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진로멘토링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을 지켜보다 보면 갑갑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학생들이 철이 들어 생활 태도도 바꾸고 미래에 대한 준비도 했으면 하는데, 아무리 얘기해도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어서요. 특히, 무력해 보이는 학생들은 어떤 설득과 훈육도 먹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하긴,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도 잘 바뀌지 않으니 학생들만 뭐라 할 일은 아니지요.
교육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의 교육활동은 ′가치에 대한 방향성, 인위적인 의도성′ 측면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위적인 의도성′을 생각하는 것은 학생 스스로 각성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무언가 교사와 학교로서의 책무를 방기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점 때문입니다. 국가의 책무 중 교육을 맡은 교사와 학교는 학생들이 좀 더 빨리 그리고 깊이 각성하기를 조장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교육권 일부를 국가에 위탁하고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서의 학부모의 요구도 그렇지 않을는지요.
제가 관찰하기에 학생의 각성을 조장하는 계기는, 이성 친구에게 차이거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경우가 그나마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합니다. 앞의 경우는 학교와 교사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여기서는 진로에 대한 고민과 탐색이 학생들을 급속히 변화시키는 활동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바로 ′진로멘토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교장이 되어 학교의 진로교육을 살펴보았습니다. 당시에는 진로활동을 생기부에 기재했는데, 진로교과가 있는 1학년은 그나마 활동기록이 채워져 있지만 진로교과가 없는 2학년은 기록 자체가 아주 적고 빈약했습니다. 1학년 기록 또한 독특한 내용이 적어 진학에 어필하지 못할 것 같더군요. 학교는 이미 몇몇 진로체험활동을 안배해 두었지만, 그 내용이 부족하다고 느껴졌습니다. 대부분의 학교가 그런 것처럼, 직업인을 불러 진로특강을 하거나 학교 밖 진로체험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으니까요.
초중고별로 진로활동이 위계화되어 학교급에 어울리는 진로지원활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때 방문했던 진로체험기관을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도 방문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중요한 기관이라 또 방문하나! 고등학교에서는 수동적인 진로지원활동을 뛰어넘는 보다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진로활동을 조직하고 싶었습니다.
진로멘토링은 활동 참여 희망자를 대상으로 장래의 희망 직업을 조사한 후, 온라인 등을 통하여 해당 직업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제출하게 합니다. 제출된 희망 직업을 바탕으로 유사한 직업을 모은 다음, 해당 직업인을 멘토로 모시는 추천 작업을 합니다. 멘토가 학교에 와서 멘티 학생들을 모아 직업에 대한 특강을 1시간 정도 실시합니다. 그 후에는 학생이 멘토의 직장을 방문하여 실제 직업 현장을 살펴보고, 멘토와 멘티 간 심층적인 얘기를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1단계 멘티 모집 및 조사보고서 제출, 2단계 멘토 섭외 및 특강, 3단계 직업 현장 방문으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입니다.
독자 중에는 멋진 프로그램 같은데, 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실시하지 않고 희망자만 대상자로 하는 것에 대하여 의아해할 분도 있을 것 같네요. 전체를 대상으로 실시하면 프로그램의 질이 떨어지고 업무를 추진하는 분도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학교에 부과된 의무도 아니고요. 자발성을 기반으로 하여 진행하는 진로멘토링의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참가자는 사전에 희망 직업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특강과 직업 현장 방문 후에는 보고서를 제출하게 했는데, 이 모든 걸 완수한 학생에 대하여만 생기부에 활동내용을 기재해 주었습니다. 학생의 입시를 위해 일부 누락자를 선처해 주자는 의견과 민원이 있었지만, 눈을 꽉 감고 버텼습니다.
오른쪽은 둘째 해에 실시한 진로멘토링에 신청한 학생들의 희망 직업입니다. 첫해 실시에서 희망 직업을 받아보니 공무원(교사 포함) 희망자가 절반 가까이 되어,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좀 더 도전적인 직업을 희망해 보라고 설득했더니, 둘째 해에는 그래도 다양한 직업군이 등장하더군요. 문제는 이런 직업을 가진 분들을 섭외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단은 본교 선생님들께 주위 친척 동창 지인 중에서 찾아보도록 부탁을 드렸습니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는데, 표에 있는 대부분의 직업인을 추천하더군요. 선생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동안 선생님들께 늘 무언가를 하라고 요구만 하여 불만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이란 생각으로 적극 협조하는 모습에 많이 감동했습니다. 그래도 기관사와 식품연구원은 추천되지 않더군요. 찾기에는 난이도가 좀 있는 작업군이죠! 제가 직접 나섰습니다. 철도고를 나온 초교 동창을 통해 KTX 기장을 찾고, 제 고등학교 동창회에 부탁하여 식품연구원에 근무하는 후배를 찾았습니다. 다른 회에서 말하겠지만 우리 사회에는 교육에 대하여는 기꺼이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도우려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성실하고 예의 있게 멘토를 대할 것인지, 방문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없을 것인지 등등... 원래 나이가 들면 걱정이 많아지나 봅니다. 그래도 멘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런 메일을 받으면 간단하게라도 답신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런 분은 없더군요. 사람들이 멋대가리가 없어요! ㅠㅠㅠ...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가 소개한 KTX 기장님은 멘티 학생을 부산까지 태우고 가서 씨앗호떡도 사주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하더군요. 이 학생은 이 과정에 너무 감격하여 친구들에게 진로멘토링을 선전하고 아울러 ′우리 교장선생님 최고야!′라고 광고하더군요. 물론, 이런 걸 계산하고 멘토를 추천한 것은 아닙니다! 진짜로!
