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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inema Aphorism_183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83

by 김정수

CA911. 아만다 김,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TV〉(2023)

제작·내레이션 스티븐 연. 그는 조국에서 가장 부패한 가정의 자손이어서 좌파가 될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마침내 아방가르드, 전위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거부한 것, 모든 것. 속을 드러내기 위해서 겉을 없애다. 엄혹한 냉전 시대의 초상. 존 케이지. 슈톡하우젠. 오노 요코. 커닝햄. 카스트로. 케네디. 이승만. 김일성. 전쟁. 분단. 아마 그가 이 땅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1951년쯤에 목숨을 잃었으리라는 고백. ‘대화야말로 민주주의’라는 명제. 명령과 복종, ‘그저 듣기’는 독재다. 그가 추구한 것은 구상도 아니지만, 추상은 더더욱 아니다. 시장성 없는 스타일로 자본주의에 저항하기. 아니, 엿 먹이기. 인류는 태양은 쳐다볼 수 없었지만, 달은 늘 쳐다보며 살았다. 따라서 달은, 달이야말로 TV다. 그는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 그를 만드는 것이다. 비디오가 얼마나 민주적인 매체인지에 대한 각성. 아직 그림이나 조각을 제외한 시각 매체가 예술의 지위를 얻지 못한 시대의 백남준. 난간의 개수를 집중해서 세는 동안에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없다. 자아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게 전근대다.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기계적인 작업에 대한 강요. 예술인가, 스캔들인가. 그는 자신의 에너지가 흐르는 방향을 파악하고, 그 흐름을 방해하지 않았다. 아니, 그 방향으로 질주했다. 완벽한 화면을 만드는 일과 그 화면을 일그러뜨리는 일. 기술과 예술의 차이. 전자의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만, 후자의 일을 하는 사람은 백남준뿐이다. 따라서 전자는 기술자고, 후자는 예술가다. 전쟁은 상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통찰. 문제는 이 무지가 자발적인 것이라는 데에 있다. 모든 예술가가 하나의 채널이 되는 세상. 그의 전망은 맞아떨어졌다. 과거의 유튜브. 미래의 예술. 전위적인 예술과 퇴행적인 삶은 양립이 가능한가? 퍼포먼스. 액션 페인팅. 야곱이 사기꾼의 기질을 버리고 현자로 거듭나는 과정. 예술품은 상품인가. 상품이 되지 못하는, 또는 상품 취급을 못 받는 예술품의 존재 이유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언급, 또는 논평. 논리적일 필요는 없다.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존재, 또는 개념. 굿모닝 미스터 오웰. 아브라모비치와 함께 이 영화의 제목을 정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례 없는 시도.


CA912. 이용주, 〈건축학개론〉(2012)

첫사랑은 어째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아니, 이 질문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첫사랑의 실패는 절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또는, 그 실패를 실패라고 부르는 우리의 언어습관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에 대한 새삼스러운 성찰이 필요한 것 아닌지. 실패야말로 진정한 성공인지, 그 누가 알겠는가. 세상에는 그런 것, 또는 그런 사태가 너무도 많지 않은가. 그가 남기고 떠난 것, 그녀가 남기고 떠난 것. ‘그걸’ 그는, 또 그녀는 ‘그걸’ 제각기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해 왔다면, 그들의 마음은 변한 것이 아니니, 그들의 사랑, 그 첫사랑을 실패한 것이라고 어찌 규정할 수 있을까.


CA913. 황동혁, 〈남한산성〉(2017)

그들은 그곳을 선택했지만, 그들이 몰랐던 것은 그 선택이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감행하는 선택은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 그들이 맞닥뜨린 진정한 비극의 정체요 실체였다.


CA914. 김지운, 〈장화, 홍련〉(2003)

정신병자의 망상을 이미지로 옮겨놓은 것을 보면서 느끼는 공포라는 것. 그들은 왜 서로를 미워하면서 미쳐가는가. 그 한가운데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왜 아버지만이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한데, 그는 조금씩 미쳐가는 주변의 여자들을 위해서 왜 아무런 실효성 있는 조치들을 취하지 못하는가. 그는 왜 그토록 무력한가. 그 무력함이 그만이 홀로 무사한 요인이라면?


CA915. 김진성, 〈서프라이즈〉(2002)

영화와 TV드라마 간 규모의 차이, 장편과 단편 간 규모의 차이. 이런 차이들에 대한 속절없는 혼동, 또는 오판, 또는 착각. 그리고 멜로드라마를 만만하게 여기는 태도의 문제. 또는 멜로드라마를 만만하게 여기게 된 이유에 대한 성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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