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학교장과 함께하는 나머지공부
어느 해인가 수업 중 자는 학생에 대한 언론보도가 집중된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장학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여러 학교의 사정을 들어보니 실제로 중등교육에서 수업 중 자는 학생 현상이 심각하다고 판단이 되더군요. 자신이 속한 직업 집단이 그 집단에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완수하지 못한다는 것은, 개인으로는 부끄러운 것이고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후 학교장을 하며 하루에 한 번씩 수업하는 교실을 둘러보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수업 중 자는 학생이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반에 두세 명 정도는 잠을 자는 학생이 있더군요. 그렇다 하더라도 언론에서 제기되는 수업 중 자는 학생 문제에 반응하는 것이 공무원으로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대응하는 방식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대하여 고민했습니다.
학교 전체가 나서서 소위 수업 중 자는 학생 근절 운동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학교장 차원의 교육활동 수준에서 대응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어떤 선택이어야 좋겠는가 라고 묻는다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학교 전체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답하리라 예상합니다. 흔히 교육계에서 대응하는 방식도 그렇지요. 우선 대책 위원회를 조직하고, 목표달성 계획을 세우며, 추진 일정을 세워 실천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대응 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 대응하지 않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유는 세 가지 정도입니다. 하나는 수업 중 자는 학생 문제가 본교에서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며, 둘은 실제로 수업 중 자는 학생을 불러 얘기해 보면 자는 이유에 여러 층위가 있더군요. 수업에 흥미가 없어 자는 학생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갑자기 몸이 아프다거나, 밤늦게 알바를 하려고 미리 잠을 자 두는 학생도 있더군요(이런 경우의 학생에 대하여는 혼을 내기가 곤란하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셋은 이 정도 현상에 대하여 학교 전체가 나설 필요까지는 없고, 학교장이 직접 나서서 대응하는 정도가 적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판단을 했습니다. 학교는 본질적인 교육활동(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해야 해서 약간은 부수적인 병리현상에 대하여 조직의 역량을 집중해서는 더 큰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만든 것이 ‘학교장과 함께하는 나머지공부’ 라는 프로그램입니다.
프로그램을 네이밍 하면서 약간의 고민을 했습니다, 학교장이 직영하는 프로그램 이라는 의미로 ‘학교장’을 넣고, 프로그램의 성격이 나머지공부 라서 ‘나머지공부’를 넣었습니다. 저는 사회적 활동에 대한 네이밍은 멋보다는 활동 내용 과의 일치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제가 좀 올드하죠!).
활동을 준비하며 우선은 ‘학교장과 함께하는 나머지공부’가 어떤 것이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하여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안내를 했습니다. 선생님들께는 일정 서식을 나누어 주어 수업 중 자는 학생이 목격되면 한두 번 정도 잠을 깨워보고, 그래도 계속 잠을 자면 나누어준 서식을 작성하여 저에게 보내기만 하면, 그 이후의 과정(학생을 부르고 나머지공부를 시키는 과정 등)은 제가 알아서 추진하겠다고 알렸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방송을 통하여 저한테 소환문자 받으면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교장실에 내려와 나머지공부를 해야 한다고 알리고요. 그게 싫으면 전학을 가라 했습니다!
맨 처음에 소환된 학생들은 거칠게 항의를 하더군요. 씩씩거리며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고, 심지어 교장실 문을 걷어차는 학생도 있더군요. 자기만 잔 것이 아닌데 본인만 불려온 것이 억울하고 부당하다 주장을 하더군요. 우락부락한 남학생은 약간 무섭기도 하지요(물론 그런 인상을 주려고 교장실 문을 걷어찬 것이겠지요.). 만약 겁을 먹고 학생의 불만을 수용해 주면, 그 학교에서는 얼굴 들고 교장 노릇을 하기 어렵겠지요! 어느 조직이든 책임자는 어느 정도의 깡다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머지공부라 해서 제가 뭘 가르치거나 훈계를 하지는 않습니다. 각자 숙제를 하거나 책을 읽도록 합니다. 가끔 게기는 학생도 있지요! 눈을 꿈 감고 가만히 앉아 있더군요. 저도 눈을 감고 모르는 척합니다! 뭐 어쩌겠습니까! 30분쯤 지나면 차도 타주고 초콜릿도 줍니다. 이때쯤이면 학생들 얼굴에서 분노가 조금씩 사라지더군요. 역시 어린 애들은 먹는 것으로 꼬셔야 효과가 직빵입니다! 1시간이 지나 끝날 때가 되면 성격 좋은 학생들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기도 하더군요. 어떤 학생은 일주일 중 일찍 끝나는 금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에 나머지공부를 운영해 달라 요구도 하는데, 안된다 합니다. 왜냐면 수업중 자는 학생을 괴롭게 하는 것이 나머지공부의 주요 목적이니까요!
