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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형학교

2화 -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독서

교장 3년 차쯤이 되고 더 이상 학교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겨울방학 내내 학교에 나오다 보니 학교프로그램에 대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되더군요. 아이디어가 때로는 잉여시간의 산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학생들을 위한 여러 학교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학생들의 신념이나 태도를 바꾸기 위한 프로그램으로는 무엇이 있었나?’      


그동안 실시한 많은 프로그램이 대학입시나 지적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지만, 정작 살아가면서 더 중요하고 오랜 기간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생의 가치관과 신념 그리고 태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본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라면 평생 지향할 가치와 성향을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자유에 대한 지향입니다!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독서」는 재학 중에 6권의 추천도서를 읽고 독후감을 쓰며 친구들과 온‧오프라인 독서 후활동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학교는 6권의 추천도서를 지정하여 1권은 입학 전에 입학생 전원이 읽도록 하고, 5권은 입학 후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을 신청한 학생들에게 지정도서를 읽도록 합니다.      


입학 전 읽어야 할 책으로는 ‘총, 균, 쇠’를 정해주고 입학식 날 2쪽 내외의 독후감을 제출하도록 했습니다. 담임선생님들로부터 신입생 전체 독후감을 받아보니 200명 신입생 중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독후감을 제출했더군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 숙제를 내주는 제 모습이 상당히 무서웠나 봅니다! 물론 신입생 대신 다른 사람이 써주거나 타인의 독후감을 베껴 쓴 학생도 있겠지만 전체 신입생이 독후감을 제출했다는 사실에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신입생들도 놀라더군요. 이런 일이 있으면 선생님들은 교육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키우는 계기가 되고 학생들도 학교와 친구들에 대한 집단적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학년 초에 1년간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에 참여할 학생을 모집해 보니 40명 정도가 지원하였고, 1년 동안 빠짐없이 참여한 학생은 15명 정도인데, 이는 다른 학교프로그램보다 이수비율이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아마도 학업에 바쁜 학생들에게 2달에 1권의 벽돌책(두꺼운 책을 일컫는 학생들 표현이더군요.)을 읽고, 그 독후감을 학교 홈피의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독서」 폴더에 업로드하고, 지정된 날에 시청각실에 모여 독후감과는 별도의 책을 읽은 소감을 발표하는 독후발표회 등의 과정이 힘들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학생들이 홈피에 올린 독후감을 읽어보고 독후발표회에서 발표하는 내용을 듣다 보면 학생들의 생각이 다양하고 글을 이해하는 수준에 큰 차이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잘 썼다고 판단한 홈피의 독후감에는 열람 횟수가 많이 달리는 것을 보면 학생들도 누가 똑똑하고 독후감을 잘 쓰는지를 아는 것 같습니다.(물론 잘생긴 학생의 독후감에 열림 횟수가 많이 달리는 경향도 좀 있는 것 같더군요!)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독서」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 측면도 고민을 했습니다. 추천도서 각각을 30권씩 구입하여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서재」라는 이름의 미니 서고에 책들을 꽂아 시각적 아름다움도 갖추고자 했습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삼성역 별마당도서관을 보고 생각한 것입니다.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서재」 옆에 있는 부분 옥상을 개방하고 그 바깥 벽에 「자유인의 벽」이라는 낙서공간을 마련하여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가끔 학교 운영 관련 낙서가 있으면 제가 답변을 달았습니다. 자유인의 벽 옆에는 그늘막과 해먹을 설치하여 석양을 보며 해먹에 누워 이런저런 공상을 하던가 책을 읽도록 했습니다. 해먹에서 책을 펼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학교가 학생의 정서 함양을 위해 잘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지고 그 학생이 멋지게 살 것 같다는 기대를 해보곤 했습니다.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독서」의 추천도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호모 데우스(유발 하라리)

청소년을 위한 미래교과서(김용섭 외)

그리스인 이야기 1, 2, 3(시오노 나나미)

교양 있는 대화를 위한 과학(전승준 외)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막스 베버)


책의 내용이 다소 어렵지요. 어떤 책은 저도 두 번 정도 읽고 나서야 어느 정도 이해했다 생각했으니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한글로 되어 있으니 읽을 수 있다 생각하며, 책을 읽으며 일부 내용이라도 이해한다면 나중에라도 깨닫는 바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합니다.     


