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digoB Apr 19. 2024

물 한 컵의 위로

편두통은 내 고질병

하게 아픈 날엔 목구멍으로 물 한 모금 넘기기 힘들어 괴로운 경우가 있다. 아침부터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숨 쉴 때마다 느껴질 정도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좀 나아지려나 싶어 컵에 물을 따라 작은 알약과 함께 삼키려 해도 목안에서 탁, 걸려 도로 뱉어낸다. 그럴 그냥 커튼을 겹겹이 두껍게 쳐서 실내를 어둡게 억지로라도 잠을 청하며 고통을 견뎌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리를 따로 떼어낼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싶은 심정이 든다. 턱 바로 아래에 지퍼를 달아놓고 아플 때마다 지퍼를 열어 머리통을 분리하고 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편두통은 내 오랜 고질병이다.


렇게 고통의 시간을 하루 반나절 정도 보내고 나면 지끈거리던 관자놀이가 조금씩 진정이 되고 무겁던 눈꺼풀도 한결 가벼워진다. 오랜 시간 누워있다 일어나면 가장 먼저 볼일이 보고 싶어 진다. 재빨리 시원하게 일을 보고 나오면 바로 갈증을 느끼는데, 아침에 마시려다 그냥 탁자에 내려놓은 물컵을 집어든다. 꿀꺽, 꾸울걱. 그제야 목구멍으로 물이 벌컥벌컥 넘어간다. 거의 동시에 눈앞 시야가 환해진다. 아, 살 것 같다.


소 마시던 밍밍한 생수 한 잔이 그렇게 달고 맛날 수가 없다. 어디 아프고 싶어 아픈 사람이 있겠냐만, 느닷없이 아프기 시작하면 세상만사 귀찮고 눕고 싶은 마음만 든다. 유독 신경을 많이 쓰고 예민하고 불편한 상황에 오래 노출됐다 싶으면, 물도 못 마시고 식사도 제대로 못할 때가 있다. 가족들은 그런 나에게 두통약을 내밀며 먹어보라 권유만 할 뿐 딱히 해줄 것이 없다. 그때마다 나는 괜스레 서럽다. 난 꾀병이 난 게 아닌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서럽다.


런데 물은 내가 아픈 걸 알아주는 것 같다. 냉장고에서 막 꺼낸 차가운 냉수 보다 컵에 따라 놓고 차마 마시지 못 한 물이 더 아픈 속을 달래준다. 아픔과 인고의 시간을 보상해 준다. 그 순간에 물은 내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소중한, 아무것이 된다.




AI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DALL-E 3 구동 이미지


작가의 이전글 불현듯 훅 치고 오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