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어 연수의 머나먼 길2
나는 수도권민이다. 경기도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시절 이후 오롯이 서울에만 기거하던 이른바 서울 촌년이다. 사람이란 각자가 경험하고 수집한 생각들로 각자의 세계를 구성하기 마련이다. 지독한 경우에 고정관념이라고 하고 흔히 인지방식이라고 여기는 개인적인 사고의 구성 체계가 바로 그 세계인데, 내게는 보편적인 사용어가 당연히 ’한국어‘에 ’표준어‘였던 것이 직장생활에 대한 기본적인 인지방식이었다. 아니, ‘인지’라고 할만한 것이 아니었다. 타 지역의 사투리와 단어, 억양이 특수한 것이었고 그냥 음식의 맛 같은 거랄까. 평소에는 전혀 ’인지‘하기 못하다가 다른 것을 마주하였을 때나 겨우 ’인식‘하게 되는 정도인 것이 언어 아닐까? 갑자기 글 초반부터 ’인지’니 ‘인식’이니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용어들을 늘어놓아 죄송합니다만, 우물 안 개구리가 어느 날 두레박에 실려나와 바깥 세상을 마주하였을 때의 기분 같은 것이었다. 생활 속에서 ‘제주어’를 경험한다는 것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제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겠다고 내려올 때는 사실 일한다는 것 자체에는 큰 걱정이 없었다. 서울에서의 경력을 연봉에 일부 반영하긴 했지만, 어쨌든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케이스였고, 그동안의 경험이 어느정도는 새로운 곳에서 구제해 주는 버팀목이 되지 않겠느냐는 조금은 당당하면서도 안이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간과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제주어’.
제주에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뭘 했겠는가? 그는 나와 있을 때는 서울 말씨를 쓰는 다른 지방 사람이었고, 친구들과 여행을 할 때 마주치는 것은 호텔 직원 분들과 식당 분들, 물건을 파시는 분들 뿐이었다. ‘앗, 이거 진짜 무슨 말이지?’ 라고 할 만한 경험은 손에 꼽을 지경이다. 바닷가에서 해녀 할망에게 소라회니 해삼이니 하는 것들을 사 먹었을 때, 식당에서 밥먹다가 제주 분들끼리 서로 말씀하시는 걸 들었을 때, 관광객들을 위한 간판에 써있는 ‘폭삭 속았수다.’를 보았을 때. (친구와 저 ‘폭삭 속았수다.’가 ‘너네 잔뜩 속았지? 약오르지?’ 그 뜻 아니냐고 대체 무슨 뜻인지 몰라 각자의 추리를 펼치며 배꼽잡고 웃었던 적이 있더랬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라도, 그냥 대충 ‘느낌’과 ‘눈치’라는 제 3의 감각으로 넘어갔었다. 마치 파리에 가서 불어 따윈 전혀 할 지 몰라도 웨이터에게 음식을 주문하고 값을 치르듯이.
그래서, 정말이지 한 9개월은 어학 연수를 온 기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도 강의를 해주지 않는 ‘실전 어학 연수’. 오로지 눈치와 코치로 문장의 행방과 기분을 알아차려야 했는데, 대부분의 직원들은 배려인지 원래 그런건지는 몰라도 대부분 표준어 95%에 어쩌다 5%의 제주어를 구사하고는 했다. 문제는 앞 뒤로 두껍고 거대한 몸집을 지닌 ‘부‘씨 성의 차장님 되시겠다.
이 분은 서귀포 분이시다. 알고보면 의외의 매력이 많은 이른바 ‘츤데레’ 인간형의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 때는 이 분에 대한 경험치가 많지 않았을 때라 늘 제주어를 구사하시는 괄괄하고 툴한 목소리에 놀라고 조심스러워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미간 사이에 살짝 힘을 넣고, ‘~꽈?, ~우다게.’와 같은 말로 끝나는 문장도 문장이지만, 화를 내는 건지 소리를 지르는 건지 알 수 없는 성량과 억양은 어쩐지 잘못한 것이 없어도 눈치를 보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그래도 참고하라며 친히 출력해 주시는 문서(크고 투박한 손으로 내 책상에 퉁퉁 올려지긴 했지만)와 가끔 ‘이거 먹어라!’ 하면서 던져주시는 간식으로 보았을 때 악인은 아닐 것이라 막연히 추측 하는 정도였다.
그런 그가, 특히 전화만 하면 늘 상대방이 “아니 왜 화를 내세요?”라고 반응하는게 일상다반사인 우리 차장님에게서 어느 날 정말 예상치도 않은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친구 분인지 아내 분인지 그 분이 통화하는 것을 업무의 배경음악으로 듣고 있던 그날,
“응. 그거 햄쪄.“
엥? 뭐라구여? “쪄?“ ”쪄?“ ”쪄?“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내가 잘못들은 것이라 애써 외면하며 계속 문서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기억 왜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알아쪄~“로 끝나는 차장님의 대화. 중간에는 당연히 아내 분일 것이라 생각했다. ‘어멍~ 애교가 많으시잖아?’ 그러나 그 순간 성능 좋은 핸드폰 밖으로 울리는 상대의 목소리… 그것은 왜곡 불가능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충격이었다. ‘세상에… 제주도는 생각보다 개방적인가? 아내 분은 이 사실을 아시나? 와… 성적 정체성과 취향은 존중해야 하니까. 근데, 아니 그걸 직장에서 이렇게 티를 낸다고? 그리고 다들 아무렇지 않다고? 나만 이상하다고?’ 지금까지 이런 충격은 없었다. 두둥… 사랑과 전쟁보다도 더 극한의 뉴 밀레니엄 버전의 충격이 두피를 촤르르 훑고 지나갔다. 동성과의 바람이 용인되는 사회라니, 대체 나는 앞으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걸까 나의 개방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안고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을 때였다.
타 부서에서 우리 차장님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머리가 희끗하신 남자 부장님께서 오셔서 전화를 하시는데 “쪄~ 쪄~”의 어미가 여전히 들리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서 동기 들 중 제주 출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여기는 동성애에 꽤 관대한 편인가봐? 아니면 그냥 친한 친구끼리는 애교를 잘 부리는 건가?”
“그게 뭔 말 누나?”
“아니, 우리 부차장님이 얼마 전에 남자분한테 전화하면서 ~햄쪄? 그래쪄~ 막 이러는 거야. 근데 우리 차장님만 그러는게 아니더라고, 전에 그 다른 부서 박부장님도…”
“엥? 그게 뭐, 이상하멘?”
“애교 부리는 거잖아. 자기야~ 나 이거 해쪄. 밥 먹어쪄. 자기는 밥 먹어쪄? 이럴 때 쓰는 말이라고!”
“뭔 소리? 그거 그냥 남자들끼리 친한 사람들한테 하는 완전 투박한 말투라. 와, 이 누나 기막히네.”
“뭐? 그게 어떻게 투박하냐? 나 요기 아파쪄. 보고싶었쪄. 이럴 때 쓰는 말이라고!!!!!!”
“와 진짜 오랜만에 나 눈물나게 웃엄쪄. 누나 잘도 웃기다이.“
그 이후로, 우리 부차장님에 대한 엄청난 오해는 풀렸고, 이 이야기를 부차장님께도 해드렸을 때 역시나 그는 호통인지 당황인지 모를 억양과 텐션으로 나를 약간 도른자 취급해 주셨으며, 제주 오리지널 분들과 제주어의 난이도에 대해 논할 때 마다 나는 꼭 이 에피소드를 덧붙인다. 그렇다고 아직 ”쪄“에 익숙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제주어, 도대체 이 연수의 끝은 언제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