닌, 공동의 의지와 노력에 대한 자부심은 건강한 자부심이겠지요. 그런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런 훈화를 자주 하곤 했습니다. ′본교는 평범한 학생들이 모인 학교이지만, 여러분들이 하루하루의 학교생활에서 보여주는 정직함과 성실함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을 지향하는 의지와 노력은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가끔은 학교장이 무당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학교가 무언가 잘 될 것이라는 희망 바이러스를 흩뿌리고, 학생들에게는 특별한 미래가 준비되어 있다는 믿음을 심어준다는 측면에서. 그래도 현대의 무당이니 방울을 흔들 수는 없고, 거짓과 나약함을 멀리하고 각자의 삶에 부여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는 훈화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습니다. 집단적 자부심을 심어주는 학교의 독특한 제도와 프로그램을 여럿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들의 영웅′입니다.
우리들의 영웅은 학년말에 각 반에서 지‧덕‧체 측면에서 가장 존경스러운 친구를 투표로써 뽑는 제도입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영웅 친구를 써내면 차츰 후보수를 줄여가며 최종 1인을 선정합니다. 각 학급에서 선정된 인원을 대상으로 선생님들의 승인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하여, 학교장이 최종적으로 영웅을 결정합니다. 독자분들은 이런 제도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학교구성원들에게 이 제도의 도입 취지를 설명하였더니 술렁술렁하더군요. 이문열 씨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올리며 어색해하는 분들도 있고, 지금 시대에 영웅놀음을 하느냐는 비판도 있더군요. 학생들이 인기투표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제기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저도 그런 걱정이 들어 학급 투표를 앞두고 방송훈화를 통해 인기가 아닌 지‧덕‧체 측면에서 존경스러운 친구에게 투표하도록 지도했습니다. 지도가 통하냐고요? 예... 통합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조직생활을 하면서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는 선택은 어느 정도의 외로움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고, 외로움을 극복하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혼술과 학생들의 지지가 제 노하우입니다.
방송조회에서 트로피 수여식을 실시하며 영웅으로 결정된 학생들을 살펴보니 낯선 학생들이 다수더군요. 학교장은 아무래도 공부 잘하는 학생군과 문제학생군 얼굴을 기억할 수밖에 없는데, 영웅으로 선정된 학생들 대부분은 낯선 얼굴이었습니다. 몇몇 담임 및 반장과 얘기해 보니, 그분들도 영웅으로 선정된 학생을 보고 놀랐다고 하더군요. 공부를 잘하거나 특별히 눈에 띄는 학생은 아니지만, 묵묵하게 공부하고 친구들에게 친절한 학생이 뽑혀서요.
영웅으로 뽑힌 학생에게는 어떤 혜택이 있냐고요? 오른쪽 그림과 같은 트로피를 줍니다. 주는 사람은 학교장이 아닌 학생과 선생님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줍니다.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졸업 후 몇십 년이 지나 고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 우리들의 영웅 이야기가 나오면, 영웅이었던 학생이 아니더라도 모두 유쾌하면서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지 않을는지요? 지나친 욕심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서사만 있느냐고요? 사람 사는 세상에 그럴 리가 있나요! 두 번의 어려운 상황이 있었습니다. 시행 첫해에 한 반에서 선정된 학생에 대해 몇몇 분들이 반대를 하더군요. 이유를 들어보니, 선정된 학생이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지킴이선생님께도 불손한 태도를 보여와 영웅으로 선정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참 난감하더군요! 판단의 핵심은 사실과 교육적 가치(쫌 애매하죠!)라 생각했습니다. 학생을 불러보니, 이미 왜 자신을 부른 지를 알고 풀이 죽어 있더군요. 고민이 많은 학생이고 반항적 태도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만약 학교장으로서 영웅 결정을 거부하면, 이 학생에게는 불명예는 물론이고 개인적 삶에서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학생들의 의사를 일부 교사들의 반대로 취소시키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도 있고요.(다른 이야기지만, 이런 상황에서 교직원 투표를 통해 수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장 결정으로 짊어져야 할 부담을 회피하고 다수의 등 뒤로 숨는 행위라고 생각해서요. 동의하지 않는 분도 있겠지요!) 고민 끝에 영웅으로 결정하였습니다.
