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코스테 <The Big Leap> 광고에서 얻은 실패할 용기에 대하여
*이 글은 브런치 매거진 '광고 인문학'의 <인생이라는 스포츠를 뛰고 있는 모든 선수들에게 2> 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벤치석의 고고한 타라레바 걸 보다, 흙먼지 뒤집어쓴 타자석이 더 멋있는 이유
도전하지 않은 스포츠가, 질 것이 뻔한 이 스포츠가 감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재밌게 본 일본 드라마 <도쿄 타라레바 걸>에서 저는 그 대답을 찾았습니다. 여기에는 도쿄 올림픽 해에 솔로를 벗어나기로 서로 약속했지만 누구 하나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싱글 여성 세 명이 나옵니다.
셋은 항상 실패할 것 같은 연애에는 몸을 사렸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또 상처 받을 것 같은 연애엔 덤비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매일 셋이 모여 신세를 한탄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실은 몸을 사렸던 것이 비겁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야구 선수로 비유합니다. 이 연애 저 연애 도전하는 사람들을 흙먼지 풀풀 날리는 타자석에 있다고 한다면, 타라레바 걸들은 먼지 하나 없이 안전하게 벤치석에 앉아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타자들의 스윙을 보며 후보석에 앉은 셋은 비웃습니다. 저런 스윙으로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겠느냐고, 도루로 판단을 잘못해서 점수를 잃는 것이라고. 흙먼지를 묻혀가며 추하게 뛰고 있는 경기장의 선수들을 보며 평가하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시도에 경기장 위의 여자들은 스윙 실력이 늘고 몸이 단단해져 제법 잘 치는 플레이어가 됩니다. 때로는 우연히 휘두른 방망이가 운 좋게 홈런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경기장 위 여자들이 온몸 다해 실패하며 이기는 법을 깨달아갈 때, 몸을 아끼던 후보석의 주인공들은 어떠한 변화도 없이 그대로입니다. 그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안전했던 것이 아니라 안일했던 것이라고 뒤늦게 후회하게 됩니다.
벤치에서 관망만 하고 있던 저를 지나친 스포츠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만약 거절받더라도 고백해봤으면 어땠을까? 만약 어차피 떨어질 시험이더라도 지원해보면 어땠을까? 아마 당연히 좋은 결과를 얻진 못했을지라도 제게 무언가 변화는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고백해보지 않고서는 남자가 제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이고, 시험에서 원하는 성적을 받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시험에 어떤 문제가 출제되는지, 시험장의 분위기는 어땠는지는 파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고 이 기고를 떠나서 이 경기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깨달음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제가 승산 있는 게임에만 뛰어들려고 눈치만 보다가는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요.