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입시 역량 강화
교장으로 처음 부임하면서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습니다. 이게 어떤 감정하고 비슷하냐 하면,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감정과 비슷한 것 같더군요. 기쁨과 함께 강한 책임감이 드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특히, 교장공모제(학교구성원의 선택을 중심으로 교장을 선정하는 제도)로 부임하다 보니 학교발전에 대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을 상당히 느끼게 되더군요. 일단은 본교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고, 학교구성원의 요구가 무엇인가를 파악해 보려 했습니다.
학교구성원의 요구는 단순했습니다. 학생들은 즐거운 학교생활이 되기를 바라고, 선생님들은 가급적 편한 근무 여건이기를 바라고, 학부모들은 자녀가 희망하는 대학으로의 진학을 바라는 것입니다. 물론, 공교육 기관인 학교는 이러한 요구 이외에도 공적인 역할로서 학생들이 훌륭한 시민으로서의 덕성, 성실함 그리고 미래사회에 대한 대응능력 등의 여러 가치를 구현해야 합니다. 이런 다양한, 어쩌면 상충할 수도 있는, 요구를 균형 있고 성공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학교장의 역할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초임 교장으로 부임한 학교는 외곽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평판을 유지하고 있었고 학생들도 착했으며 선생님들도 성실하게 근무하는 학교였습니다. 다만, 외곽지역 학교라서 그런지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선생님들까지도 대학입시에서의 발전 가능성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갖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저는 공적으로 부여된 학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교 분위기를 만들어 대학입시에서 성과를 내야겠다고 나름 그랜드 플랜을 세웠습니다. 당연히 지금까지 본교가 어떻게 입시지도를 해오고 있는가와 선생님과 학생의 입시에 대한 생각을 탐문해 보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세 부문을 중심으로 학교의 입시 지원 역량을 키워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내신성적의 평균을 조율하는 것이고, 둘은 학교프로그램을 리셋하는 것이며, 셋은 학교생활기록부 기재방식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자료를 받아 내신성적 분포를 살펴보니, 평균이 지나치게 높은 과목이 전체 교과의 30% 정도 되더군요. 교과 평균을 65점 정도로 맞추도록 압박을 가했습니다. 물론 그 이유도 교직원회의에서 설명을 했지요. 최상위권 대학은 내신성적을 반영할 때 Z점수로 반영하는데, 교과 평균이 90점 정도가 되면 비록 만점을 받은 학생이라 하더라도 해당 과목의 Z점수가 0.5점 정도가 되어, 그 학생의 전체 과목의 Z점수 평균이 1점대 중반에 도달하지 못하게 되고, 수시 1차 통과가 어려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신 시험 결과가 나오는 대로 평균 75점 이상의 과목 선생님들을 교장실로 불러 협조 요청을 했습니다. 학교장 말을 잘 듣느냐고요? 그럴 리가 있나요! 그래도 끈질기게 얘기하면 귀찮아서라도 과목 평균을 조정하더군요. 과목 평균과 관련한 제 요구를 관철시키는데 1년(일 년에 4번의 시험이 있습니다!) 정도가 걸리더군요.
학교프로그램을 리셋한다는 생각으로 기존 학교프로그램을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기존 학교프로그램의 절반 정도를 없애고, 기존 프로그램의 2배 정도를 신설했습니다. 결과적으로 50% 정도의 학교프로그램이 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구현형학교라는 이름의 글에서 언급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학교프로그램에 대한 것이니, 학교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여기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후임 교장으로서 전임 교장이 세팅해 놓은 학교프로그램을 없애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학교만의 상황이 아니라, 국가나 지차체는 물론 어느 조직에서나 최고책임자가 교체될 때마다 있을 수 있는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제가 보기에 전임자의 정책과 운영기조를 뒤엎는 것에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하나는 전임자의 역량이나 철학을 후임자가 받아들이기 힘든 경우이고, 둘은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고 후임자의 칼라를 입히고 싶은 경우입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보통 1년 정도는 전임 교장이 실시하던 학교프로그램을 유지하고, 학년말에 수정 폐지할 학교프로그램에 대한 검토와 구성원의 의견수렴을 거치는 과정을 가집니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방식을 개선하는 작업도 수행했습니다. 당연히 기존에 생기부 기재 방식을 살펴보고,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개선할까를 고민했지요. 여러 고민 끝에 제가 생기부 기재 항목의 전 영역에 걸쳐 샘플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다음은 실제 제가 작성하여 선생님들께 설명한 자료입니다. 혹시 독자 중에 고등학교에 계신 분이 있으면 참고가 될까 하여 소개합니다.