둘째 해에는 더 심각한 상황이 생기더군요. 한 반에서 추천된 학생을 여러 선생님들이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이때는 교사 투표를 실시해도 반대 의견이 더 많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반장을 불러 얘기해 보니, 학급에서 담임과 학생들 사이가 좋지 않은데, 추천된 학생이 대표로 나서 담임에게 반대 발언을 많이 해왔다 하더군요. 일종의 민란 주동자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여러 번 고민하다 영웅으로 결정했습니다. 반대하는 분들 각각에게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내부망으로 보내어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해당 선생님들이 이해했냐고요? 이 또한 그럴 리가 없지요! 제가 4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제가 만든 학교프로그램과 제도의 지속 여부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우리들의 영웅도 폐지해야 할 대상에 있더군요. 저와 마찬가지로 선생님들도 고집이 센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학교에서도 우리들의 영웅을 실시했습니다. 이 학교는 학력 수준이 굉장히 높은 학교입니다. 부임 첫해에 서울대에 12명을 보내 서울시내 공립고 중에서는 2위를 하는 수준입니다. 이런 학교이니만큼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상당하더군요. 학생과 대화를 해보면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부모님으로부터 라는 판단이 들어 학생들이 안쓰러웠습니다. 물론, 부모님들도 안쓰러웠지요!
이런 이유로 학교생활에 즐거운 요소를 많이 도입하면서도,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찬찬히 가꾸어 가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업에 열중하면서도 지‧덕‧체 측면에서의 성장을 지원하고 싶더군요. 이와 함께 거짓말을 많이 하는 학생들의 생활태도도 맘에 걸렸습니다. 뭐... 공부를 잘한다 하여 도덕성이 더 높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종교인에게 더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는 것처럼,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좀 더 정직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2년간 우리들의 영웅 제도를 실시하면서, 학생들이 좀 더 정직하고 인생에서 존중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강조하곤 했습니다. 마침 학교의 현관 벽이 비어 있어 그 자리에 전년도 우리들의 영웅 사진을 걸어두었습니다. 제가 시행한 제도라서 제가 제도를 평가하는 것이 냉정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이 사진 게시 후에 학생들의 거짓말이 많이 줄어들고 생활태도도 많이 당당해졌다고 느꼈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제 또래의 사람들 중에는 80년대 성적우수자 명단을 현관에 게시하는 것 같다는 비판을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도 시험 때마다 문이과 각각 50명씩의 성적우수자를 석차순으로 기재한 방을 붙이곤 했는데, 그 방에 제 이름 한번 올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뭐... 그래도 우리들의 영웅 사진 게시와 성적우수자 게시는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학교의 존재 이유가 성적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지‧덕‧체 측면에서의 성장은 학교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가 아닐는지요? 본인 사진이 걸려있다면 큰 자부심을 갖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학생이라 하더라도 다음 1년간 열심히 노력하여 친구들의 인정을 받고자 애쓰는 것이 이상한가요? 막말로 ′21세기 글로벌 인재…′ 하는 상투적 표어보다는, 이런 류의 사진이 직접적이고 원시적인 지향점을 갖도록 하는 장치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학교에서의 경쟁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일반사회도 그렇지만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경쟁에 대하여 확연한 견해차가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경쟁을 개인의 욕구를 쟁취하는 과정에 수반되는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보고, 이를 부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폐해를 가져오게 된다는 입장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경쟁으로 인하여 황폐해지는 삶의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가급적 경쟁을 지양하고 협동적인 활동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 아닌가 합니다. 학교교육에서 경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교사 개인은 물론이고 교육기관 운영 방식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판단합니다. 이와 관련된 경험을 소개합니다.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할 때, 교육정권 교체가 있었습니다.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이 있어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정해진 책을 읽고 1시간 일찍 출근하여 토의토론을 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얘기를 나누면서 사람들 사이에 생각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교육에서의 경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의 차이에서 비롯된 견해차라는 판단이 들더군요. 고백하자면, 저는 교육에서의 경쟁이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고 순기능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육에서 경쟁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고, 오늘날 학교와 사회의 많은 문제는 과도한 경쟁에서 유발되었다고 판단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많은 경우에 경쟁에 대한 호불호를 자신의 지나온 삶과 연결하여 정한다는 느낌이 들어 상당히 불편했습니다.(저는 경쟁에 많이 치인 편입니다!)
