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지니아 울프,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B23. 나만의 자그마한 기적 /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 - 버지니아 울프 산문선, 정소영 엮고 옮김, 온다프레스
지난여름, 우연히, 아주 우연히 속초 바닷가 근처 한 귀퉁이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한 책방에서, 역시 우연히, 아주 우연히 발견한, 아니, 만난, 만나버린 책 한 권―.
저는 이런 기회를 ‘나만의 자그마한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여행만이 나한테 줄 수 있는 고마운 기적―.
저한테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보다는 영화 〈디 아워스〉(2002, 스티븐 달드리)의 니콜 키드먼의 이미지로 더 깊게 각인되어 있는 작가입니다.
자기 옷주머니에 묵중한 돌덩이를 집어넣고―행여라도 다시 떠오르고 싶지 않다는 이 절절한 결기!―물 속으로 하염없이 걸어 들어가던 그 한없이 슬픈 이미지를 잊을 수가 없지요.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 아닌가》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아름답고 스마트한 산문들 가운데서도 진액에 해당하는 것들을 저자 나름의 시각에서 선별하여 모아놓은 책입니다.
소설이 아니라 산문인 만큼 버지니아 울프의 인간적인 면모가 훨씬 더 진솔한 모습으로 곳곳에 드러나 있습니다.
그래도 그가 작가인 이상 역시 ‘책 읽기’, 또는 ‘글쓰기’와 관련한 내용의 문장들이 가슴에 많이 와닿는 것은 속절없는 일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소설은 여성이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형식이다.’
‘남성에게 그랬듯이 여성에게도 문학은 공부할 만한 예술이 될 것이다.’
‘글쓰기의 관습이란 예절의 관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는 절대 혼자인 법이 없거든요. 늘 대중과 함께하니까요.’
‘대중이란 여행을 함께하는 낯선 동행입니다.’
‘작품은 독자와 작가 사이의 친밀하고 동등한 동맹관계에서 태어나는 건강한 자식이어야 합니다.’
‘충격을 수용하는 그런 능력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고백도 가슴을 깊이 울립니다.
‘어머니는 뒤편에 늘 자신만의 슬픔을 가지고 있었고 혼자 있을 때 마음 놓고 슬픔에 젖어들었다.’
책 자체에 대한 언급도 당연히 있습니다.
‘중고 책은 집 잃은 책, 길들지 않은 책이다.’
계절에 대한 문장도요.
‘겨울의 거리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야말로 다양한 것들에 대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다양한 생각과 정서의 결들을 느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의 책입니다.
이 책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의 올여름은 다만 ‘혹서(酷暑)’, 그것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