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침마다 직접 내려마시는, 핸드 드립 커피는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고픈 내 개똥철학이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두 발을 내려놓고 잠시 잠을 깨기 위해 멍하니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있으면, 어깨너머 저쯤에서 브라질 태생 커피콩들이 꼬물거리며 내게 아침인사를 건넨다.
굿모닝! 축하해, 오늘 아침에도 무사히 눈 떴네.
적당히 숙성되어 구수하고 쌉싸름하니 달달한 향내가 희미하게 코끝을 간지럽힌다.
저 멀리 바다 건너 중남미의 뜨거운 태양 아래 커피나무가 새빨간 앵두 같은 커피콩 열매를 맺고 있을 때 알았을까. 제 자식들이 이리도 멀리 떨어진 타국으로 실려 와, 어느 아무개 집 선반까지 오게 될 줄.
나는 안다. 커피나무가 견디고 견뎠을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수분과 영양분을 땅 속 뿌리로부터 끌어올리려 소모했을 에너지와 시간, 노력을.
나는 세상에 쉬이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 생각한다. 누군가의, 어떤 존재의 시간과 노력이 이루어 놓은 에너지의 집합체가 우리 주변 곳곳을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무 당연해서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마저 잊기 쉬운 작은 물건, 소소한 편리함들이 우리에게 안겨다 준 이득과 여유로움. 그걸 통해 우린 어떤 일에 어떻게 그 혜택을 이용하고 있는가. 그래서 우리는 행복한가.
당장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해도 내가 내 시간을 들여 정성을 쏟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누구보다 내가 행복하다 느끼는 일이라면 그건 내 인생에 즐거움과 의미를 선사한다.
가끔 번거롭고 공이 많이 드는 핸드 드립 커피 보다 에스프레소 커피 머신을 권유하시는 분이 계신다. 그분의 충고를 무시하거나 폄하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데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에 합당한 이점 또한 있으니까. 그런데 난 나대로의 이유에 의해서 내 방식을 고집한다.
우선 결코 쉽게 내 집에 오지 않았을 커피 원두들을 사랑한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도 사실이 그렇다. 뜨거운 물에 커피를 우리는 건 매한가지라도 난 좀 더 천천히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가며 커피 추출액을 얻고 싶다.
AI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DALL-E 3 구동 이미지
커피 필터 종이에 다소곳이 들어앉아 있는 커피 가루 위에 적정온도로 뜨거운 물이 담긴 드립 포트 주둥이를 기울인다. 천천히 나선형을 그리면서 안에서 바깥으로 물을 붓는다. 이때 한꺼번에 확 붓는 게 아니라 일정한 물줄기를 유지하면서 일정한 속도로 서서히 커피 가루에 물이 스며든다는 느낌으로. 나선형 원을 3~4바퀴 정도 물줄기를 떨어트리고 나면 가루 표면이 초코 브라우니 빵처럼 둥글게 위로 봉긋 솟아오르며 부푼다. 그 순간에 콧구멍으로 전해오는 달달하고 고소한 커피 향내. 눈이 맑아지고 멍 했던 정신이 각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