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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Nov 18. 2024

B22. 인생을 걸고 총력을 기울여 작곡하다

  - 나성인, 《베토벤 아홉 개의 교향곡 – 자유와 환희를 노래하다》

B22. 인생을 걸고 총력을 기울여 작곡하다 / 《베토벤 아홉 개의 교향곡 – 자유와 환희를 노래하다》 - 나성인 지음, 한길사

   뭐니 뭐니 해도 베토벤 하면 역시 교향곡이지요.

   서른두 개의 피아노 소나타, 열여섯 개의 현악사중주, 다섯 개의 피아노 협주곡, 한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등등이 다 그 각각의 분야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솟아 있지만, 결국 베토벤은 교향곡 작곡가입니다. 적어도 저한테는요.

   아무리 그의 피아노 소나타가 좋고, 현악사중주가 감동적이고, 협주곡들이 눈부셔도 결국 베토벤은 교향곡입니다.

   다른 것은 빼더라도 다소 불만스러울지언정 여전히 베토벤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교향곡을 뺀다면 베토벤은 더 이상 베토벤이 아닐 것입니다.

   그만큼 교향곡은 베토벤의 중핵입니다.

   교향곡을 쓸 때 베토벤은 아마도 자기 에너지의 가장 많은 양을 쏟아부었을 것입니다. 그러니만큼 가장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했을 것이고요. 남길 힘이 없을 만큼요.

   그러니까 베토벤은 작곡가들이 ‘총력을 다해서’ 교향곡을 쓰는 시대를 열어젖힌 것입니다.

   베토벤 이후 그 누구도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처럼 많은 수의 교향곡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 그 반증입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아홉 개는 한 작곡가가 총력을 기울여 작곡에 임할 때 평생 써낼 수 있는 교향곡 수효의 한계선이 되었습니다.

   베를리오즈는 한 개, 슈베르트는 아홉 개(<미완성 교향곡>을 포함할 경우), 브루크너도 아홉 개, 말러도 아홉 개(<대지의 노래>를 포함하지 않을 경우), 드보르작도 아홉 개, 브람스는 네 개, 시벨리우스는 일곱 개(물론 그는 어느 시기 이후 스스로 작곡을 중단한 경우지만요), 차이코프스키는 여섯 개를 가까스로 작곡했지요.

   물론 예외적으로 쇼스타코비치는 기운을 내서 열다섯 개까지 쓰기는 했지만요.

   이는 결국 41개―60개라는 얘기도 있지요―를 쓴 모차르트나, 104개―최근에 발견된 것들과 몇몇 독특한 형식의 것들까지 포함하면 110개―를 쓴 하이든과는 ‘다른’ 태도로, 곧 ‘베토벤처럼’ 한 곡 한 곡에 인생을 걸고 최대치의 에너지를 쏟아부어 작곡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베토벤이 작곡한 아홉 개의 교향곡에 집중하는 책입니다. 이 점이 일련의 베토벤 전기나 평전 들과 이 책이 다른 점입니다.

   목차는 일목요연합니다.

   전체가 9개의 챕터로 되어 있는데, 그 각각이 베토벤의 9개의 교향곡에 그대로 대응됩니다.

   첫 번째인 챕터 1이 제1번 교향곡이고, 마지막인 챕터 9가 제9번 교향곡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책 전체가 기본적으로 베토벤 교향곡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글들로 채워져 있는 덕에 공감되는 바가 많아서 읽을 맛이 납니다.

   게다가 저자는 각 교향곡을 악장별로 전문 용어를 능숙하게 동원해 가면서 음악학적으로 상세한 해설을 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각 교향곡에 얽힌 작곡 배경에 더하여 베토벤의 개인사와 역사적인 배경까지, 여러 각도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들려주고 있어서 이 책이 음악이라는 한 분야를 넘어서는 폭넓은 교양서적의 구실도 넉넉히 한다고 여겨집니다.

   각각의 챕터 마지막 부분에서 ‘남은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본문에서 못다 한 해당 교향곡에 얽힌 흥미로운 다른 이야기를 덤으로 들려주고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독특한 점입니다.

   그리고 베토벤 하면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불멸의 여인’에 대한 이야기도 ‘불멸의 여인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일종의 부록처럼 덧붙여놓았는데, 상당히 논리적으로 깊이 있는 논의를 펼치고 있어서 저자의 지식과 안목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끝으로 베토벤 교향곡의 들어볼 만한 추천 음반을 소개해 놓았다는 점도 새로운 연주에 대한 정보로서 요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저자가 각각의 교향곡이 지닌 음악사적인 의의를 규정해 놓은 대목이 저한테는 매우 귀하게 다가왔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교향곡인 제3번 ‘영웅’을 이야기한 챕터의 끄트머리에서 저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이 같은 음악의 추상성이 어떤 자유를 허락해 주는지 베토벤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 말은 베토벤의 지인이었던 극작가 그릴파르처가 검열과 음악의 관계에 대하여 했던 말과 관련한 것이지만, 저한테는 ‘해방’의 아이콘인 나폴레옹과 프로메테우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자유’의 교향곡으로 규정되는 이 ‘영웅 교향곡’에 참 잘 들어맞는, 기억에 남을 말로 받아들여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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