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고시 대신 교육행정고시를 선택한 도화의 이야기
도화(가명)
서울교육대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재학 중
5급 교육행정직(행정고시) 준비 중
인스타그램에 모 예능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스토리를 올린 적이 있다. 덕분에 대학 후배 도화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프로그램 얘기로 시작한 대화는 서로의 근황으로 주제가 옮겨갔고 나는 그녀가 임용고시 대신 행정고시를 준비한다는 소식을 알게 됐다.
행정고시는 굉장히 어려운 시험 아닌가. 물론 내가 아는 도화라면 당차고 똑똑해서 뭐든 잘하고도 남겠지만, 바늘구멍 같은 시험에 붙기 위해 오랫동안 공부하는 게 버겁진 않을까 걱정됐다.
내가 임용고시 공부할 때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동기를 잃어버렸을 때였다.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해도 모자랄 시간에 이따금 ‘합격하면 뭐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럴 때면 다시 펜을 잡기가 어려워졌다. 나를 다잡기 위해선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이런저런 미래를 그리며 계속할 이유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1년을 버텼다.
도화는 벌써 3년 동안 행정고시를 공부했다. 합격자 평균 5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이 시험에서 도화는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을까? 도화의 확신은 언제부터,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했다.
교대에서 얻은 소중한 자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교대 졸업 후 2년 간 행정고시 공부를 하다가 올해 3월 서울대학교 행정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도화(가명)라고 합니다.
국제고등학교를 졸업하셨는데, 어렸을 때 원래 장래 희망이 뭐였나요?
외교관이 꿈이었어요. 아버지께서 직업 특성상 국제회의를 자주 다니셨는데 한국에 올 때마다 “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엄청 많다. 외국에 나가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그리고 그때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화제였잖아요(웃음). 그래서 자연스레 외교, 행정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국제고도 그런 이유에서 진학했던 거고요.
그럼 어떻게 교대를 입학하게 됐나요?
고3 현역 때는 전부 외교학과로 수시 지원을 했어요. 근데 다 떨어져서 재수를 하게 됐죠. 재수할 때 고등학교 선생님이랑 수시 상담을 하는데 최근에 서울교대에서 대학 홍보를 하러 왔다는 거예요. 주로 ‘졸업 후 가능한 진로가 여러 길이다’, ‘교사 외에 장학사나 행정가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홍보를 했대요. 그 얘길 듣고 수시 한 장을 서울교대에 넣었어요. 교사를 희망한 건 아니었지만 교육을 배워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요.
국제고 특성에 맞춘 홍보를 하려다 보니 그런 내용을 강조했나 보네요. 실제로 서울교대 졸업 후 로스쿨을 가거나 행정고시를 치는 사람도 있죠. 그렇지만 사실 교대 커리큘럼 자체는 초등교사 양성에 집중되어 있는데, 입학 후 아쉽진 않았나요?
아쉬웠죠. 사실 중학생 때부터 계속 외교관이나 행정가를 꿈꿨으니까요. 물론 교대 졸업 후 여러 길이 있긴 하지만 학부 때 배우는 내용은 전혀 다르잖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과목을 공부해야 하니까 적응하는 데 1년 넘게 걸렸어요.
근데 학교 자체는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왜냐하면 경쟁이 심하지 않아서요.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다 입학시험이 있는 학교를 가서 10대 내내 치열하게 살았는데 교대는 학점에 대한 압박이 적고 사람들도 서로 오순도순 도와주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교대에서 배운 것도 많아요. 아무래도 교육이라는 게 사람을 다루는 학문이잖아요. 그런 학문이 은근히 별로 없어요. 실습 가고, 교육봉사 하면서 사람 대하는 걸 알게 됐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됐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제 위주로 살았거든요.
초등교사가 사람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직업이긴 하죠. 인간의 심리, 관계, 성장, 갈등까지요.
거의 인류학자죠(웃음). 나중엔 관상도 보잖아요(웃음). 그게 매력이에요. 저한테는 필요했어요. 그전까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교대 생활이 분명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을 바꾸는 사람
그럼 교육학을 공부하면서도 임용고시를 치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건가요?
네. 초등교사를 할 생각은 없었고 제 전공과 외교, 행정 분야를 연계하는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했어요. 그래서 국제 교육, 교육 행정 쪽으로 계속 팠던 것 같아요. 당시 서울교대가 유니세프랑 업무협약(MOU) 맺어서 만든 동아리가 있었어요. 거기 들어가서 아동권리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고요. 세계시민교육이나 지속가능발전교육에 대해 찾아보기도 하고, 뭔가 계속 길을 찾았어요.
그러다 4학년이 되고 진지하게 진로를 생각해야 했죠. 찾아보다가 행정직군 중에 교육행정직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행정가면서 동시에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교육부에 들어가는 걸 목표로 혼자 공부하고, 학원 다니면서 5급 공채 시험 준비를 시작했어요.
동기들과 다른 길을 가는 건데 외롭거나 불안하진 않으셨나요?
불안했죠. 거의 모두가 임용고시를 보는데 나만 안 본다는 게. 씩씩하게 학원 다니면서도 속으로는 ‘괜찮을까? 행시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러면서 망설였어요.
근데 돌이켜보면 저는 항상 뭔가 도전하면서 살았거든요. 초등학교를 경기도 변두리 지역에서 다녔는데 시험 봐서 특목중학교에 입학하고, 그 다음엔 국제고 입시 준비했고요. 어려워도 ‘이게 내 길이겠거니’ 하면서 부딪히는 게 익숙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선택한 거잖아요. 제가 원해서 공부하는 거니까 괜찮았어요.