다른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진로멘토링은 아니지만 진로와 관련한 여러 지원을 했습니다. 본교에는 항공승무원과로 진학하는 여학생이 매년 5명 정도가 되어 자율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더군요. 동아리 멤버는 키도 크고 표정도 밝은 여학생들이었습니다. 예쁜 여학생이란 말을 이렇게 표현하네요! 기특하게 생각하여 제가 아는 항공승무원 출신 교수분을 학교로 모셔 특강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울퉁불퉁한 남학생 여러 명이 교장실로 와서 자기들은 직업군인이 되려 하는데, 저기들도 도와달라 하더군요. 육군 모병단에 연락하여 ○○○원사님을 모셔 특강도 듣고, 제가 지도교사를 맡아 자율동아리 무명(武命, 이름이 멋있지 않나요!)을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일주일 중 하루는 체력훈련을, 하루는 상식공부를 하도록 했습니다. 부사관 시험 내용이라더군요.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독후감을 내는 것이 가입 조건이었습니다. 2년 후에 동아리 학생 중에 육사 1명, 해사 1명, 부사관학교 2명이 합격했습니다. 멋진 녀석들입니다!
좀 더 나간 에피소드도 소개하지요. 항공운항과도 진학 난이도에서 서열이 있다고 합니다. 이 분야의 서울대라 하는 I대 항공운항과에 합격하는 학생은 없더군요.(이런 곳이 분야마다 있나 봅니다. 예를 들어, 자전거교실 분야의 서울대는 올림픽공원 자전거교실이라 하더군요!). 두 번째 근무교에서 I대 항공운항과에 합격한 여학생이 있어 교장실로 불렀습니다. 이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아... 이래서 이 학생이 합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아함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이 후배들을 위해 모교를 방문하여 후배들을 돕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요 녀석이 약속을 지키나 모르겠습니다!
이제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교사의 학교밖 사회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로멘토링을 하면서 부수적인 목표로써, 선생님들이 다른 직업인을 접촉하고 얘기를 나누는 기회를 갖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멘토를 추천하면, 나중에 그분께 감사 의미로 식사라도 한번 사야 할 테니, 그 기회에 멘토의 직업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을 거라 기대해서요. 이런 얘기를 하면 학교장인 당신이 식사비를 내줄 것도 아니면서 그런 얘기를 하냐고 저를 타박할 분도 있을 것 같네요. 음... 학교장이라 하여 봉급이 더 많지는 않아요! 숨은 목적으로는 일반사회의 멘토들이 선생님의 부탁으로 멘토링 활동을 하게 되면, 학교와 교사의 열의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하여 좀 더 우호적인 생각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가져보았습니다.
교직사회는 지나치게 호모지니어스 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선생님이 된 분들 대부분이 중산층 가정 출신이고,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굉장히 잘한 분들입니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범대 출신인데, 수학교육과 동기 35명 중에 서울 출신은 7명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다들 공부 꽤나 하는 촌출이더군요. 저는 그냥 촌출이구요!
이게 왜 문제일 수 있다고 생각하냐 하면, 하나는 계층적으로 다양한 출신의 학생에 대한 대응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상류층 학생에 대하여는 막연한 불편함이 있고, 어려운 가정 학생의 생활과 태도에 대하여는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나이가 들면서 친구집단으로부터 고립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도 못하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 성공하여, 동창 모임에 나와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여 모임을 회피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냐고요? 아닙니다! 전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한 학생도 아니었고, 성공한 친구들의 자랑을 순수한 마음으로 듣는다니까요! 공짜로 먹는 술이 더 달콤하기도 하구요!
교직에서 교수의 안식년과 같은 제도를 갈망하는 분이 많습니다. 저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사람입니다. 학습연구년이나 고용휴직 같은 제도가 있지만, 제도적으로 다른 직업을 1년 정도 경험해 보려는 교사들에 대한 지원제도가 확립되었으면 합니다. 해가 갈수록 선생님들끼리만 대화하다 보면 사회 변화에 둔감하게 되고, 세상의 변화에 무지하면서도 교육활동에서 현실에 맞지 않는 훈화를 하게 되기 쉽습니다. 저 자신도 교직생활이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위험성을 느껴, 학생들에게 어떤 조언이나 훈계를 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더군요.
교사라는 직업은 끊임없는 연찬이 필요한 직업입니다. 교과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세상의 변화에 대하여도 상시적인 관찰, 판단 그리고 교직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는지요. 기존의 지식과 신념에 기반하여 세상을 향한 비판을 하는 행위는, 자칫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것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학생들에게 올바르지 않은 세계관을 심어줄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교직은 힘들면서도 위험한 직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