이 또한 선생님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학교는 기본적으로 평등성이 강한 조직이라 학교장이라 하더라도 각 선생님이 해오던 생기부 기재 방식을 바꾸도록 요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뭐... 그래도뭐...그래도 저는 고집스러운 성격이라 지구력 있게 생기부 기재 방식에 대한 간섭을 했습니다.
겨울방학 기간 동안 전체 선생님의 생기부 기재 내용을 살펴보고 제가 안내한 방식대로 쓰지 않은 선생님들은 2월 개학 기간에 교장실로 모셔 설득 작업을 했습니다. 제 고집으로 상처받은 분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생기부의 기능과 해당 학교의 생기부 작성의 통일성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학부모님들 설득도 했습니다. 생기부 작성에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학부모님들은 만족하지 않고 늘 뭔가 부족하다 느끼고 여러 요구를 하더군요. 학부모님 회의에서 본교의 생기부 기재 원칙과 프로세스 및 실제 현황을 설명하고, 분명하게 얘기했습니다. 자녀의 생기부가 잘 작성되는지 여부는 오로지 지녀가 학교생활(특히 학교프로그램)에 얼마나 충실하게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다고요!
아마 이맘때쯤이면 궁금한 것이 있을 것 같네요. 그렇게 하면 학교의 입시결과가 실제 나아지는가를. 좋아집니다. 진짭니다! 아래 표는 제가 4년을 근무한 학교의 5년간의 입시결과 분석자료입니다. 아래 자료와 관련하여 몇 가지 설명을 하고자 합니다.
임기 1년 차 임시결과는 그 이전 결과와 비슷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진학 총원 자체는 큰 변동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SKY급 대학 입시결과를 중심으로 설명하려 합니다. 2년 차에는 서울대에 5명이 합격하여 인근 지역에서 난리가 났습니다.(서울대에 5명을 합격시키는 학교는 많지 않습니다!) 당시 입시전문가를 3학년 부장에 보임하고 적극적으로 지원을 한 것이 좋은 결과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3년 차에는 수시에서 연고대 합격자가 여러 명 나왔습니다. 이때부터 그동안 학교의 조직적 노력이 성과로서 나타난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4년 차에는 정시에서 연고대 합격자가 2명이 나왔습니다. 외곽지역 학교에서 정시로 연고대를 가기는 매우 힘듭니다. 저도 놀라고 선생님들도 놀라더군요.
2023년은 제가 4년 임기를 마친 후의 결과입니다. 함께 근무했던 분에게 부탁여 입시결과 전체를 받아 분석한 것입니다. 교장 부임 3년 차부터 학교프로그램 세팅을 끝내고 입시지원 체제도 완성하여, 이때 입학한 학생들의 결과를 추적해 보고 싶더군요. SKY급 대학에서 그 이전보다 5배 정도는 입학성과가 나왔습니다. 저는 학교가 몇 년간 입시와 관련하여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한다면, 그 이전보다 두세 배 정도는 나은 결과를 내는 것은 가능하다 믿습니다.
제가 이런 자료를 만든 것은 학부모님은 물론 선생님들을 설득하기 위해서입니다. 학교가 단합하여 노력을 집중하면, 학교교육의 성과는 물론이고 입시결과도 좋아진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보여주고 싶더군요. 학교가 노력하면 입시결과가 좋아진다고 막연히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데이터로 그 성과를 측정하여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에서의 입시지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인문계고등학교에서의 입시지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 사회에는 상당한 견해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의 입시지도의 당위성, 효용성, 그리고 평등성이 주요 논점이 아닌가 합니다.