중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같은 꿈을 바라보고 계시네요. 행정 쪽에 대해 계속 관심을 두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일단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전문성이랑 영향력이요. 물론 교사도 전문성이 필요하고,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직업이에요. 근데 저는 체계를 바꾸는 일을 하고 싶어요.
위로부터의 변화를 꿈꾸시는 거군요. 행정고시 공부 시작할 때는 어땠어요? 교육행정직 시험에 교육학이 나온다고는 하는데, 나머지는 우리가 학부 때 배워본 적이 없는 내용이라 어려울 것 같아요.
처음 2년 동안은 깨진 항아리에 물을 쏟아붓는 느낌이었죠. 다른 사람들은 경제학과나 행정학과를 전공했거나,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교양수업으로 한 번쯤 접해본 내용일 거예요. 근데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제학 그래프를 봤거든요(웃음). 어떤 학자가 있는 것도 처음 들었어요.
공백을 따라잡으려고 그동안 사람도 안 만나고, SNS도 안 하고, 집-학원만 반복하면서 살았어요. 그렇게 하니까 기본적인 내용은 어느 정도 채워졌는데 제 시야가 좁아지더라고요. 혼자 갇혀서 공부만 하니까 시험에 붙거나 떨어지는 일이 오직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근데 저는 그걸 되게 경계하는 편이에요. 시야가 좁아진다는 건 세상이 좁아진다는 거잖아요. 그럴 때는 환경을 바꿔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갔죠.
행정학으로 본 교육계 문제
행정학과 대학원 준비는 얼마나 하셨나요?
2주 정도 걸렸어요.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중이었으니까 시험공부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자기소개서 쓰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대학원에 왜 들어가고 싶은지를 증명하는 게 관건이었죠. 덕분에 저도 대학원에 왜 가고 싶은지, 가서 뭘 할 건지 깊이 생각해봤어요.
어떤 식으로 풀어냈나요?
작년에 한창 교권 침해 문제가 심각했잖아요. 저는 그걸 행정학의 관점으로 해석해서 자기소개서에 녹여냈어요. 행정학에 ‘정부 신뢰’라는 개념이 있거든요. 저는 서이초 사건 같은 일이 국민이 공교육을 신뢰하지 못해서 생긴다고 봤어요.
(도화의 자기소개서를 보며)공교육을 국민이 믿지 않는다, 행정학을 공부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내용이네요. 이걸 읽는데 왜 눈물이 나죠?
그게 제가 교육 행정을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공교육도 국가 업무 중 하나잖아요. 작년 사태를 지켜보면서 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교육 현장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제가 교대 다니면서 본 친구들은 한 명 한 명 너무나 능력 있고, 되게 열심히 일하거든요. 이 친구들이 설마 학교에 가서 막 가르칠 리는 없잖아요. 근데 그들이 민원으로 고통받으니까 의문이 들더라고요. 왜 그럴까? 다들 진짜 열심히 하는데 왜 학부모들은 이걸 믿지 않을까? 왜 자꾸 의심하고, 비난하고, 폭언할까?
신뢰가 없어서 그렇군요. 어떻게 해야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요?
정부 신뢰가 교육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중요한 주제인데요. 이론적으로는 참여를 좀 더 확장하고, 소통을 많이 해야 신뢰도가 높아져요.
내가 직접 참여해야 믿을 수 있다?
그렇죠. 눈으로 확인하고, 내가 참여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믿게 되는 거죠. 근데 그건 시스템을 바꿔야 해요.
그동안은 문제의 원인을 교사 개인에게서만 찾는 경우가 많았죠. 그런데 제가 본 선생님들은 수업의 퀄리티나 학부모 소통 측면에서 이미 최선을 다하고 계셨거든요. 그럼 이제 바뀌어야 할 건 체계인 거예요. 그래서 이 시스템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듣다 보니 떠오르는 게 있어요. 바로 급식 모니터링이에요. 이게 뭐냐면 급식실에 대한 학부모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 학급 당 학부모 한 분씩 급식실을 보러 오시는 거예요. 근데 사실 다들 꺼리세요. 학부모총회 때 간곡하게 “손 들어주세요.” 부탁드리면 마지못해 한 분께서 손을 드시더라고요.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행정 이론에 의해 어떤 제도를 만들어서 학교에 보내는데요. 이 제도가 학교에 부담이 되는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어 말씀하신 정부 신뢰를 높이기 위해 학부모 참여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이게 오히려 교사와 학부모 둘 다에게 일의 가중이 되는 거죠.
그리고 종종 참여와 소통은 원치 않으면서 비난만 하는 학부모님도 계시거든요. 이런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걸 행정학에서 '정책 오차'라고 해요. 저도 고민해 봤어요. 왜 자꾸 정책과 현장이 연결이 안 될까? 저는 그게 교육 현장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정책을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실제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거죠.
그래서 더더욱 교대 출신, 교사 출신 행정가가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끔 서울교대에 행정고시 합격한 선배들 현수막이 붙잖아요. 이분들은 최소한 실습도 나가봤고, 궁금하면 언제든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이렇게 교사와의 연결 창구가 있는 사람들이 교육부에 더 많이 가서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 해당 인터뷰 전문은 책 <교대 나와서 교사 안 하면 뭐 먹고살지?>에 있습니다.
책에는 다른 분들의 인터뷰와 저의 에세이도 실려 있습니다.
- 책 소개 링크
https://gamy-philosophy-ccf.notion.site/1bd708c22b8180b2bfa3fbdfec44f5c8?pvs=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