계속 소환되는 학생은 어떻게 하냐구요? 물론 대책이 있지요. 세 번째 소환될 때부터는 부모님을 교장실로 오시라 합니다. 실제 부모님 네 분을 교장실로 모셔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세 분은 자녀가 학교에서 잠을 잘 줄 몰랐다면서 우시더군요. 학부모님의 전체적인 인상이 힘들게 사시는 분이라는 느낌이 들어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제가 젊은 시절에는 이런 느낌이 드는 경우에는 해당 학생을 불러 때리기도 했습니다. 다른 것보다 저와 제 부모님을 생각해서지요! 그런데 소환된 분 중 한 분의 주장은 당황스러웠습니다. 선생님이 수업을 재미없게 하여 자녀가 잠을 잔 것이니,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학교와 교사라고 주장하시더군요.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지만, 자녀의 학교생활을 위해 부른 자리이니 부모님도 달리 생각해 보라 설득할 수밖에 없더군요.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한다는데, 어떤 경우는 현실이 드라마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 표는 어느 해 나머지공부 운영 현황입니. 전체 선생님의 20% 정도가 프로그램에 협조를 하더군요. 실제 수업 하는 모습을 살펴보다 보면, 자는 학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을 깨우지도 않고 명단을 보내지도 않는 분들이 많습니다. 독하게 마음먹고 수업하는 교실에 쳐들어가 자는 학생을 직접 깨울까 하는 유혹을 여러 번 느꼈지만 그렇게 되면 선생님의 자존심을 손상케 하여 향후 선생님의 교육활동에 어려움을 초래한다는 판단으로 참았습니다. 실제 그렇게 했다면 빌런 교장으로 소문이 자자했겠지요(저는 빌런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인기있는 교장도 아니었습니다!).
나머지공부에 냉담한 선생님들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 자신이 책임져야 할 수업 운영의 애로를 드러내어 학교장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학생과 불편해지는 상황에 대한 부담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다만, 전자의 경우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곤 했습니다. 제 글을 읽는 분들은 제가 비겁함에 대해 다소 민감하다고 느낄 것 같은데, 그것은 실제 제가 두려움이 많고 비겁한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다만,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삶의 매 순간 제 부족함을 극복하려 애쓰며 산다는 쪽으로 좋게 이해해 주었으면 합니다.
학교에서의 리더십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리더십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 리더십 유형에서 좋은 점만을 따서 나름의 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에게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합니다. 사자의 이빨과 들소의 뿔을 모두 갖춘 동물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짜깁기 한 리더십은 실제 발휘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리더십이라는 것이 사람과 조직에 대한 기본적인 응대 행태인데, 내적 모순이 있는 리더십 요소들이 상호 충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리더십을 보인다면 구성원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런지요? 어떤 리더십을 택할 것인가는 조직의 현상황에 대한 판단과 본인의 개인 특성에 따라 정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 특성은 공통점이 있기 힘들지만, 오늘날 학교 일반에 대한 인식에서 상당한 일치점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오늘날 중등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무력함’입니다. 제가 관찰한 학교 외 대부분의 공조직과 대규모 사회조직도 여러 이유로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성숙화되면서 많은 요소들이 얽히고설켜 있어서 더 이상 옴짝달싹 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들어서 있어 어느 것 하나도 개선하기 힘든 상황인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리더이고 학교에서는 학교장이 그런 사람이겠지요. 저는 여러 자리에서 학교 성공의 50%는 학교장 몫이고, 실패의 90%는 학교장 책임이라 주장하곤 했습니다.
제가 근무한 일반계고등학교에서도 여러 어려움으로 인하여 어느 것 하나 변화하기 힘든 성황이었습니다. 이쪽을 고치려 하면 저런 문제가 발생하여 아무것도 하기 힘들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각 학교마다 특색과 지향점을 가져 신입생들로 하여금 고등학교 선택을 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올바른 고등학교 모습이지만, 그런 특색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도 제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가 적어도 수업 중 자는 학생을 억제한다는 원칙을 확립하고 지역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학교 홈피에 올린 대문사진 중 하나입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학생은 실제로 나머지 공부를 한 학생이 아니라 학생회 임원들에게 부탁하여 촬영한 사진입니다. 나머지공부 학생이 많은 날 학교 홈피에 올릴 사진을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찍자고 부탁했더니 당당하게 거절하더군요. 쩝! 요즘은 교장하기 힘듭니다! 달리 생각하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요즘 학생들의 매력적인 모습이기도 하지요.
저는 매년 신입생 등록 시 맨 먼저 등록하는 학생 4명 정도를 교장실로 불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본교를 지원한 이유와 본교에 바라는 바 등을 묻는 것이지요. 면담자의 절반 이상은 나머지공부 사진과 휴대폰을 걷는 사진을 보고 본교에 지원했다고 하더군요. 홈피로 보는 학교 정책이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학습 분위기가 좋고 지도를 잘해주는 학교라는 판단으로 본교를 지원했다 하더군요.
이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면 좋은 학생들이 본교에만 몰리고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들이 주변 학교로 가게 하는 이기적인 홍보라 하는 분도 있더군요. 헐...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수용하기 힘들더군요! 인근 학교도 각각 알아서 어떤 정책 결정을 하고 신입생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겨야 하는 것이 아닐런지요. 주위 친구들이 열등감이 빠질까봐 자신의 매력을 가꾸는 것을 마다하는 사람이 있을런지요? 그저 위선과 핑계일 뿐입니다!
서울에는 학교선택제라는 제도가 실시 중입니다. 고등학교를 지원할 때 본인이 가고 싶은 학교를 순위를 정하여 신청하는 제도입니다. 취지는 학교마다의 교풍이나 특색을 보고 학생이 선택하도록 하고자 하는 제도입니다. 현실은 인근 고등학교 중 어떤 학교가 대학 진학을 더 잘 시키느냐의 차이로 학교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일반계고등학교마다 특색있는 교풍을 만들고 학교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역에서 선택을 받도록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학교 입장에서는 이런 제도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것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가 제도로서의 학교에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