입시는 학교가 온전히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부터 입시는 오롯이 개인의 책임이고 학교는 입시에서 손을 떼어야 한다는 입장까지 상당히 큰 폭의 견해차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입시 학교 책임론’이라 칭할만한 전자의 주장은 학부모가 선호할 만한 견해로서 과학고 근무할 때,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는 학부모들로부터 무언이지만 이런 압박을 많이 느끼곤 했습니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자녀는 뛰어난 재능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잘 지도하지 못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라고 주장하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사례가 나올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교직을 떠났습니다. ‘입시 학생 책임론’이라 칭할만한 후자는 진보적 교육관을 가진 교사들이 가질 수 있는 견해로, 학교는 정해진 커리큘럼을 지도하고 인성교육 등을 실시하는 곳으로써 입시는 학생 학부모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라는 주장이 아닌가 합니다.
‘입시 학교 책임론’은 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물론 인간 자체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학교가 마치 생산라인처럼 학생이라는 원료를 투입하여 3년의 생산기간에 여러 프로세스를 거쳐 원하는 대학에 갈만한 제품을 만드는 곳으로 이해하고, 성형되어지는학생은 공정에 따라 성형되어지는 벽돌 같은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입시 학생 책임론’은 학교의 책임을 면하는 핑계로써 사용될 수 있는 논리입니다. 납세자이며 주권자인 국민이 대학 진학을 생각하고 자녀를 인문계고등학교에 보냈는데, 대학 진학은 학생 학부모가 알아서 하는 것이고 학교와 교사는 학생의 인성과 시민성 등을 지도하겠다 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배임이 아닐는지요.
올바른 길은 두 주장의 중간 어디쯤에 있는 것이겠지요. 저는 ‘입시 학교 책임론’과 ‘입시 학생 책임론’의 중간에서 '입시 학교 책임론'으로 조금 가 있는 위치가 제 생각이라고 고백합니다. 제가 학교 현장에서 느꼈던 것은 학생의 시민정신과 인성교육 등을 추진하는 것과 입시지도를 병립하는 것이 상호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건강한 시민의식을 갖고 따뜻한 품성을 기르면서도 진로의 하나로써 가고 싶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학생 본인은 물로 이고 학교 전체로도 진취적이고 활기찬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제 경험으로부터의 판단이고, 마땅히 학교는 그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학교가 실질적인 입시지도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이는 학교 자체의 입시지도 역량보다 사교육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 제기라는 판단입니다. 4화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교육 존재의 본질적 속성이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우위에 서고자 함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학교가 어떤 입시지원 활동을 하더라도 사교육에 의지하는 분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학교에서 외부 전문가를 불러 진학 상담도 실시하고, 데이터를 가지고 전문적 입시지도를 하는 분들로 3학년 담임을 맡겨 열심히 노력해 보아도, 학원에 가서 입시 조언을 받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학교가 입시지원 역량을 상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려 활동하기만 한다면 학교의 책무를 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외의 과정은 오롯이 학생 학부모의 선택의 문제로서, 이는 개인의 삶에서 선택의 자유 문제이므로 학교가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입시지도와 관련한 마지막 논의점은 평등성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앞에서 SKY대학 진학을 운운할 때 불편한 분이 있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실제 앞의 서식을 만들어 전교직원과 공유하면, 학교장이 경쟁과 대학서열화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고 진학의 난이도를 생각하여 본교가 거둔 성취 변화에 대한 판단 자료라 주장하지만, 비판하는 분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더군요.
실제 입시지도가 이루어질 때, 소위 상위권 대학에 가려는 학생에 대하여 지원과 관심이 집중되고 보통의 학생은 경시되지 않는가 하는 걱정과 비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교사와 학교의 건강성 문제란 생각이고, 이 또한 학교장의 역할이 필요한 부분이지요. 학교장은 교직원회의와 협의회 등을 통해 선생님들께 여러 부탁을 할 기회가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선생님들께 모든 학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학생들을 공정하게(때론 공평하게) 대하도록 조언을 하면,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사명감을 가진 분들이라, 이런 학교장의 조언이 실현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