드라마에서는 학교에서의 내신 경쟁 때문에 친구를 미워하고 심지어 해코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영상을 보고 학교의 모습이 정글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 같더군요. 제 경험과 판단은 다릅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학생마다 라이벌이 있을 수 있지만, 서로 경쟁도 하면서 라이벌로부터 배우고 우정을 쌓아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의 경험으로도 학창 시절 성적을 다투던 라이벌이 현재의 친구이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친구의 성장과 성공을 방해하거나 친구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공하고도 술 한잔 사지 않는 친구는 싫어하지요! 드라마는 극적 효과를 위해 극단적 상황을 전개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모습은, 내신 경쟁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갖는 어두운 측면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기억나는 학생이 있습니다. 아주 외곽지역 중학교 출신 학생이 있었는데, 고교 입학 때부터 무지하게 열심히 공부를 하더군요. 어느 정도로 열심이냐 하면, 본교는 일 년 363일 자율학습실을 운영했는데 아마 360일은 23시까지 자율학습실에서 공부를 하고 귀가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업태도나 교우관계 등도 나무랄 데 없고요. 2학년이 되었는데도 내신이 평균 3.5등급 정도에 머물러 교장실로 불러 얘기를 나눴습니다. 교장실로 부른 이유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이 학교의 책임인 것처럼 느껴져서입니다. 중학교에서는 반에서 2,3등 정도로 잘했는데, 중학교 때 급우들이 워낙 학업에 대한 관심이 적어, 본인은 시험공부 정도만 착실하게 했다 하더군요. 그래서 깊이 있는 공부를 하려 하기보다는 방송반 활동 등을 하며 즐겁게 지냈다고 하더군요.
이런 분위기의 중학교가 꽤 있습니다. 경쟁을 유발하는 분위기를 없애 학생들이 즐겁고 편안한 학교생활을 하도록 한다는 학교운영 철학이 지배하는 학교라는 판단입니다. 좀 안타깝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3년 후에는 냉엄한 평가가 이루어지는데, 학생을 안쓰럽다 생각하여 솜이불에 감싸고만 있는 것 같아서요. 이불 밖 상황도 알리고 찬바람을 쐬는 체험도 하도록 안배하는 것이 낫지 않을는지요. 중학교에서 상당한 준비 없이 고등학교에 올라오면 좋은 성적을 올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 학생은 나중에 서울 시내 대학 경제학과에 갔는데, 당시 문과 졸업생 중 진학의 난이도 면에서 2위 정도 결과였습니다.(내신만으로는 20위 정도고요) 대학진학 이후 이 학생의 생기부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잘 쓰여 있더군요. 본인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 학생을 지도한 선생님들 모두가 이 정도 노력한 학생이라면 원하는 대학에 보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졸업식에서 졸업장을 주면서 이 학생 손을 꼭 잡고 ’ 너는 더 잘 될 거야 ‘라고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경쟁에 대한, 특히 학교에서의 경쟁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은 경쟁이란 것이 여러 사람이 욕망을 쟁취해 가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인정했으면 합니다. 따라서 공정한 경쟁이 되도록 제도를 운영 관리하고, 경쟁에서 진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함께 재도전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지나친 승자독식을 억제하는 문화를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어야 하는 것이 타당하면서도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생각입니다.
학교에서 욕망 자체를 억제하도록 교육하는 것은 어떠냐고요? 글쎄...종교와 교육을 구별하지 않는 판단 같군요! 만약 제가 학생이라 가정하고, 저에게 어떤 이유로든 욕망을 억제하라고 말하는 선생님이 있다면, 이렇게 묻고 싶네요. ′왜요?′ 좀 더 독하게 마음먹는다면, ′선생님은 그렇게 살고 계세요?′라고 물을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의 경쟁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제 생각은, 경쟁이 갖는 사회적 의미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하도록 교육하고, 정정당당한 경쟁을 하려는 태도를 기르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미덕이며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승자에게는 교만하지 않고 절제할 줄 아는 태도를 기르도록 교육하고, 패자에게는 패배 또한 삶의 한 과정이며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는 또 다른 기회가 있으니 담담하게 실패를 받아들이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혹시 이런 주장을 한다 하여, 제가 경쟁을 만능으로 생각하는 무지막지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분은 없겠지요? 학령이 어릴수록 경쟁 상황을 지양함은 물론이고, 학교교육 전 과정에서 협동과 양보가 갖는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의미와 가치를 강조할 필요 또한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방향의 이야기지만, 저는 학교에서의 경쟁의 대상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줄곧 있어 왔습니다. 학교에서는 흔히 성적이 경쟁의 대상이라 생각하는데, 정말로 좋은 성적이 모든 학생들의 진짜 욕망의 대상일까요? 제가 읽은 문구 중에 자크 라캉이 말했다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본인이 진정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 주고, 교사는 개별 학생의 특성을 파악하여 공부 이외에 관심과 재능이 있는 학생이라면 그 길을 가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는지요. 이게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