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digoB May 28. 2024

태어나보니 흥부네 셋째 딸

우리 아빠 좀 말려줘 2화

- 용, 용순아! 거기 바느질하는 실 좀 가져오너라. 어디 보자, 요놈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꼬.

- 여보, 뭐 먹을 게 있다고 제비를 잡아오셨수. 저런! 얘가 왜 이런데요?


아버지는 이럴 땐 첫째 언니나 둘째 언니가 아니라 꼬옥 귀찮게시리 나를 찾는다. 바느질하느라 옆에 두었던 실패를 들고 마당 한가운데 둘러앉은 식구들 곁으로 다가갔다. 쪼그리고 앉아 발치 아래 요리조리 살피던 아버지가 내 손에 있던 실패를 건네받고 실을 풀어 뜯어냈다. 우두커니 선 채 아버지의 손을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밑을 내려다봤다. 힘줄이 툭 불거진 아버지의 마른 손가락 사이로 새카만 깃털과 꼬랑지를 길게 뺀 제비 새끼 한 마리가 힘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안방에서 서책을 읽고 있던 큰 오빠가 턱 밑을 벅벅 긁으며 방에서 나왔다. 코 옆에  까만 사마귀 점이 유독 오늘따라 툭 튀어나와 보이는 게 참 못생겨 보였다.


- 그게 뭔데, 다들 그러고 있어유? 어머니, 아직 아침밥 멀었는감요.

- 야야, 넌 그냥 방에 들어가. 여는 신경 쓰지 말고 부지런히 글공부만 하는겨.


어머니가 멀찍이 서 있는 큰 오빠를 보더니 손사래를 치며 대꾸했다.


- 거참, 한입 거리도 안 되는 제비를 손에 들고 뭐 하시는 거에유. 이왕 잡아왔으니 죽 끓이는 솥에 넣어 국물로 우려먹어유.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제비의 한쪽 다리가 똑 부러져 옆으로 꺾여있는 게 참으로 안쓰러웠다. 큰 오빠는 그걸 보고도 제비탕을 해 먹자는 소리가 나오다니. 그리고 아버지는 어쩌자고 다친 제비를 주워 왔단 말인가.



한참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던 아버지가 무슨 결심을 했는지 마당 한 구석에 있는 나무 아래 떨어진 잔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제비는 여전히 고개까지 모로 축 늘어뜨린 채 손바닥 위에서 앞가슴을 헐떡이며 얕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부러진 다리에 나뭇가지를 대고 가지고 있던 실로 조심스레 살살 묶는 아버지. 꺾여 있던 제비 다리가 본래 자리로 돌아와 제법 튼튼하게 묶였다. 제비가 정신이 돌아온 듯 고개를 쳐들고 양 날개를 퍼득거렸다. 이내 중심을 잡지 못해 픽 쓰러진 제비. 아버지가 버둥대는 제비를 두 손으로  떠받쳐 들고 초가지붕 아래 빈 제비집에 넣었다. 동생 둘이 아버지를 따라 제비집 밑에서 제비의 동태가 궁금하다는 귀를 기울였다. 아버지까지 셋이서 그러고 있는 모습이 참 순진무구하다. 누가 어른이고 아이인지 분간이 어려울 만큼.


오빠와 언니들은 애당초 그런 새를 데려온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곤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언니들을 따라 바느질을 하던 봉당마루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못마땅한 얼굴로 부엌으로 들어가 아궁이 위 가마솥뚜껑을 열어보고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 쓸데없이 그러고 섰지 말고 아침 조반이나 드시유. 좀 이따 산에 가서 나무해오는 거 잊지 말구요, 예?


아버지는 어머니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그새 잡은 지렁이 한 마리를 슥 제비둥지로 밀어 넣으며 속삭였다.


- 다 나을 때까지 여기서 몸조리하고 돌아가. 당분간 너도 우리 식구인께 이거 먹고 얼른 기운 차려잉.





사진 출저 - Pixabay



작가의 이전글 태어나보니 흥부네 셋째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