처음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자유인의 독서」였고 두 번째 근무교에서 프로그램 이름을 「미래와 자유인을 위한 독서」로 정하였습니다. 미래라는 용어를 넣고 추천도서 중에 미래 세계에 대한 전망을 말하는 책과 과학 상식에 대한 책을 포함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유인의 품성을 기르는데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과학 리터러시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고, 둘은 「자유인의 독서」프로그램에 대하여 은근히 불편해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자유주의자이고 이 신념과 가치에 제 모든 걸 걸려고 생각하며 삽니다. 자유 자체를 백안시하는 사람은 없지만, 역사상에 나타난 자유주의적 가치체계에 대하여는 비판의식을 가진 분들이 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첫 교장 학교에서 추천도서는 10권이었는데, 이 책들을 정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역사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열린 태도를 보여주는 책이면서 인간의 존엄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는 책을 선정하고자 했습니다. 주위에 이런 취지로 책을 추천하도록 부탁하는 등의 활동을 거쳐 10권 추천도서 중 6권은 제가 읽은 책들 중에서 정하고 나머지 4권은 이리저리 추천을 받은 책들 중에서 정했습니다.     


추천도서 확정 후에 제가 읽지 않고 추천을 받아 정한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책은 이 책이 자유에 대한 지향을 갖는 책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유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정 책은 정말 엉터리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일단은 제가 지식이 부족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음을 인정하지만, 섣부른 번역이라는 판단이 드는 문장과 인용부호 등을 보며 번역자가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저도 그런 부담감을 느끼고 있지만 어떤 것이든 자기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은 그 분야에 대한 능력을 갖추고 좀 더 책임감 있게 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유′와 ‵학교에서 자유를 대하는 풍토′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저는 한 개인을 중심으로 두고 생각할 때, 자유가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속박도 받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이상적인 삶이겠지요. 다만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닌 만큼 내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도록 절제하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방어하기 위하여 일정 부분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동의합니다. 이러한 소박한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개인적 경험은 물론이고 역사적 사례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지만, 개인의 삶과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와 가치로 자유보다 더 나은 그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는지요?                                          


아래 사진은 학교 현관에 배치한 향초식물 사진입니다. 학교에 들어설 때 기분 좋은 향을 맡을 수 있도록 향 발생기를 설치하려 했더니, 학교구성원들이 화학향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향초식물을 화분에 심어 6그루를 배치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향초식물을 살펴보니 그림처럼 벽 쪽이 아닌 빈 공간 쪽으로 줄기가 기울어져 있음을 관찰했습니다. 빛 또는 수분에 따라 식물이 휘어져 자리는 굴광성 또는 굴수성은 생물 시간에 배웠지만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그저 빈 공간을 향하는 속성도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왕릉에 가보면 소나무가 분묘를 향해  기울어져 자라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런 현상은 소나무가 왕의 무덤에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소나무가 없는 빈 공간을 향하는 소나무의 특성이라 하더군요. 식물도 이러할진대 사람이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펼쳐나가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향초식물 화분을 돌려놓아 벽 방향으로 기울어진 부분을 향하게 하고 몇 주 후에 보면 다시 빈 공간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나무에게도 자유를 향한 의지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다만, 학교라는 기관은 대체로 학생들의 행동과 태도에 대해 어떤 방향은 통제하고 어떤 방향은 지향하도록 강요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사회학에서 군대 교도소와 함께 학교는 규범적 조직으로서 이런 강요를 하는 특성이 있다 합니다. 저도 그렇지만 선생님들도 너무 쉽게 학생들의 행동에 제한을 가하고 금지사항을 만드는 습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특히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학생의 동의 내지는 양해도 없이 많은 규정과 지시가 이루어짐을 보곤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걱정이 많은 선생님들이 임의로 붙이는 코로나 방역 관련 경고문이나 설득문 중 심하다 싶은 것을 교장으로서 떼어내 보아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경고문이 붙는 것을 보며 개인의 자유와 자율에 대하여 학교가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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